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구석 백수 양성단”, “눈만 높은 세대의 자업자득”
최근 청년층 고용 동향을 다룬 기사 댓글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쉬었음 청년’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대중은 어렵지 않게 조롱을 쏟아내곤 한다. 통계청이 만든 공식 행정 용어 ‘쉬었음’은 이제 나태하고 불성실한 청년을 비꼬는 멸칭이자 유머 소재로 쓰이고 있다. 생존을 건 질주 끝에 방전된 청년들을 누군가는 손쉬운 가십거리이자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다.
통계청은 2003년 ‘쉬었음’이라는 분류 기준을 도입했다. 이 용어는 육아·가사·통학·취업 준비 등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쉬었다”고 응답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특정한 가치 판단을 담은 개념이 아니라 노동시장 밖 인구를 파악하기 위한 통계상의 범주에 가깝다.
그러나 엔데믹 이후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자 사회의 시선은 급격히 바뀌었다. 일부는 시장이 살아났는데도 청년들이 일터로 나오지 않는다고 지적했고 미디어와 기성세대는 문제의 원인을 개인에게서 찾기 시작했다. 이들은 고용시장의 양극화, 중소기업의 열악한 노동환경, 청년들이 체감하는 심리적 고립감 같은 구조적 원인은 뒤로 미뤘다. 대신 “요즘 청년들은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 “눈이 높아 중소기업을 기피한다”는 식의 비난이 자리를 채웠다. 그 결과 사회는 현상을 설명하려 만든 지표를 개인의 게으름을 입증하는 낙인으로 바꿔버렸다.
하지만 오늘날 청년 고용 문제를 단순히 개인의 선택이나 태도의 문제로 환원하기는 어렵다.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면서 청년층의 기대 수준도 함께 변했고, 일자리 질에 대한 기준 역시 높아졌다. 이는 사회 변화가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러나 노동시장은 이러한 변화를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면서 기업들은 신규 채용 규모를 전반적으로 줄였다. 실제로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조사 결과를 보면 기업들의 채용 심리가 위축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조사에 따르면 신규 채용을 계획하고 있는 기업의 비율이 2022년 72%에서, 2025년에는 60.8%로 크게 줄어들었다. 반면 안정적이고 선호도가 높은 일자리는 여전히 부족하고, 노동조건이 열악한 일자리는 공백으로 남아 있다. 이 간극 속에서 많은 청년들은 ‘선택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선택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
더 큰 문제는 사회가 ‘쉬었음 청년’을 조롱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혐오의 언어는 청년들 내부로 스며들어 자기 자신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작동한다. 캠퍼스 안에서도 학생들은 “그냥 좀 쉬고 있다”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한다. 사람들은 휴식을 회복의 시간이 아니라 설명과 변명이 필요한 상태로 만든다.
그 결과 번아웃을 겪는 학생들조차 온전히 쉬지 못한다. 학생들은 휴학을 회복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경쟁에서 탈락했다는 선언처럼 받아들인다. 휴학원 한 장 뒤에는 ‘뒤처졌다’는 불안과 ‘나태하다’는 자기검열이 따라붙는다. 이는 개인의 의지 부족이 아니라 휴식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낸 구조적 압박이다.
이 문제는 결코 통계 속 일부 청년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대학에도 취업 준비를 위해 휴학을 고민하는 학생, 번아웃으로 잠시 쉬고 싶은 학생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누구나 삶의 어느 시점에서는 멈추거나 돌아가는 시간을 경험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멈춘 사람을 이해하기보다 뒤처진 사람으로 규정한다.
더 큰 문제는 조롱과 비난에 오래 노출된 청년들이 어느 순간 그 시선을 내면화해 스스로를 검열하기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왜 이것도 못 버틸까”, “나는 너무 나태한 것 아닌가”라는 자책은 사회가 만들어낸 낙인이 개인의 내면으로 스며든 결과다. 쉬어야 할 이유가 분명한데도 쉬지 못하고, 쉬고 있으면서도 쉬고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악순환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그러나 모든 시간이 반드시 생산적일 필요는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왜 쉬고 있느냐’고 비난하는 일이 아니라 청년들이 왜 쉬게 되었는지를 묻는 일이다. 우리가 ‘쉬었음 청년’이라는 낙인 뒤의 현실을 직시할 때, 청년 고용 문제의 본질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쉬었음 청년’이라는 조롱보다 청년들의 힘듦을 존중해 주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