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스포츠 팬이라면 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경기 전체를 10분가량으로 줄인 하이라이트 영상이 본편을 대신한다. 틱톡, 인스타그램 릴스, 유튜브 쇼츠에서 스포츠 콘텐츠를 소비하는 팬들이 늘어나면서 스포츠 소비 방식이 숏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리그와 협회는 이러한 흐름에 맞춰 콘텐츠 전략을 재편하고, 나아가 경기 규칙 자체를 바꾸는 방식으로 응답하기 시작했다.
짧게 보는 팬들이 늘고 있다
팬들의 소비 방식 변화는 모든 스포츠에 해당한다. 스포츠 트렌드 보고서를 발간하는 딜로이트가 2025년 발표한 글로벌 스포츠 산업 보고서에 따르면 10~30대 팬의 90% 이상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경기 클립과 하이라이트를 소비한다고 응답했다. 이는 스포츠 콘텐츠 소비 방식이 풀타임 중계에서 짧은 영상 콘텐츠로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경기 전체보다 결정적인 장면 하나가 담긴 클립을 찾는 것이다. 팬들이 틱톡과 유튜브 쇼츠로 향하면서 스포츠 콘텐츠의 무게중심도 그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우리대학 박세혁 스포츠과학과 교수는 “스포츠를 통해 감독의 지략이나 선수들의 심리 상태까지 전체적인 서사를 읽으면 좋다는 걸 알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지루해서 다 못 보는 게 현실”이라며 “시간도 많이 걸리고 소비 패턴 자체가 그렇게 빠르게 변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사회 전반의 흐름과 연결 지어 설명했다. 박 교수는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의 행동이 변하듯이, 스포츠 소비 방식도 그 흐름 속에서 함께 변하고 있는 것”이라며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빠른 것을 원하기 때문에 이 트렌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리그와 구단이 직접 숏폼을 만든다
스포츠 구단들도 팬들의 변화를 받아들였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2018년부터 틱톡과 파트너십을 맺어왔으며, 틱톡 내 K리그 관련 인기 영상을 선정하고 시상하는 ‘이달의 틱톡 모먼트’를 운영 중이다. KBO 10개 구단도 2024시즌 유튜브 채널에 6,001건의 콘텐츠를 게시했으며, 이 중 쇼츠 포맷이 좋아요 수에서 가장 높은 팬 반응을 기록했다. 팬들도 쇼츠에 더 익숙해진 것이다. 팬들이 짧은 클립 형태로 경기를 소비하는 흐름에 맞춰, 리그 역시 관련 콘텐츠를 직접 제작·공급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박 교수는 “숏폼은 사람들에게 주의를 끌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라며 “흥미가 높지 않은 팬을 끌어들여 점차 팬들을 흥미가 높은 상태로 끌어가는 마케팅 전략으로 숏폼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야구팬 이무영 씨는 “경기를 다 챙겨보지는 않지만 득점 장면이나 하이라이트는 챙겨보는 편이다. 그래서 바쁘더라도 야구에 대한 관심을 계속 유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숏폼 콘텐츠가 팬들을 스포츠에 잡아놓는 역할을 하고 있다.

피치클락, 시간 지연 규제… 규칙도 변한다
팬들의 소비 방식 변화는 콘텐츠 전략을 넘어 경기 규칙에도 영향을 미쳤다. 경기 시간이 길수록 새로운 팬을 끌어들이기 어렵다는 판단으로, 리그들은 불필요하게 늘어지는 시간을 줄이는 방향으로 규칙을 바꾸기 시작했다.
MLB는 2023시즌부터 ‘피치클락’을 도입했다. 주자가 없을 때 투수는 15초, 주자가 있을 때는 18초 안에 공을 던져야 한다. 도입 첫해 400여 경기에서 평균 경기 시간이 이전 시즌보다 약 30분 줄었다. 2025년에는 평균 경기 시간이 2시간 36분까지 단축됐고, ESPN*의 MLB 중계 시청률은 전년 대비 크게 올랐다.
축구도 다르지 않다. FIFA는 2026 북중미 월드컵부터 스로인**과 골킥***에 각각 5초, 선수 교체에는 10초의 제한 시간을 뒀다. FIFA 심판위원장 피에를루이지 콜리나는 “이 규정은 2022 카타르 월드컵처럼 추가 시간이 지나치게 길어지는 상황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늘어지는 시간을 없애 경기 밀도를 높이겠다는 취지다.
박 교수는 “다들 하이라이트를 보기 때문에 경기 안에서도 짧고 간결하게 가야 한다”며 “경기가 루즈하게 흘러가면 바로 채널을 돌리는 시대이기 때문에 규칙 변화는 팬들의 시선을 붙잡기 위한 흐름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러한 규칙 변화는 사실 오래전부터 게임을 더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 꾸준히 이뤄져 온 것”이라며 “농구의 3점 슛 거리 조정이나 쿼터 시간 변경도 모두 팬의 경험을 위해 바꿔온 것들”이라고 덧붙였다.
이 씨는 “피치클락 도입 이후 늘어지는 느낌이 줄어들어 경기가 확실히 보기 편해졌다”고 말했다. 또한 “경기 시간을 줄이기 위해 다른 시도들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모두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스포츠도 선택한 빠른 속도
숏폼화는 스포츠 산업 전반을 관통하는 흐름이 됐다. 일각에서는 선수들의 신경전 같은 경기 내의 서사가 희석될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온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숏폼이 스포츠의 서사를 없애는 게 아니라, 단편 소설을 보다가 장편 소설로 끌고 가는 것”이라며 “숏폼으로 관심을 갖게 된 팬이 결국 경기장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규칙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팬들이 아예 발도 들여놓지 않는다”며 스포츠의 변화는 어쩔 수 없는 트렌드라고 설명했다.
스포츠는 팬들의 변화에 맞춰 끊임없이 진화해 왔다. 앞으로 변화하는 팬들의 일상 속에 스포츠가 어떤 방식으로 스며들지 주목된다.
*ESPN: 미국의 스포츠 전문 케이블 및 위성 방송 채널.
**스로인: 공이 터치라인 밖으로 나갔을 때 상대 팀 선수가 양손으로 공을 머리 위에서 던져 경기를 재개하는 방식.
***골킥: 공격 팀이 찬 공이 골라인 밖으로 나갔을 때 수비 팀 골키퍼 또는 선수가 골 에어리어 안에서 공을 차서 경기를 재개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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