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윤서 기자(문창·24)
대한민국 전체 인구 중 약 18.2%가 거주하는 서울특별시. 9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좁은 땅에서 각자의 삶을 영위한다. 사거리를 내려보는 카페에서 신호에 맞춰 길을 건너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신기하다. 저 끝없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주인공이라 믿으며 살아가는구나. 서울 곳곳을 지하철의 낯선 타인들에 끼어 돌아다니기도 몇 달, 나는 벌써 사람에 질렸다.
이럴 때면 생각나는 시가 한 편 있다. 청마 유치환 시인의 ‘생명의 서(書)’다. 시의 화자는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고 한다. 사막은 ‘한 번 뜬 백일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오직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의 끝’이다. 사막에 서 있는 것을 그는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는 것이라 말한다.
고교시절 이 시의 언어는 엄청난 해방감을 선사했다. 그때부터 내게 사막은 지친 사람들이 고독에서 의미를 찾고,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가 조종사와 조우하며, 패닉의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가 흘러나오는 곳이었다. 1학기가 끝나갈 무렵, 나는 사막을 경험하고픈 충동이 일었다. 그렇게 가장 뜨거운 8월, 난생 처음 아프리카 대륙에 발을 딛게 됐다.
행선지는 모로코의 사하라 사막이었다. 직항 노선이 없어 스페인을 통해 모로코로 들어가야 했다. 비행기, 기차, 버스를 모두 거치는 노정이다. 해 뜨기 직전의 푸르스름한 어둠 속 메르주가에 도착한다. 아직 나는 ‘영겁의 허적’도 ‘열렬한 고독’도 전혀 느끼지 못한다. 조금이나마 자본주의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했던 자본의 양에 또 질릴 뿐이었다.
사막적 체험은 다음 날에 이뤄진다. 저녁 여섯시 경, 혹이 하나인 검은 낙타에 올라타 끝없는 모래 사막을 가로지른다. 두시간 반 가량 이어진 여정이 아스라한 기억으로만 남아 뭔가를 놓친 것만 같다. 선명한 것은 바람이 터번을 때려대는 감각, 라면스프 같던 모래, 사방을 둘러봐도 우리뿐인 어색한 광활함 정도다. 유난히 커다래보였던 태양을 눈 아픈 줄도 모르고 응시하며 낙타의 속도로 전진해 나간다.
높은 사구 사이에 갇혀 모래와 하늘만이 보일 때쯤, 우리는 잠시 낙타에서 내려 지평선을 응시한다. 헉헉거리며 모래 동산 꼭대기에 올라 보드를 타고 내려오는 것도 즐거웠지만, 미리 준비해 간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넋을 놓을 때 가장 진귀한 사막을 체험한다. 데이비드 보위의 「“Heroes”」로 시작해 심규선의 「부디」로 끝나는 노래들을 듣고 있자니, <월플라워>의 대사 “And in this moment I swear, we are infinite”가 입 속을 맴돈다. 한때 세계적인 지식인들이 신지학에 매료됐던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사람의 흔적에서 벗어나 존재해 보려던 나는, 역설적이게도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내 발자국이 아프리카의 사막에 남겨지고, 곧 바람이 덮어버리는 걸 멍하니 바라본다. 어찌나 빨리 덮어 없애버리던지, 하잘 것 없는 내 고뇌와 사념들을 발자국에 함께 남겨두면 금세 자취를 감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리는 곧 2미터의 낙타 위에 다시 올라타 하루 묵게 될 캠프를 향해 간다. 이제 사방은 깜깜해져 땅과 하늘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이다지도 고립된 곳에서 잠들 수 있을까, 잠시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도 거긴 빵빵한 전력과 고양이들이 반겨주는 곳이었다.
아늑한 장소를 보고서 느꼈던 안도감은 자조를 불러온다. 사막을 살아내는 그네들의 발은 딱딱했다. 보기에 낙타의 발굽같기도 했다. 반면 신발 속에 감춰진 내 발은 어디로 보나 연약하다. 어떤 이들의 고행 공간이었을 사막이 내게는 꽤나 등 따신 곳이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갈망하던 고독감을 경험했는지, 그럴 가능성이라도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영국의 한 사상가는 이상 사회를 유토피아(Utopia)로 명명했다. 그의 말마따나 낙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결국 없는 유토피아는 동시에 어디든 있다. 내가 경험한 사막도 예상했던 만큼 완연히 고독한 공간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인간의 흔적을 덮어주는 대자연 속에서 위안을 얻었다. 나는 사람의 흔적이 덮힌 곳곳에서 내 낙원을 찾는다. 이로부터 나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