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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번 주말, 어디로 떠나볼까
김민수, 이준석 ㅣ 기사 승인 2024-04-29 14  |  688호 ㅣ 조회수 : 264

 사람들은 해외에 가면 미술관, 맛집 등 나름대로의 주제를 정해 여행하곤 한다. 관광객이 너무 많은 곳 말고, 여유 있고 현지인만 알 것 같은 숨은 장소를 궁금해한다. 서울 역시 그렇게 여행해 보면 어떨까? 퇴근길, 힘없이 유리창에 박고 있던 그녀의 머리에서 섬광이 스쳤다. 나도 서울에 여행 온 사람들처럼 다니면 되잖아! 서울 건축 여행을 시작한 김예슬 건축 여행자와 만났다.



Q. 작가님께서 처음으로 건축 여행자로서 나섰던 여행은 언제인가요? 그 시작이 궁금합니다.



A. 제가 처음 SNS에 올린 게시물이 2015년 가을쯤 밤에 동대문을 찍은 사진이더라고요. 당시 서울스퀘어 안에 있는 회사에서 인턴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그 회사가 서울역 앞에 있고 구서울역이 보이는 곳이었어요. 또 뒤로는 남대문교회, 남산 힐튼 호텔이 있었죠. 퇴근하는 길은 동대문 쪽으로 지나가면서 남산 타워와 동대문 같은 랜드마크를 지나가는 코스였어요. 그래서 매일 출퇴근할 때 여행자분들을 계속 마주쳤고 또 제가 다니는 곳들이 서울 중심을 항상 통과하다 보니 ‘나도 주말에 저 사람들처럼 여행을 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또 SNS에 계속 기록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근현대 건축물 보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깨달았죠.



Q.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의미있는 건물이란 무엇인가요?



A. 제가 생각하는 의미 있는 건물은 잘 남아있고 잘 쓰이고 있는 건물이에요. 문화재라고 해서 거룩한 박물관이기보다 과기대처럼 100년 전에 지어진 건물인데 아직까지 학교로 쓰이고 있는 건물이요. 우리가 계속 활용하고 있으니 그 위에 우리의 역사를 쌓아갈 수 있는 이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의 근현대사 건물은 워낙 질곡이 깊고, 아픈 역사이다 보니 건축물을 보거나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얘기를 하다 보면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또 건물이 너무 멋있으면 그거대로 이상하더라고요. 근데 그게 근대 건축물의 보존 가치라고 생각해요. 그 건물이 없다면 이런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지 못하잖아요.



책을 쓸 때 이야기를 중심으로 건축물을 풀어보려 했어요. 저는 건축이나 역사를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영화와 국어국문학을 전공해서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요. 이야기를 중심으로 소개하다 보니 건물은 없어지고 이야기만이 남아있는 장소도 있는데요. 답십리 영상 미디어센터입니다. 원래 영화 스튜디오가 있던 곳이에요. 영화 촬영소는 사라졌지만 지명은 남아 있어요. 비록 터는 사라졌지만 터와 관련된 어떤 건물을 세워서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는 게 여전히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죠. 그게 이야기의 힘인 것 같아요.



 수많은 영화인들이 모여 작품을 만들던 1960년대의 촬영소는 사라졌다. 그러나 그 영화로운 역사는 답십리 영화미디어아트센터를 오가는 사람들과 동답초등학교 건물 외벽에, 동답초등학교 영화 동아리에, ‘촬영소사거리’라는 버스 정류장과 도로 표지판에 여전히 숨쉬고 있다.



Q. 책의 목차 중에 우리대학 건물인 다산관, 창학관, 대륙관의 이야기가 있는데 이 건물들이 지닌 역사적 가치는 무엇인가요?



A.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오래된 역사잖아요. 굉장히 오래된 건물인데 저는 건물이 어떻게 생겼는지보다는 지금 어떻게 쓰이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역사는 지금도 계속 흐르는 중이니 이 건물이 대학으로 사용되는 사실 자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이과 대학 건물보다도 한국 대학으로서의 세월이 더 길기 때문이에요. 지어진 지 얼마 안 돼서 해방을 맞았기 때문에 서울대학교의 건물을 거쳐서 지금의 과기대로 쓰이는 시간이 훨씬 길잖아요. 그래서 건물을 부수지 않고 이렇게 학생들이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굉장히 역사적인 가치를 지녔다고 생각해요. 과기대 건물 자체가 ‘대학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져 줄 수 있는 것도 그때문이라고 여기고요. 이런 마음으로 『서울건축여행』에서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직선으로 딱 떨어지게 지은 것도 일반적인 근대 건축과 다른 느낌이다. 오로지 실용성만 추구한 건물을 통해 조선총독부가 갖고 있던 이공학부 교육의 목적을 엿볼 수 있다.



Q. 책에 미처 수록되지 못했던 인상깊은 건물이 있을까요?



A. 성공회대학교에 있는 구두인관이요. 원래는 창업하시는 분의 주택으로 지어진 서양식 벽돌 건물이에요. 대구에 선교사들 주택이 모여있는 청라언덕이 있는데 구두인관에 가면 그 느낌이 나요. 보존도 잘 돼 있고 규모도 서양식 건물이 꽤 있는 편이라서 추천하고 싶어요.



 최근에는 대전에 갔는데 요즘 대전이 뜨는 여행지더라고요. 대전의 한남대학교 안에도 1955년부터 1958년에 지어진, 외국인 선교사들의 사택이 모여있는 오정동 선교사촌이라는 벽돌 주택이 있어요. 좋아하는 장소여서 함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Q. 작가님께서 특별히 애정하시는 장소가 있을까요?



A. 책에 나와 있는 장소가 많아서 그때그때 생각나는 장소를 얘기하는 편이에요. 오늘은 성신여대 근처에 권진규 아틀리에를 추천하고 싶어요. 권진규 조각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살았던 집이에요. 유럽 여행을 가면 미술관이나 아틀리에를 찾는 분들이 있는데 서울에서도 찾을 수 있는 아틀리에여서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 공간에 가는 순간, 조각가가 어떤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었는지가 마음에 와닿는데 거기서만 느껴지는 공간감인 것 같아요. 개발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어서 보고 나오면 느낌이 색달라요.



 아틀리에라고 해서 세련되고, 경치 좋은 곳을 기대했다. 그런데 웬걸. 점점 사람 한 명 없는 외딴 길로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아틀리에를 다녀오고 난 뒤에는 그때의 당황스러움이 감탄으로 바뀌었다. 외딴 골목, 쉽게 구할 수 있는 시멘트와 나무로 지은 작업실이 흙으로 영혼을 표현하려 했던 작가와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Q. 작가님처럼 이곳저곳을 즐겨보고 혼자하는 여행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 사람들에게 주는 팁이 있다면요? 혹은 추천해 주실만 한 장소가 있을까요?



A. 요즘엔 오래된 건물을 개조한 카페가 많잖아요. 꼭 근현대물이 아니라 을지로나 서순라길처럼 오래된 골목에 있는 음식점과 카페를 지나다니며 지명이 왜 이럴까, 이 골목의 옛 풍경은 어땠을까, 생각하면서 거기 붙은 표지판이나 안내판을 따라 걷거나 일부러 길을 잃어보시는 걸 추천해요. 종로에 원래 이곳이 어떤 장소였는지 알려주는 표지석을 보면 꼭 게임 속 같아요. 그 표지석을 보고 궁금증이 생겨 더 찾아보기도 하고요.



 책을 쓸 때 과기대를 염두해 두고 쓴 가까운 장소가 육군사관학교 박물관과 장위동의 김중업 건축 문화의 집이에요. 차로 13분이면 가더라고요. 그렇게 내가 살고 있는 곳과 가까운 곳에서 여행지를 찾아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Q. 작가님 전공은 국문학과 영화시고, 건축과는 관계가 없으시잖아요. 근데 어떻게 건축이 책의 소재가 됐나요?



A. 요즘은 제가 한국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나 생각이 들어요. 대학시절에도 건축학과의 한옥 수업을 청강했거든요. 그 때는 주어진 환경 안에서 최대한 관심사를 누려보고 싶었어요.



 건축 여행을 하며 다시금 느낀 점도 있어요. 그 장소가 그저 예뻐서 들어갔는데 공간에서의 생생함과 이야기가 느껴지고 그 안에 인물이 막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찾아가서 감상하는 행위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이 기록물이 책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좋아하는 걸 찍고, 썼을 뿐인데 기록의 힘이 있구나 새삼 느꼈어요. 진작에 알았더라면 더 열심히 했겠지만 또 그렇게 생각하면 오래 못했을 것 같기도 해요.



 건물을 구경한다는 명분으로 벽돌과 유리창을 들여다보지만 사실 서울이 겪은 시간을 마주하는 것이다. 그 끝에는 사람이 있다. 당시에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 건축주, 이용한 사람, 숱한 날 지나가며 그 건물을 봤을 사람들 말이다.



Q. 서울 생활을 하다 보면 살기 어려운 도시라는 생각도 들어요. 책을 보면 서울이란 도시에 애정이 많으신 것 같아요.



A. 저도 이 여행을 시작했을 때 회사 인턴이어서 생각이 많았어요. 정직원이 될 수 있을까부터 시작해서 이 기록을 계속하는 중에도 이직도 했고 여러 일들이 있었어요. 거의 9년 정도 됐더라고요. 그래서 책을 내고 만질 때마다 그때의 기분이 많이 생각났어요. 어느 오후에 회사 반차를 쓰고 갔던 딜쿠샤라던가, 주말에 친구와 갔던 구 용산 신학교 건물과 예수성심성당, 마음이 정말 착잡한 날에 갔던 홍건익 가옥, 이런 개인적인 추억을 책을 만지면서 요즘 또 느껴요.



 정말 흐르기만 하지 않고, 쌓여있구나.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서울 곳곳에 내 기분과 상황을 타임 캡슐 묻듯이 여행한다면 나중에 시간이 지나 그 자리에 갔을 때 묻어놓은 나를 만나는 느낌을 받지 않을까요. 저도 요즘 그러고 있고요. 항상 좋은 마음으로만 어딜 나갔던 건 아니에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런 추억 덕에 이 도시에 애정이 생기더라고요.



 우리가 힘들어서 여행을 갈 때도 있고 좋아서 갈 때도 있지만 항상 그 추억을 그리워하며 살잖아요. 서울은 어쨌거나 우리가 발을 붙이고 생활하는 곳이니 일상이 더 애정 어리게 느껴질 수 있어요. 비행기 타고 멀리 가지 않아도 한 번 더 들여다볼 수 있는 곳에 우리가 살고 있어요.



김민수 기자

sasha7129@naver.com

이준석 수습기자

hng4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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