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 글로벌 자본주의의 고도화와 기술 발전의 상징적 공간으로 걸프 지역 및 아라비아반도 국가들이 주목받고 있다. △세계 최고층 빌딩 부르즈 할리파로 대표되는 초현대적 도시 경관 △사우디아라비아의 자동화 스마트 시티 네옴 프로젝트 △카타르가 월드컵을 위해 구축한 최첨단 인프라 등은 현대 기술 자본주의가 도달한 정점을 시각적으로 증명한다. 이처럼 척박한 환경 속에서 단기간에 이뤄진 급격한 지역적 변화와 그것이 토착 문화에 미친 충격을 학술적·예술적으로 포착해 낸 흐름이 존재한다. 바로 2010년대 이후 현대 미술계에서 급부상한 예술 사조인 ‘걸프 퓨처리즘’이다.
걸프 퓨처리즘은 카타르계 미국인 작가 소피아 알 마리아와 쿠웨이트 출신 아티스트 파티마 알 카디리가 2012년 내세운 개념이다. 이 사조는 고도화된 하이퍼 현대화 과정에서 발생한 시공간적 단절을 핵심 탐구 대상으로 삼는다. 알 마리아는 해당 사조의 형성 배경을 “역사적 축적 없이 유목 생활 방식에서 극단적인 자본주의 체제로 급격히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역사적 공백과 시간적 격차”라고 설명한다. 즉, 세대 간의 유기적인 변화 과정 없이 가장 고대적인 삶의 방식이 극단적인 부와 자본주의에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생긴 역사의 잃어버린 조각을 예술적 언어로 추적하는 것이 걸프 퓨처리즘의 시발점이다.
미래주의의 역사적 재해석과 탈식민주의적 관점
본래 ‘미래주의’라는 용어는 20세기 초 예술가 필리포 토마소 마리네티의 주도로 탄생한 이탈리아 예술 운동에서 유래했다. 당시 이탈리아 미래주의는 애국주의적 사상 속에서 구축됐으며, 속도와 기계, 전쟁을 찬양하고 기술을 통한 고전적 미학과 전통의 파괴를 주장했다. 이들은 과거에 대한 향수나 고전적인 미학 관념을 철저히 거부하며 서구 기술 문명의 승리를 확신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미래주의는 다양한 변형을 거치며 탈식민주의*적 관점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걸프 퓨처리즘 역시 이러한 비평의 연장선상에 위치한다. 서구 중심의 미래주의에서 기술적 진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던 것과 달리, 걸프 퓨처리즘은 서구식 하이퍼 자본주의가 제3세계 혹은 아랍의 로컬 정체성과 충돌할 때 발생하는 균열을 다룬다. 이들은 단순한 기술 찬양을 넘어, 첨단 기술과 미디어가 사회를 뒤덮을 때, 원래 있던 토착 문화가 어떻게 소외되고, 또 그 안에서 어떻게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다시 만들어가는지를 탈식민주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소비 공간과 테크노문화: 걸프 퓨처리즘의 대표작
걸프 퓨처리즘 예술가들은 디지털 매체를 활용해 기술 문화의 내부 모순을 시각화한다. 소피아 알 마리아는 자신의 예술 설치 작품 ‘블랙 프라이데이’를 통해 두바이 몰이나 에미리트 몰 같은 대형 상업 공간을 분석의 중심에 둔다. 외부의 치명적인 사막 기후와 철저히 분리돼 24시간 인공 기후가 통제되는 쇼핑몰 내부에 걸프 지역 전통 복식인 칼리지 드레스를 입은 인물들을 배치함으로써, 고도 소비사회가 지역 주민들의 삶을 어떻게 소외시키고 파편화하는지 시각적 이미지로 제시한다.

국가 주도적 미래 서사와 현실의 구조적 모순
걸프 퓨처리즘이 국제 현대미술계에서 유의미한 비평적 성과를 거둔 이유는 걸프 국가들이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하는 미래주의 시나리오의 허구성과 구조적 모순을 정확히 짚어냈기 때문이다. 걸프 지역의 하이퍼-현대화는 단순히 민간 자본의 유입에 그치지 않고, 정부의 고도화된 전략에 의해 통제된다. △두바이의 2030 산업 전략 △카타르 국가 비전 2030 △2071년을 겨냥한 아랍에미리트의 인공지능 전략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기술이 제시하는 유토피아적 환상의 이면에는 분명한 그늘과 구조적 모순이 존재한다. 루브르 아부다비, 미래 박물관 등 선견지명 있는 프로젝트들은 표면적으로는 문화적 융합과 미래지향적 비전을 표현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삶의 현장에서 축적돼 온 실제 지역 공동체의 역사와 정체성은 개발 논리에 밀려 정지되거나 소실된다. 역사적 맥락이 사라진 채 급조된 공간은 인간을 주체적이고 역사적인 존재가 아니라, 고도 기술망에 종속된 일차원적인 소비자로 환원시킨다. 걸프 퓨처리즘은 이러한 국가 주도의 거대한 미래 서사가 어떻게 개인을 환경으로부터 단절시키고, 과도한 소비주의 속에서 인간소외를 심화시키는지 보여준다.
사막의 마천루, 그 화려한 블랙박스를 열다
우리대학 고연정 인문사회교양학부 교수는 걸프 퓨처리즘에 대해 “걸프 퓨처리즘은 오늘날의 스마트 도시와 첨단 기술 인프라를 내부의 작동 원리를 쉽게 파악할 수 없는 블랙박스에 비유한다”며 “이러한 시스템은 매끄럽고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규모가 커질수록 기술 이면의 자본 흐름과 물류 체계, 그리고 인간의 노동은 점점 더 보이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고 교수는 “걸프 퓨처리즘이 지적하는 문제는 특정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기술 발전을 곧 진보로 받아들이는 현대 사회 전반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초고속 압축성장을 경험한 한국 사회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과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결국 걸프 퓨처리즘은 단순히 특정 지역의 이국적인 풍경을 시각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거대 자본과 하이퍼 테크놀로지가 결합했을 때 인간의 삶과 사회 구조가 어떻게 뒤흔들리는지를 전위적인 방식으로 증명해 냈다. 사막 위 마천루의 화려한 모습은 인류의 기술적 성취를 대변하는 듯 보이지만, 걸프 퓨처리즘의 비판적 렌즈를 거치면 그것은 자본의 욕망이 투영된 인공적 결과물이자 현대 테크노 문화의 한계를 드러내는 징후로 재해석된다.
*탈식민주의: 식민지의 획득과 유지를 지향하는 대외 정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입장이나 태도
고유빈 수습기자
ub2006@seoultech.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