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용찬 감독이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촬영 중인 현장의 모습이다.
21세기는 텍스트 몇 줄이면, 단 몇 초 만에 정교한 그림과 실사 같은 동영상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다. 생성형 AI 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예술 제작의 진입장벽을 낮췄고, 효율성과 신속성을 최우선시하는 현대 사회에서 예술마저도 자동화 가능한 생산의 영역으로 재편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창작의 편리함이 극대화된 오늘날에도, ‘인간이 직접 만드는 예술’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본지는 21세기 AI 시대라는 기술적 대변환 속에서, 왜 여전히 인간의 고유한 사고 과정과 예술 활동이 필수 불가결한지 짚어보고자 한다.
‘시간과 고통’을 학습하는 인간의 서사
AI와 인간의 학습 방식은 얼핏 유사해 보이지만 그 본질에 있어 명확한 한계를 지닌다. AI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단시간에 수집하고 형태적 특성을 학습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삶에 머무는 ‘시간’과 ‘경험’을 학습한다. 현직 다큐멘터리 연출가로 활동 중인 이용찬 감독은 “AI는 수많은 데이터를 단시간 내에 흡수하지만, 한 인간이 15년 넘게 외모 콤플렉스를 겪으며 쌓아온 고통스러운 경험의 시간과 그 안에 담긴 주관적 강조점까지 학습할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인간의 예술은 기술적 완벽함이 아니라, 불완전한 삶의 궤적과 실패, 고통의 감정을 경험하며 비로소 개성을 얻는다. 역사적으로도 예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던 시기는 △흑사병 △세계 대전 △동일본 대지진과 같이 인류가 거대한 고통과 비극에 직면했을 때였다. 예술은 삶의 고통을 일시적으로 잊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통의 의미를 성찰하고 이를 받아들이도록 이끌어 왔다.
우리대학 학우 이서연 씨(문창·24)는 예술의 일종인 문학의 의미에 대해 “인간이 끊임없이 자신의 불편함을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타자의 불편과 충돌하고 고민하며, 기술이 발전하고 문화가 생겨난다. 문학은 바로 그 지점에서 만들어진다. 내가 너무 불쌍하고, 아프고, 기쁘고, 사랑스러운 순간. 문학은 결국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순간에서 촉발된다. 결국 문학은 사유와 감각을 통해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예술”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대학 학우 오의찬 씨(문창·22)는 AI에 대해 “AI는 결핍을 느낄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장벽이라고 생각한다. 창작자의 고독이나 간절함뿐만 아니라, AI는 이미 인간의 모든 분야로부터 자원을 지원받고 있고, 연루돼 있다. 동시에 AI가 어떤 명령을 잘못 수행해 피해가 발생해도 책임을 지는 건 설계자와 사용자”라고 말했다. 또한 오 씨는 AI와 인간의 차이점에 대해 “AI는 자신의 업보도 청산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비판적으로 생각할 능력 자체도 가지고 있지 않다. 세상에 대한 불만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테니까”라고 말하며, AI와 인간이 만들어내는 문학이 왜 다를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서의 예술
지난 2023년, 제작비 절감을 위해 배우와 작가의 권리를 무시한 AI 사용 계획에 반발해 ‘할리우드 미국 작가조합 파업’이 일어났다. 오늘날 AI가 창작자들에게 위협으로 다가오는 현상의 이면에는, 예술을 단지 시장에 납품해야 하는 ‘결과물’로만 바라보는 자본주의적 관점이 자리 잡고 있다.
효율성의 논리에 따라 창작의 과정을 AI에게 위임한다면, 인간은 창작을 통한 자기 성찰과 사고의 기회를 박탈당할 수 있다. 창작자가 작품을 구상하고, 실수를 바로잡으며, 수많은 고민과 번민 속에서 한 줄의 글을 쓰고 한 프레임을 편집하는 과정은 인간의 지적․감정적 성장과 직결된다. 이 감독은 “자본의 논리에서는 이 불완전하고 비효율적인 노동이 무가치하게 보일지 몰라도, 인간이 비효율의 과정을 직접 감당하는 것은 사회 전체의 정서적 건강을 지탱하는 가장 효율적인 인문학적 행위”라고 말했다. 인간의 불안과 정서적 고갈이 사회적 비용으로 직결되는 현대 사회에서, 예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삶의 가치를 환원하는 강력한 동력이 된다.
언어로서의 도구, 타인과의 진정한 연결
과거 사진 기술의 등장으로 그림이 사실적 묘사에서 벗어나 추상과 인상주의로 새로운 길을 열었듯, AI의 등장 역시 연속된 사진에 얽매였던 영상과 예술의 표현 범위를 확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결국 핵심은 ‘도구의 화려함’이 아니라 그 도구를 통해 ‘창작자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이다.
이 감독은 “모든 예술은 타인에게 마음을 전하는 언어”라며, “기술이라는 도구에 잡아먹히지 않고, 조금 어색하거나 부족할지라도 자신만의 목소리를 솔직하게 담아내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기술이 모든 것을 자동화하고, 최단 거리로 모두를 이끄는 시대에서, 예술은 ‘인간다움’이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으로 기능한다. 예술은 끊임없이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인간 고유의 사고와 감정 노동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이 씨는 “내가 무너져 내렸을 때 나를 지지해준 목소리는 타인의 글 속에 있었다. 또한 글은 내가 알지 못하는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예컨대 나는 글을 통해 장애인의 고통을 이해해 왔다. 글은 그들의 불편함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하며, AI시대에도 여전히 인간의 예술이 유효한 이유에 대해 말했다.
오 씨는 “AI가 상용화되고 나서, AI의 무분별한 사용이 급증한 것처럼, 사람들의 언어도 무책임하게 사용된다고 느꼈다. 우리는 본인의 글에 대한 비판이나 사후 처리를 거부하기도 한다. 나는 그 두 가지가 무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윤리적 측면뿐 아니라, 예술적 측면에서도 내가 선택한 주제와 소재를 존중해야 한다. 또 그것을 끝까지 밀어붙이기 위해서 책임을 지고, 수차례의 피드백과 수정을 받아들이고 견뎌야 한다”며 AI시대 창작자가 가져야 하는 태도에 대해 설명했다.
조금은 부끄럽고 불완전할지라도 자신의 언어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시도와, 비효율성을 감수하더라도 자신만의 언어로 세상을 탐구하려는 창작 과정이야말로, AI시대에도 예술이 지속돼야 하는 명확한 이유이다.
고유빈 기자
ub2006@seoultech.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