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민하 기자(기계·25)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말이다.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이유도 그만큼 분명할 것이다. 나 역시 어렸을 때부터 수십 번은 들어온 말이지만, 정작 와닿은 건 작년이었다. 작년 이맘때 할머니께서 소천하셨다. 연세가 많으신 건 알고 있었음에도, 영원히 내 곁에 계셔주실 줄 알았다. 할머니랑 늘 다투던 아빠는 “꽃이 피는 계절에 가셔서 다행이네”라고 말하면서도 한참 울었다. 분명 아빠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겠지? 당연히 물어보진 못했다.
어렸을 때, 맞벌이로 바쁜 부모님 대신 나를 키워주신 건 할머니였다. 기저귀를 갈고, 밥을 먹이고, 어린이집에 데려다주셨던 할머니는 나의 세상이었다. 그래서 익숙했다. 익숙함에 속은 것이다. 따로 떨어져 살게 됐음에도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나를 안일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자주 찾아뵙지 않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마음마저 미뤄두고 있었다. 더 많이 연락드릴걸, 더 자주 찾아뵐걸. 미련은 결국 남은 자의 몫이었다. 아빠한테 혼날 때 할머니 뒤에 숨던 날이 생각난다.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내가 멀리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시던 게 선명하다. “우리 강아지” 하며 나를 부르실 때가 그립지 않았던 적이 없다. 뒤늦은 후회에 스스로가 원망스러웠으면서도 그제야 나는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라는 말의 뜻을 이해하게 됐다.
할머니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내게 중요한 것을 알려주셨다. 소중함을 잊지 않는 마음을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다. 언제든지 소중함을 떠올릴 수 있도록,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 순간에 매번 진심을 다할 수 있도록. 우리는 결국 지금만을 살아가고 있다. 단 한 순간도 낭비할 수 없는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우리는 종종 곁에 있는 것들의 가치를 놓치게 된다. 소중한 것을 잃고 싶어서 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늘 곁에 있기 때문에 잊는다. 매일 보는 가족,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친구, 당연하게 찾아올 것 같은 내일은 익숙함 속에 묻혀 특별함을 잃는다. 그래서 사람은 사라진 뒤에야 그 빈자리를 통해 존재의 크기를 실감하게 된다.
최근에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전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본가에 갈 때마다 부모님의 늘어난 흰머리가 눈에 들어온다. 보고 있으면 괜히 마음이 먹먹해지지만, 그 시간의 흔적들이 내가 지금 이 순간을 더 아낄 수 있도록 일깨워준다. 예전에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당연하게 여겼다. 각자의 하루를 보내느라 바빴고, 함께 있는 순간의 소중함을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요즘은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평범한 시간조차 특별하게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는 무심하게 넘겼던 안부 전화도 다르게 들린다. 어디 가는지, 밥은 먹었는지 묻는 말들이 사실은 사랑의 다른 표현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됐다. 그 마음은 늘 같은 자리에 있었다. 할머니가 늘 내 끼니를 챙기고 안부를 물으셨던 것처럼 나는 매일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살아가고 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특별한 순간만이 추억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함께 밥을 먹고, 시답잖은 농담에 웃고, 서로의 하루를 묻는 평범한 시간이 결국 가장 오래 남는다. 너무 익숙해서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순간들 말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런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알게 된다. 다들 기억은 미화된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미화라기보다 뒤늦게야 보이게 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곁에 있을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마음들이 떠난 뒤에야 선명해진다. 그래서 후회가 남기 전에,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자주 사랑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을 더 오래 기억해 두고 싶다. 비록 이제는 할머니를 직접 뵐 수 없지만, 할머니가 내게 주신 사랑은 여전히 내 삶 곳곳에 남아 있다. 앞으로도 그 사랑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할머니를 가장 오래 기억하는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받은 사랑을 아낌없이 전할 수 있다면, 할머니의 마음 또한 내 안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그렇게 사랑은 기억을 넘어 삶이 된다. 이 글이 나를 사랑으로 키워주신 할머니를 추억하는 마음이 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