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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세상에서 제일 긴 영어단어
임효빈 ㅣ 기사 승인 2022-12-06 09  |  668호 ㅣ 조회수 : 418

세상에서 제일 긴 영어단어



 엄마는 더 이상 나의 엄마가 아니다.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었다.



*



 나는 5살 무렵까지 ‘엄마’라는 존재를 알지 못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엄마는 나를 낳자마자 세상을 떠났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릴 적을 애써 더듬어 봐도 엄마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일곱 살이 되던 해, 우리 집에는 코디네이터라고 불리우는 여성이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꽤 더운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코디네이터는 늘 정장 차림을 고집했으며, 두 손에는 두꺼운 서류뭉치와 노트북이 늘 함께였다. 코디네이터가 방문하는 날이면 아빠는 늘 심각해졌다. 저 분은 누구냐고 묻자 아빠가 대답했다.



 “초등학교 입학도 기념할 겸 준혁이한테 줄 커다란 선물을 아빠랑 같이 골라주시는 분이야.”



 코디네이터가 우리 집에 대여섯 번쯤 다녀갔을 즈음이었다. 다른 날과 달리 코디네이터 옆엔 또 다른 여성이 함께였다. 이 분이 너의 엄마야. 아빠는 처음 보는 여성을 내게 이렇게 소개했다. 여성은 활짝 웃으며 유치원 선생님 같은 조곤조곤한 말투로 손을 건넸다. 나는 쭈뼛거리며 악수를 했다. 따뜻하고 보드라운 손이었다. 여자의 손을 꼭 쥔 채 아빠를 멀뚱히 쳐다봤다. 아빠도 나를 향해 활짝 웃으며 이제 우린 가족이 되는 거라고 했다. 코디네이터는 만족스러우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내 몸집만 한 충전기를 남기고 돌아갔다.



 그러니까 내게 손을 건넨 여자는 휴머노이드였으며, 동시에 나의 엄마였다. 몇 년 전 한 테크놀로지 기업에서 내놓은 휴머노이드 가족의 ‘엄마 버전’이었다. 코디네이터가 놓고 간 카탈로그에는 아빠 버전과 아이 버전도 있었다. 사회 곳곳에서 발생한 가족의 빈자리를 휴머노이드가 채워나갔다. 겉모습으로는 인간과 휴머노이드를 전혀 구분할 수 없을정도로 정교하고, 세밀하게 제작되었다. 또한 표정, 말씨 같은 표면적인 생체 반응으로도 인간과의 구분은 어려웠다. 하지만 분명한 단점도 있었다. 유효기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도 언제 어디서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 마당에, 이 단점은 현대인들에게 큰 결격사유로 작용하지 않았기에 ‘휴머노이드 가족’ 상품은 꽤 성행했다.



 나에게도 마찬가지로, 유효기간 따위의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엄마의 손이 부드러울까?’라는 궁금증이 먼저 들었다. 처음 엄마와 악수를 했을 때, 엄마의 손은 거친 아빠의 것과 달리 부드럽고 따뜻했다. 자기 전에 등을 쓰다듬어 주거나 장난을 치며 내 얼굴을 만지는 아빠의 손이 자아내는 거침이 나는 늘 불만이었다. 반면 처음 잡은 엄마의 손은 더없이 부드럽고 따뜻했다.



 그렇다고 ‘엄마’라는 말이 입 밖으로 쉽게 나온 건 아니었다. 휴머노이드 가족이라는 개념 자체는 각종 매체에서도 익히 듣고, 휴머노이드 가족을 가진 친구들에게서도 익히 들어 어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존재가 나의 ‘엄마’가 되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엄마가 집에 온 지 2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어색해 내가 먼저 말을 붙이는 일은 없었다. 그러자 아빠는 먼저 여행 제안을 해왔다.



 “가족이 된 기념으로 잠깐 여행이라도 다녀오는 게 어때? 수영도 하고, 고기도 구워 먹고.”



 나는 ‘수영’과 ‘고기’라는 말에 신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첫 여행지는 강원도 춘천이었다. 아빠는 내가 엄마와 친해지길 바라며 자연스럽게 둘만의 시간을 만들어주곤 했다. 엄마는 나의 말을 잘 들어주는 존재였다. 친해지고 싶은 친구 이야기, 아빠가 청소할 때마다 예민해지는 이야기 등 사소하기 그지없는 에피소드들을 쏟아냈다. 그럼에도 엄마는 지루하다는 기색 하나 없이 그저 웃으며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제야 엄마가 손을 잡아도 아무렇지 않을 만큼 서서히 어색함이 풀어졌다. 엄마는 내 작은 손을 보며 말했다.



 “손이 예쁘네. 이 손에 반지 하나 하면 딱이겠다!”



 그리고는 길가에 피어있는 하얀 토끼풀을 뜯어 두 개의 꽃반지를 엮었다. 하나는 자신의 손에, 다른 하나는 내 손에 끼워주며 싱긋 웃었다.



 “잘 부탁해.”



 엄마와 함께 살게 된 지 세 달째. 엄마는 내게 최고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우선 엄마는 내가 원하는 요리라면 무엇이든 만들어주었다. 텔레비전에서 한 요리사가 신선로를 만드는 모습을 보고 신선로가 뭐지, 라고 중얼대자 엄마는 곧장 내 손을 잡고 마트로 가 필요한 재료들과 식기를 샀다. 게다가 한식은 물론, 양식, 중식, 제빵에 이르기까지 엄마에게 못하는 음식이란 없었다. 친구들에게 어제 저녁 메뉴를 이야기하면 ‘우리 집은 맨날 카레 아니면 곰탕이나 찌개인데…….’ 라며 부러운 눈길을 보내기 일쑤였다.



 또 친구들은 우리 엄마가 애니메이션 속에 나오는 친절한 선생님 같은 목소리를 가졌다고 입을 모았다. 하루는 내가 수학 수업을 받느라 방에 들어가 있을 때였다. 친구 중 하나가 함께 놀자며 집으로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엄마가 전화를 받았는데 그 친구는 자신에게 조곤조곤 존댓말로 말해준 어른은 처음이었다면서 신기해했다. 나는 친구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은근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이렇게 늘 다정다감한 엄마였지만 내가 정해진 게임시간을 지키지 않거나, 밖에서 놀다 집에 들어오기로 약속 한 시간을 지키지 않을 때만은 나를 엄하게 대했다. 엄마의 시계는 너무나 정확해서 일 초만 늦어도 칼같이 전화가 왔다. 아들인 나는 물론이고 아빠도 혼나곤 했다. 아빠가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베란다에 쓰레기봉투를 쌓아두거나, 집에 담배 냄새를 풍기며 들어올 때 주로 그랬다. 아빠가 담배 냄새를 풍기며 들어올 때면 엄마는 집안의 공기가 얼마나 탁해졌는지, 대기상황 비교 그래프와 함께 정확한 수치를 대며 혼을 냈다. 아빠는 반박할 수 없이 정확한 엄마의 꾸중에 늘 고개를 푹 숙이며 미안하다고 했다.



 혼을 낼 때는 칼 같은 엄마이지만 그래도 엄마는 나를 즐겁게 해주는 존재였다. 학원에 갈 때마다 손을 잡고 함께 걸어서 데려다주었고, 계절이 변할 때마다 내 방의 분위기를 바꿔주었다. 봄에는 벚꽃나무 장식을 방 한구석에 놓아주었고, 여름에는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푸른 벽지로 바꾼 후 내가 편히 기대 앉아 쉴 수 있는 배 모양 의자를 놓아주었다. 또 겨울에는 장작 모양의 램프와 포근한 노란 빛을 내는 전구를 달아주었다. 또한 엄마는 최고의 선생님이었다. 영어 숙제를 하다 모르는 단어를 물어보면 무슨 단어든지 곧장 튀어나왔다. 나는 설마 이것도 알까 싶어 엄마에게 물었다.



 “세상에서 제일 긴 영어 단어가 뭐야?”



 사실 나는 엄마가 몰라서 당황하는 모습을 기대했다. 하지만 엄마 입에서 튀어나온 아주 긴 영어 단어에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나는 외워두었다가 친구들에게 뽐내듯 자랑하기 위해 엄마에게 글자로 써달라고 했다. 엄마는 펜을 잡고 인쇄한 듯 깨끗한 글씨로 적어주었다.



 pneumonoultromicroscopicsilicovolcanoconiosis.



 뉴모노울트라마이크로스코픽실리코볼케이노코니오시스. 어떻게 읽어야 하는 줄 몰라 우물쭈물거리고 있자 한글 발음까지 아래에 적어주었다. 그 이후로 나는 엄마한테 19단 곱셈도 물어봤고 ‘이만구천육십일 빼기 천오백이십팔’ 같은 장난 같은 문제도 냈지만, 그때마다 엄마는 늘 망설임 없이 척척 대답을 해주었다.



 나는 어느새 아빠만큼이나 엄마를 편하게 여기기 시작했으며, 아빠는 모르는 둘 만의 비밀을 공유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빠는 짐짓 서운한 내색을 비췄지만, 사이좋은 엄마와 나를 보며 내심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나는 더 이상 엄마의 부재를 느끼지 못하며 열두 살이 되었다.



*



 학교에서 받아온 가정통신문을 엄마에게 내밀었다. 지정된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고 검진내역을 제출하라는 내용이었다. 내용을 확인한 엄마는 아빠더러 나와 함께 건강검진을 받고 오라고 했다.



 “엄마는 안 가?”



 “엄마는 안 아파서 괜찮아.”



 오랜만에 가족 다같이 보낼 수 있는 주말이었기에,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엄마가 가야지 주사가 덜 아프다느니, 병원 근처에 맛있는 식당이 있어 같이 가야 한다느니 하는 소리를 늘어놓은 끝에 엄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건강검진 날이 되고 우리 가족은 외출 채비를 했다. 아빠와 나는 추리닝 차림으로 금방 준비를 끝냈지만, 엄마는 오늘도 두꺼운 파운데이션을 펴발랐다. 나는 가까운 거리인데 무슨 파운데이션이냐고 물었다. 어색하게 웃는 엄마 대신 아빠가 대답을 해주곤 했다.



 “엄마는 준혁이가 휴머노이드 엄마를 가졌다는 사실을 굳이 알리고 싶지 않은가 봐. 너는 신경 쓰지 않겠지만.”



 “에이, 딱 보고 엄마가 휴머노이든지 사람인지 어떻게 알아. 내가 보기에는 하나도 다른게 없는데?”



 “너희 같은 꼬맹이들은 모르겠지만, 요즘은 엄마가 다르다는 것을 눈치채는 어른들도 있어. 티비 보면서 저 연예인은 얼굴 여기를 손봤네, 하는 것처럼 말이야. 물론 맘대로 판단하는 쪽이 무례한 거지만.”



 아빠 말대로 난 남들이 엄마가 누구라고 생각하든, 엄마의 모든 모습을 사랑했기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병원에 도착하자 아는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빠가 주차하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와 마주쳤다. 조금 떨어져 있음에도 큰 소리로 인사했다. 화장까지 예쁘게 한 엄마를 자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돌아 엄마를 보니 차 안에서 파운데이션 한 겹을 더 바르려 거울을 꺼내고 있었다. 그 친구가 먼저 병원 안으로 들어가고 나니 엄마가 친구에게 인사를 해주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그러나 이내 아쉬움을 뒤로하고 예약 시간에 맞추어 우리는 어서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간호사는 대기자가 많아 잠시 기다려야 한다고 번호표를 건넸다. 월요일까지 검사결과를 학교에 제출해야 해서인지 막바지에 병원을 찾은 친구들이 많이 보였다. 고개를 쭉 빼 병원을 둘러보던 중 낯익은 얼굴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큰 손짓으로 인사했다. 옆에 있는 엄마를 쿡쿡 찌르면서 ‘내 친구야. 수학학원 같이 다녔어.’라고 말해주면 엄마는 ‘아, 그렇구나. 안경이 잘 어울리는 친구네.’라며 싱긋 웃을 뿐이었다. 같이 가서 인사하자는 말에 엄마는 다음에라는 말과 함께 미소를 보일 뿐이었다. 나는 그런 엄마의 모습이 점차 서운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평소와 다른 엄마의 모습에 잠시 뚱해 있는데, 검진실에서 나온 친구와 그 아이의 엄마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친구가 나를 먼저 알아보고 내 이름을 불렀다. 옆에 있던 그 애의 엄마는 나와 우리 엄마에게 원래 알던 사이인 양 살갑게 인사를 건네왔다.



 “우리 애가 준혁이네 엄마가 엄청 미인이시라고 얼마나 얘기를 하던지.”



 아주머니는 엄마의 얼굴을 외우려는 사람처럼 엄마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엄마는 그런 부담스러운 눈길을 피해 어색하게 대화를 이어갔고, 엄마가 난감해하는 것을 눈치챈 아빠는 이제 피 검사할 차례라며 다른 진료실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갑자기 피를 뽑아야 한다는 아빠의 말에 긴장했지만, 여러 가지 검사를 정신없이 마치고 나온 나는 평소처럼 엄마에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내 키는 아빠보다 클 수 있을지, 혈액형은 어떻게 결정되는지, 내게 동생이 있다면 그 애의 혈액형이 무엇일지. 그리고 엄마의 혈액형을 물었다. 엄마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엄마는 혈액형이 없어.”



 아, 맞다. 엄마는 휴머노이드였지. 나는 종종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엄마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했다. 엄마, 이건 맛이 어때? 엄마는 목욕탕 안 가? 엄마 지금 더워? 같은 질문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할 때면 잠깐씩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마침 내 이름이 안내 전광판에 뜨고 나는 쭈뼛거리며 결과지를 받으러 갔다.



 주말이 지나고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누군가 나를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야, 너네 엄마 깡통이라며?”



 그리고 그 주변에서 실실거리는 애들, 대놓고 깔깔 웃는 애들, 그리고 ‘정말? 진짜?’ 같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신기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잰걸음으로 자리에 가 앉았다. 교실 맨 앞자리에 앉은 애와 눈이 마주친 순간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엄마가 깡통’이라는 말을 크게 외친 녀석은 다름 아닌 병원에서 만나 인사까지 한 그 아이였다. 그 애는 나와 눈이 마주쳐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익살스럽게 웃었다. 그 날을 시작으로 애들은 나를 ‘새끼깡통’이라고 불렀다. 내가 그동안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것들을 아이들이 입 밖으로 내뱉어주었다.



 “너희 엄마는 로봇 만든 사람들이 입력해 놓은 대로만 행동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나를 둘러싸고 웅성이는 소리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책상에 엎드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양 행동하는 방법 뿐이었다.



 “너희 아빠가 돈 그만 내면 엄마는 사라지는 거네?”



 그러다 결국 폭발해 버렸다. 교실 앞으로 달려나가 앞에 있는 애의 옷깃을 잡고 늘어져 다리를 발로 차고 마구 옷깃을 잡고 흔들었다. 주변 아이들이 말린 덕에 나는 간신히 그 애에게서 떨어졌고, 나와 떨어지자마자 그 애는 교실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다른 아이들은 놀랐는지 더 이상 엄마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간의 소동이 끝나고 나는 다시 책상에 엎드렸다. 그 상태로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그리고 그날 수업이 끝날 무렵 담임선생님이 말했다.



 “준혁이는 학교 끝나고 잠깐 남아라.”



 조마조마한 마음을 안고 선생님을 따라 상담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이미 나와 싸운 녀석과 그의 엄마, 그리고 우리 엄마가 앉아 있었다. 언제 비열한 웃음을 보였냐는 듯 자기 엄마 옆에 앉은 그 애는 비 맞은 강아지 마냥 눈물을 글썽이며 불쌍한 꼴을 하고 있었다.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는 그 애의 엄마와 달리, 엄마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나는 그런 엄마 옆에 앉았다.



 내가 앉자마자 그 아줌마는 모진 말을 폭포처럼 쏟아냈다. 애가 말을 했으면 뭐 얼마나 심한 말을 했다고 이렇게까지 애를 때리냐, 얼굴에 흉터 남으면 어쩔 거냐. 그 아줌마는 일방적으로 나에게 화를 냈지만,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테이블 유리에 비친 엄마의 얼굴만을 살필 뿐이었다. 그러다가 별안간 머리를 때리는 듯한 말들이 들려왔다.



 “어이가 없네, 진짜. 아니, 선생님! 기계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게 말이 돼요? 사람하고 오래 산다고 진짜 인간이라도 되는 줄 아나.”



 그리고는 제 자식의 손을 끌고 상담실을 나갔다. 이윽고 엄마는 죄송하다는 말만을 반복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으로 가는 길 동안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길이 그렇게 멀게 느껴진 적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날 저녁 엄마는 내게 왜 싸웠는지를 물었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대신 엄마를 탓했다.



 “엄마는 왜 거기서 내 편을 안들어주고 죄송하다는 말만 해?”



 그런 말들을 뱉어내고서는 방으로 들어가 한참을 울었다. 그 말들은 사실 내게 하는 말이기도 했으니까.



 다음날 학교에 가보니 나에겐 새로운 별명이 붙어있었다. 태권브이. 언제 나왔는지도 모를 옛날 만화영화의 로봇 이름이 별명으로 붙었다. 새끼깡통이 싸움까지 해대니 붙은 별명이었다. 이제는 대놓고 말하는 녀석은 없었지만 떠도는 말들을 통해 내 별명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완벽하게 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지금껏 내가 엄마가 인간이 아니라는 자각없이 행복하게 지내왔다 하더라도, 결국 남이 보기에 엄마는 겨우 비인간에 불과한 것이라는 생각에 하염없이 작아져갔다. 엄마와의 대화가 줄어든 것은 그때부터였다. 나는 엄마에게 진심이란 없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반 아이들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따지고 보면 엄마가 하는 말은 누군가 입력해 놓은 알고리즘의 결과일 뿐이었다. 그러니 엄마가 자기 전마다 내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또한 어떠한 입출력 값일 뿐, 나의 말에만 진심이 담겨있을거라 생각하니 헛웃음이 났다.



*



 “엄마가 데려다줄까?”



 학원에 갈 때마다 엄마는 말했다. 내가 중학생이 되었음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어떤 중학생이 엄마와 함께 학원을 다닌단 말인가. 그 기계적인 물음에 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학원이 끝나고, 독서실까지 다녀오면 시간은 늘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다. 현관을 들어서면 집의 풍경은 늘 똑같았다. 아빠는 안방에서 자고 있고, 엄마는 거실 한구석에 있는 충전부스에 앉아 등에 플러그를 꽂고 잠들어있었다. 그리고 내가 하는 행동도 늘 같았다.



 나는 방에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엄마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플러그를 살짝 당겨 헐겁게 만들었다. 그러면 충전기의 불이 빨간색에서 주황색으로 변하며 점멸했다. 접촉 불량을 의미하는 신호였다. 이렇게 해 놓지 않으면 엄마는 사사건건 내 일상에 관여하려고 했다. 학교에서 열리는 학부모 진로상담과 학원에서 열리는 입시 상담에 가려고 했으며, 그밖에도 학교공부, 친구 문제 등에도 빠지지 않고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중학생이 되고 나서부터 밤마다 아빠 몰래 플러그를 살짝 뽑아놓았다. 이렇게 하면 기운이 없어진 엄마는 낮에도 집에서 충전을 해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름방학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독서실에서 자습까지 마치고 돌아왔는데 안방 불이 켜져 있었다. 나는 아빠에게 들킬까 충전 중인 엄마를 그냥 둔 채, 방으로 향했다. 그런데 안방에서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준혁이냐? 일 없으면 잠깐 들어와 봐라.”



 안방에서 아빠와 마주 앉았다. 아빠는 내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휴머노이드 ‘엄마 버전’의 계약 해지 요청서였다. 종이 상단에는 엄마의 모델명과 아빠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갑작스러웠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엄마와 함께 살 거라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아직 계약 기간이 다 되지 않았으니까.



 “너도 이제 다 컸으니까…… 괜찮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방을 나왔다. 아빠가 이런 결정을 한 이유는 알고 있었다. 아빠가 말 한 적은 없지만, 사업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쯤은 눈치로 알고 있었다. 고지서와 독촉장이 가끔씩 우편함에 있는 것을 못 본 척했다. 이런 상황에서 매달 백만 원이 훌쩍 넘는 유지비가 드는 엄마를 두는 것은 곤란한 일이었다.



 이제 엄마에게는 일주일의 시간이 주어졌다. 마침 방학을 한 터라 엄마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이 상황이 싫었다. 평범하지 않은 이별을 겪어야 하는 내 처지가 싫었다. 친구들과 놀러 다니거나 학원에 가 있을 뿐, 엄마와는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새 엄마와의 마지막 밤이 되었다.



 그 날 저녁 아빠는 이런저런 음식들을 한 상 가득 주문해 차렸다. 엄마는 그런 아빠를 보며 자기가 만들면 되는데 뭐하러 돈을 쓰냐고 타박을 했다.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내일 아침 업체에서 엄마를 데리러 오기로 했으니 이게 마지막 식사였다. 그 사실을 엄마가 아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적어도 나는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아빠는 연거푸 술잔을 들이키더니 금세 취해버렸다. 그리고는 수고했어, 라는 말을 남기고 방으로 들어갔다. 이제 거실에는 나와 엄마만이 남았다.



 군데군데 흰머리가 성성하게 난 아빠와 달리 엄마는 예전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여전히 예쁘고 따뜻했다. 엄마는 자기가 치울 테니 들어가서 자라고 했다. 그 말에 나도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일어났다. 그러다가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어렸을 적 기억 속 엄마는 모르는 것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저기…… 휴머노이드 가족은 계약이 끝나면 어떻게 돼?”



 “그야 모든 메모리가 폐기되지. 부품은 재활용하겠지만 같이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이 너무 많아서 꼭 리셋 되어야 하지. 그래야 개인정보를 깨끗하게 지울 수 있으니까. 정말 가족처럼 다 알고 있거든.”



 그때 내가 한 대답은 겨우 ‘아, 그렇구나.’였다.



 다음날 업체에서 나온 사람들은 엄마를 데려갔다. 엄마는 나를 한 번 안아주고는 사람들과 떠났다. 그때까지도 괜찮았는데 밤이 되자 눈물이 쏟아졌다. 나를 ‘깡통새끼’라고 불렀던 녀석을 때려눕혔던 날, 엄마에게 날 선 소리를 쏟아낸 뒤 울었던 것처럼 많은 눈물이 내 옷깃을 흠뻑 적셨다.



*



 대학에 입학하고 아빠와 나는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우리가 살게 된 동네는 서울 근교의 한 주택가였다. 처음 이사를 오던 날, 학교와 가까운 곳을 두고 멀리 집을 얻게 된 것이 내심 미안했던지 아빠가 말했다.



 “아빠가 고생시키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



 “무슨 소리야, 집이 학교랑 가까웠으면 맨날 노느라고 늦게 들어오고 그랬을걸? 나는 이렇게 조용하게 지내는 게 체질에 맞아.”



 짐이 적었기에 반나절 동안 정리를 하니 이사가 끝이 났다. 우리는 방바닥에 신문지를 깔아놓고 짜장면을 시켜 먹었다. 그렇게 늦은 점심을 먹고 우리 부자는 방바닥에 누운 채 그대로 잠이 들었다. 얼마 후 누군가 초인종을 울렸다. 피곤한 듯 잠이든 아빠가 깨지 않게 얼른 나가 문을 열었다. 한 아주머니와 딸로 보이는 어린 소녀가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이사 오셨죠? 죄송하지만, 오늘은 재활용 쓰레기 내놓는 날이 아니라서요. 대문 앞 박스들 정리 부탁드릴게요.”



나는 그 순간 ‘헉’ 하고 숨이 멈춰 버리는 것 같았다. 얼굴에 주름 하나 생기지 않고 여전히 상냥한 목소리 그대로인 엄마였다. 너무 놀라 심장이 튀어나올 듯 가슴이 뛰는 나와 달리 엄마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듯 계속해서 친절한 인사말을 건네 왔다.



 “우린 앞집에 살아요. 뭐 궁금하거나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해요. 수연아, 앞으로 앞집 오빠 만나면 인사하렴.”



 엄마는 나중에 또 보자는 인사를 남기고 수연이라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돌아섰다.



 나도 모르게 차오르는 눈물을 참으며 나는 두 모녀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엄마의 손을 잡고 폴짝거리며 걷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엄마. 민수는 막 엄청 긴 영어도 알아. 나도 가르쳐줘! 세상에서 제일 긴 걸로!”



 “엄마가 가르쳐줄까? 뉴모노울트라마이크로스코픽실리코볼케이노코니오시스. 엄청 길지?”



 두 사람의 다정한 목소리가 골목 안을 가득 메웠다. 분명 내가 사랑하던 그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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