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의 반응은 싸늘하다. 조민기 씨의 죽음에 동정보다는 비난이 크다. 이 와중에 고인의 지인들은 난감한 상황이다. 9일 고인의 빈소가 마련됐음에도 자칫 비난의 화살이 자신에게 쏠릴까 봐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9일 배우 정일우 씨가 자신의 SNS 계정에 ‘Pray for you’라는 글귀를 게재하자 조민기 씨를 추모하는 것이냐며 비난이 쏟아졌다. 논란이 일자 정일우 씨는 해당 게시물을 삭제했다.
조민기 씨의 범죄와 상관없는 제3자를 비난하는 것은 잘못됐다. 고인을 향한 애도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죽음이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고 하지만 죽음으로 생전에 저지른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일부 언론은 조민기 씨의 죽음이 미투운동의 폐해라는 식의 기사를 내고 있다. ‘미투운동이 결국 사람을 죽였다’는 논지다.
과연 조민기 씨의 죽음이 미투운동 때문일까?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자. 조민기 씨는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 자살한 것이다. 마녀사냥이란 표현은 억울하게 누명을 뒤집어썼을 때 쓰는 말이다. 조민기 씨의 경우 신빙성 있는 증언들과 증거들이 쏟아져 나와 죄가 없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조민기 씨는 경찰의 조사를 앞두고 자살을 택함으로써 대답을 대신한 셈이다. 그는 사법절차에서 도망친 것이다.
기자는 고인을 마구잡이로 비난해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죽음의 책임을 청주대학교 학생들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이들의 미투운동으로 벌어진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억울함을 고백했을 뿐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라는 말이 있다. 기자는 왜냐고 묻고 싶다. 이처럼 궤변인 말이 또 있을까. 죄는 쉽게 말해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나쁜 행위를 말한다. 타인의 물건을 훔치거나, 목숨을 빼앗는 경우가 죄의 범주에 들어간다.
‘타인의 목숨을 뺏는 행위’는 죄다. 그리고 ‘타인의 목숨을 뺏는 행위에서의 주체’는 사람이다. 죄는 이념에 불과하다. 죄라는 이념을 현실화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이 사람이다. 죄를 짓는 주체가 사람인데 죄지은 사람을 미워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오히려 죄는 아무런 죄가 없다. 죄는 자기를 행하라고 강요도, 부탁도 하지 않았다. 사람이 죄를 짓기 전에는 죄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데는 사람이 죄를 지었어도 회개의 가능성이 있으니 사람 자체를 죄와 결합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죄를 지은 사람이 뉘우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지은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짓는 일은 고쳐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인간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권리, 자격을 박탈해서는 안 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는 법의 역할이다. 법은 가해자를 미워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사실을 바탕으로 처벌해야 한다. 법은 죄와 사람을 따로 놓고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법이 아니라 사람이다. 죄를 지었으면 정당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 당연한 처사다. 제대로 책임지지 않은 자에게 분노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 인간 스스로의 잘못을 치사하게 죄에 덮어씌우지는 말자.
편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