
노원역을 나와 상계동 방향으로 20분 정도 걸으면 노원중앙도서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이곳에 종이책 대신 누군가의 인생을 빌려볼 수 있는 휴먼라이브러리가 있다.
도서관 1층 출입구로 들어서면, 곳곳에 휴먼라이브러리로 이어지는 안내 표지가 설치돼 있다. 안내 표지를 따라 지하로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사람이 책이 되는 사람책도서관’이라는 간판 아래 노원휴먼라이브러리가 위치해 있다.
사람책을 통해 경험을 나누는 공간
노원휴먼라이브러리는 사람책(휴먼북)을 열람하는 독특한 도서관이다. 자신의 경험을 대화로 나누는 이들이 한 권의 책이 된다. 이용자는 이들과 일대일 또는 일대다로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입구에 적힌 ‘전국 최초 상설 사람책도서관’이라는 문구와 복도 벽면의 ‘관계를 잇는 도서관, 편견 없이 소통하는 세상’이라는 표어는 사람의 경험 그 자체를 콘텐츠로 삼는 휴먼라이브러리의 취지를 드러내고 있다.
도서관 지하 1층 일부 공간은 음식을 먹거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휴먼카페’로 운영되고 있으며, 시민들이 대화를 나누는 테이블 뒤쪽으로는 자판기와 열람석이 자리하고 있었다. 외관만 보면 여느 로비처럼 보이지만, 이곳이 바로 휴먼북과의 대화가 이뤄지는 장소다. 기자가 방문한 날에도 한 테이블에서 대화 프로그램이 운영 중이었는데, 프로그램은 사전에 신청한 이용자가 휴먼북과의 일정 조율을 거쳐 약 1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다.
▲ 노원휴먼라이브러리 휴먼카페(출처=노원휴먼라이브러리)
청년이 머무르는 제3의 장소
노원휴먼라이브러리를 운영하는 담당자는 “휴먼라이브러리는 지역에서 제3의 장소로 기능하는 열린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제3의 장소란 가정과 직장을 제외하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관계를 형성하는 장소를 의미한다. 그는 “지역사회에서 매일같이 드나들며 휴식과 교류를 할 수 있는 공간 중 가장 접근성이 높은 곳이 도서관이며, 특히 청년에게는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안전한 대화 공간이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휴먼라이브러리를 이용하는 대학생·청년층의 비율은 전체의 20~30%에 이른다. 그는 “청년들은 정해진 정답을 듣기보다, 시행착오와 전환점을 직접 들어보고 싶어 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덧붙였다. 휴먼북 프로그램의 가치에 대해서는 “물리적 책이 정보를 전달한다면 살아 있는 사람책은 시선을 마주하며 직접 경험을 전한다”며 “그 과정에서 감동과 긍정적 인사이트가 생기고, 관계와 소통의 선순환이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담당자는 휴먼라이브러리가 생긴 배경 역시 ‘편견을 줄이고 사람을 연결하는 공간’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휴먼라이브러리는 2010년 노원구의 높은 자살률 속에서 공동체 회복을 위해 시작됐다”며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마주 보고 대화한다는 점이 기존의 독서문화 프로그램과의 가장 큰 차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청년층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고민은 정답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에 이런 대면형 대화는 자신의 강점을 발견하거나 진로를 탐색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청년에게 열린 ‘한 권의 사람’
휴먼라이브러리는 특히 청년층에게 실질적인 의미가 있는 공간이다. 등록된 휴먼북은 진로나 직업 경험처럼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들뿐 아니라, 일상 속 작은 기술과 삶의 팁을 나누는 사람까지 폭넓다. 기자가 확인한 목록에는 ‘자취 요리 조언’처럼 사소하지만 실제 도움이 되는 주제부터 뇌성마비를 앓고 있음에도 글쓰기를 통해 작가를 꿈꾸는 십 대 청소년의 휴먼북도 있었다. 나이와 경력의 구분 없이 삶의 여러 국면을 보여주는 휴먼북이 함께 등록돼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지역 예술가나 우리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인 나희덕 시인 등 이름을 알 만한 인물도 휴먼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이용자는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서 자신의 상황과 맞는 휴먼북을 선택해 대화를 신청할 수 있다. 청년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책에서 찾기 어려운 답을 사람의 목소리로 듣기 위해서다. 누군가의 시행착오를 직접 듣는 경험은 서점의 종이책에서 얻었던 간접 경험보다 훨씬 더 생생한 삶의 교훈이 된다. 휴먼북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용자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고민과 질문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게 된다. 휴먼라이브러리의 핵심은 ‘정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경험’을 공유하는 데 있다.
누구나 휴먼북이 될 수 있다
휴먼북 등록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노원휴먼라이브러리에서는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휴먼북이 될 수 있다. 신청자가 대표 경력과 함께 5개 이상의 키워드를 작성해 신청서를 제출하면, 기본 정보 검토와 인터뷰를 거쳐 내부 심의가 진행된다. 이 과정은 등록자의 이야기가 공공 도서관의 가치와 일치하는지, 대화 중심 프로그램에 적합한지 확인하기 위한 절차다.
등록이 완료되면 휴먼북은 독자의 요청에 따라 자신의 경험·지식·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활동을 하게 되고, 활동 실적은 자원봉사로 인정된다. 정당·종교·영업 목적의 대화나 전문 상담은 제한되며, 그 외의 삶의 경험은 형태와 규모에 상관없이 ‘휴먼북’이 될 수 있다.
노원에서 휴먼북을 읽는 방법
노원휴먼라이브러리는 매주 화요일에서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하고, 일·월요일과 공휴일은 휴관한다. 이용 대상은 12세 이상이며, 노원구민은 노원구립도서관 홈페이지 회원가입 후 휴먼북 열람을 신청할 수 있다.
사람을 빌리는 도서관이라는 말은 다소 낯설지만, 직접 방문해 보면 종이책 대신 한 사람의 삶을 펼쳐 읽는 노원휴먼라이브러리의 매력에 빠지게 될 것이다. 한 권의 사람을 만나고 그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경험, 노원휴먼라이브러리는 바로 그런 만남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김용하 수습기자
divine1251@seoultech.ac.kr
기사 댓글 0개
욕설,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