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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다 사라지는 것들
창문 너머로 흐린 빛이 들이치던 새벽,
소피아 앙헬리카는 눈을 떴다.
방 안을 채운 미묘한 정적 사이,
옛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재즈가 은은하게 흔들렸다.
소피아는 그 소리의 결을 따라
잠시 그곳에 머물렀다.
해 질 무렵의 바닷가,
파도는 무겁게 밀려와 모래 위에 흔적을 남겼다.
발끝에 닿은 작은 조개껍데기 하나,
그것은 오랜 시간 속에서
아무렇게나 떠밀려온 작은 조각.
손에 들어온 그 순간,
소피아는 생각했다.
이 작은 우연이, 어쩌면 밤의 고요함을 깨울지도 모른다고.
좁은 골목 끝,
오래된 파란 문 앞엔 바람에 흔들리는 한 송이 꽃.
고개를 돌리면 스칠 듯 사라지는 그 떨림.
소피아는 그 흔들림 속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세상의 흐름이 멈춘 듯,
그 작은 틈새로 고요함이 흘러들었다.
작업실,
그녀의 붓끝은 캔버스를 지날 때마다
아무렇게나 흐르고, 흩어졌다.
선들은 얽히고 풀리며
어느새 무언가의 형상이 되었다가,
다시 흩어지는 순간.
그 속에 담긴 작은 진실들.
소피아는 그것이
오롯이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이라 믿었다.
깊은 밤, 창문을 열면
차가운 바람이 살며시 그녀의 얼굴을 스쳤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그 바람이
잠깐 동안 그녀의 귓가에 남아,
한낮의 꿈처럼 흔적을 남겼다.
눈을 감고,
그녀는 그 순간에 잠시 머물렀다.
그리고는 알았다.
이 모든 순간들이, 스치듯 지나가도
마음에 남아 나를 지탱하는 힘이었음을,
그렇게 오래도록 흔적으로 머물렀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