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전유진 기자 승인 2016.03.14 00 569호





  연인이 손을 잡고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이별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돌담길을 따라 조선시대에는 양반들의 집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고, 근대에 들어서서는 신문물이 가득한 문화의 거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의 덕수궁은 서울의 중심부, 서울시청을 마주보고 있다. 덕수궁은 그렇게 조선시대의 서울과, 근대의 서울과, 현대의 서울 모두를 간직하고 있다. 오늘은 덕수궁을 걷는다.


  대한문을 들어서며


  1호선 시청역 2번 출구다. 차들은 쌩쌩 달리고 저 멀리 광화문 광장이 보인다. 고개를 살짝만 돌려보면 바로 앞에 시청이 있다. 지금은 서울 도서관이 된 옛 서울시청 건물은 서양 근대 건물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그리고 그 건너편, 뾰족뾰족한 서양식 건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덕수궁 대한문이 있다.


  대한문 옆으로는 돌담이 빙그르르 덕수궁을 감싸 안는다. 여름에 왔을 때는 나무가 무성하고 푸른 기운이 가득했는데 아직 좀 쌀쌀한 바람이 부는 이른 봄의 덕수궁 돌담길은 조금 쓸쓸하다. 대한문 오른쪽에 자리한 매표소에서 덕수궁을 만나기 위한 입장권을 받고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본다.





  쭉 뻗은 길이 펼쳐진다. 옆길엔 나무들이 덕수궁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듯 바람에 가지를 흔들고 있다. 이곳은 본디 덕수궁의 두 번째 문인 조원문이 있던 자리다. 조선의 궁궐은 정문에서 정전까지 가려면 세 개의 문을 지나야 한다. 경복궁에는 광화문, 흥례문, 근정문이 있고, 창덕궁에는 돈화문, 숙정문, 인정문이 있다. 덕수궁 또한 원래는 세 개의 문을 가지고 있었다. 대한문, 조원문, 중화문이 그것이다. 하지만 지금 덕수궁에는 대한문과 중화문만이 남아있다. 중화문 또한 원래는 덕수궁의 정전인 중화전을 둘러싸는 행각의 문이었지만, 지금은 135칸의 행각은 모두 사라지고 중화문 홀로 외로이 중화전을 지키고 있다.


  행각이 없어서인지 덕수궁은 궁궐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큰 사찰이나 좋은 양반댁 기와집 같기도 하다. 문화재청에서는 십 년도 더 전인 2005년, 덕수궁의 위상 회복을 위해 중화전 행각과 조원문의 복원을 계획했다. 이미 2013년에 중화전 행각과 조원문이 그 모습을 보여줬어야 하지만 중화전 행각을 다시 세우려면 석조전의 정원을 해쳐야 하기에 사업이 점점 지연됐다. 때문에 아직도 중화전은 행각도 없이 벌거벗겨진 채 남아있다.





  중화전 앞 조정에 깔린 어도와 품계석만이 이곳이 궁궐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듯하다. 전날 비가 왔던 탓에 조정 곳곳에는 물웅덩이가 보인다. 중화전이 물에 비친다. 아름다운 풍경을 혼자만 보기가 아까워 카메라 셔터를 눌렀지만, 이 아름다움까지 담기에 카메라는 그저 작은 기계일 뿐이다.





  고종 황제의 흔적이 남은 덕수궁


  덕수궁의 원래 이름은 경운궁이다. 1593년 임진왜란 때 의주로 피신했던 선조가 한양으로 돌아와 이곳을 임시 거처로 삼았다. 이후 광해군은 이곳을 경운궁이라 명명하고 창덕궁과 경운궁에 번갈아가며 머물렀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고종은 아관파천 후 경운궁에서 지내면서 이곳을 대한제국의 궁궐로 삼았다. 고종이 순종에게 양위하고 왕위에서 물러나자, 순종은 자신의 거처를 창덕궁으로 옮기고 고종이 거주하던 경운궁의 이름을 고종의 장수를 빈다는 뜻에서 덕수궁이라 바꿨다.


  덕수궁은 고종의 손이 많이 닿았다. 커피를 즐겨 마셨다는 고종답게 덕수궁 곳곳에 서양 문물의 흔적이 묻어있다. 편전이었던 덕홍전의 문이 전통적인 미닫이가 아닌, 여닫이 문이라는 것도 그렇다.


  덕홍전 옆으로 발길을 옮기니 함녕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함녕전은 고종이 세상과 이별하기 전까지 머물렀던 곳이다. 1904년 덕수궁에 대화재가 일어났을 때, 불길이 바로 이 함녕전 아궁이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덕수궁의 깊은 곳까지 좀 더 들어가 본다. 이상한 건물이 보인다. 지금까지 봤던 조선의 궁궐 건물과는 몹시 다른 모양새다. 이것은 무엇에 쓰이는 건물인고. 외관을 쭉 둘러보니 마치 동남아 어느 나라의 건물 같기도 하다. 정말 특이하다. 안에는 벽돌로 기둥이 쌓여 있고, 길다란 탁자가 놓여있다. 정관헌이라 불리는 이곳에서 고종은 자신의 취미 생활을 즐겼다. 커피 마시기 말이다.


  정관헌을 둘러보고 길을 따라 나와 본다. 아, 덕수궁은 고궁에 대한 편견을 또 깨부순다. 빨갛고 파랗고 오색찬란하게 색칠된 단청이 아니라, 흰 것은 창이고 붉은 것은 나무 기둥인 단순한 민가가 덕수궁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임진왜란 후 선조가 처음 이곳을 거처로 삼았을 때, 이 밋밋한 석어당에서 지냈다고 한다. 석어당은 잎이 다 떨어진 채 그 옆에 자리한 큰 나무와 함께 쓸쓸한 기운을 뿜어낸다. 




  석조전 난간에 서서


  고종이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장소였다는 준명당을 지나간다. 준명당 앞을 한 걸음 한 걸음 지날수록 저 뒤에 희미하게 무언가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마침내 그것이 완연한 모습을 드러낸다.


  덕수궁 한쪽 구석에서 웅장함을 자랑하는 이 건물은 바로 석조전이다. 다시 뒤를 돌아본다. 분명 이곳은 조선의 궁궐이었는데, 눈 깜짝하니 다른 세계로 온 것만 같다. 조심스럽게 석조전 계단을 오른다. 올라서 다시 왔던 계단을 내려다본다. 계단 밑 정원에는 물은 없지만 물을 뿜으면 아름다울 것을 저절로 알게 되는 분수가 있다. 아, 이곳이 정녕 서울 한복판이란 말인가. 그리스가 아니라?


  석조전 기둥을 하나하나 지나쳐 왔던 쪽으로 되돌아가본다. 서양식 건물에서 돌기둥 사이로 내다보는 조선의 궁궐은 참으로 아름답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동서양의 두 모습이 덕수궁 안에서 하나가 된다. 담장 밖의 즐비한 고층 건물들과는 대조적으로 그 안에 숨어있는 덕수궁은 마치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고종은 매일 이 석조전 난간에 서서 그림 같은 덕수궁을 바라봤을 것이다. 그는 서울이라는 도화지에 그린 이 작은 풍경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덕수궁 돌담길


  석조전을 뒤로하고 다시 대한문 쪽으로 걷는다. 중화문 쪽으로 이어지는 이 길에서 다시 석조전을 바라본다. 역시나, 조선의 궁궐에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풍경이다. 나무와 건물이 어우러지는 풍경에 아직 쌀쌀한 날씨지만 마음에는 봄이 찾아오는 것 같다.


  다시 대한문을 나온다. 대한문 옆의 작은 길로 발을 향한다. 이곳이 그 유명한 덕수궁 돌담길이다. 돌담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길이 꽤나 아기자기하다. 그저 돌담과 길일뿐인데, 걷다보면 저절로 힐링이 된다. 서울의 중심부에 이런 길이 있다는 데 감사하다. 아마도 이곳 덕수궁 돌담길을 연인과 함께 걸으면 헤어진다는 속된 말은 이곳의 고즈넉한 분위기에 취해 나온 헛소리가 아닐까.


  한참을 걸으니 정동극장이 보인다. 이 돌담길의 끝을 알리는 표지판이다. 작은 궁궐이라서 그런지 길이 빨리 끝나버린다. 덕수궁이 경복궁만큼 컸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작은 아쉬움이 든다. 이 아쉬움이야말로 덕수궁의 진정한 매력이 아닌가 싶다. 너무 아쉬워서 다시 오겠다고 나중을 기약하게 만드는 그런 매력이 이곳, 덕수궁에 있다. 기자는 다시 지하철을 타고 바쁘고 또 바쁜 서울로 돌아간다. 


 전유진 기자
 uzj109@seoul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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