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SNS나 숏폼 등 자극적인 디지털 콘텐츠들의 문제점이 대두되면서 아날로그 문화에 관심이 쏠리며, LP와 필름 카메라 등이 유행의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유행의 이유는 아날로그로 대표되는 콘텐츠들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LP는 온도나 습도에 아주 민감하고 필름 카메라는 사진이 인화되기까지 적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러한 ‘불편한 것’들이 유행하게 된 동력은 무엇일까.
재성장하는 LP 시장
빈지노의 앨범 「노비츠키」는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반을 수상한 기념으로 「노비츠키」 한정판 LP를 발매했다. 이에 사람들이 몰리며 금새 완판됐다. 최근 음반시장의 경향을 보면 BTS, 실리카겔, 검정치마 등 최근 유행한 노래를 LP로 발매한다거나 산울림, 이소라, 변진섭 등 과거 유행했던 옛 가수들의 앨범이 LP로 출시되기도 한다.
음반시장에서 LP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음반·도서 판매 사이트 YES24가 지난해 발표한 음반 판매 데이터에 따르면, LP 판매량은 2020년 기준 전년 대비 2.1배 이상, 2021년 기준 1.4배 이상 증가하며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젊은 층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2022년 기준 20대 16.5%, 30대 19.8%로, 90년대 초반 LP가 대체되기 시작했던 점을 생각하면 LP를 처음 접하는 젊은 층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 셈이다.
LP의 유행은 국내에만 국한된 일은 아니다. 미국 음반산업협회(RIAA)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0년을 기준으로 LP판매액(2억 3,210억달러)이 1986년 이후 처음으로 CD판매액(1억 2,990만달러)을 앞섰으며, LP의 판매액은 2006년 이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턴테이블은 없지만
LP는 사고싶어
LP는 Long Playing record의 약자로 디스크 판에 소리골이라고 불리는 홈을 파놓고 이후에 *턴테이블의 *카트리지가 소리골을 읽어나가면서 소리가 발생하는 구조다. 이런 구조 탓에 LP는 충격이나 작은 먼지에도 소리가 쉽게 변할 정도로 민감하다. 그렇기 때문에 CD나 온라인 스트리밍에 비해 보관도 힘들고 비용 역시 많이든다. 불편함을 무릅쓰고도 LP를 구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음악 데이터 기업 루미네이트가 지난 2022년 발간한 연말 보고서(Luminate U.S. Year-End Music Report for 2022)에 따르면 LP를 구매하는 사람의 절반 이상이 턴테이블이 없다고 한다. 우리 대학 재학생 A씨는 턴테이블 없이 LP를 수집한다고 했다. 그는 왜 턴테이블이 없는데도 LP를 수집하느냐는 질문에 “사실 음악 자체는 스트리밍 하는게 훨씬 질이 좋아요. 음악 스트리밍 앱 Spotify 같은 경우는 무손실 음질을 지원하기 때문에 LP로는 (스트리밍의 음질을) 따라가기 힘들죠. 그래서 LP는 음악을 들으려고 사기보다는 음악을 소장한다는 느낌을 받으려고 사는 것 같아요. 앨범 자켓을 하나의 인테리어 소품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실물 레코드가 주는 고풍스러운 느낌도 있고요”라고 답했다.
물론 음악을 듣기 위해 LP를 수집하는 경우도 있었다. 재학생 B 씨는 “LP를 들을 때는 그만한 준비가 필요해요. 앨범을 고르고 턴테이블을 가져와서 앨범을 턴테이블에 놓고 카트리지를 내리고 재생시키는 일련의 과정이 있어야 음악이 나오죠. 이러한 과정을 거치고 나면 순전히 음악에 집중할 수 있어서 이런 준비 과정 때문에 오히려 LP를 모으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LP 듣고 싶다면…
현대 바이닐 앤
플라스틱
누구나 무료로 LP를 들을 수 있는 곳이 있다. 한남동에 위치한 ‘현대 바이닐 앤 플라스틱’이다. 실제로 방문한 이곳에서는 직원들이 직접 선정한 100개의 LP 음반을 청음할 수 있다. 직원에게 LP를 듣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간단히 이용설명을 해준다. 누구나 30분간 원하는 LP를 들을 수 있으며, 한번에 세 개의 앨범까지 선택해서 들어볼 수 있고 반납할 때는 반드시 직원을 통해 반납해야 한다.
최근 재결합했다는 소식으로 돌아온 Oasis의 3집 앨범 「Be Here Now」와 마이클 잭슨의 6집 앨범 「Thriller」,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7집 앨범 「Californication」을 골라 자리에 앉았다. LP는 하나의 면에 여러 개의 노래가 담겨있다. LP의 양 면은 각각 A사이드, B사이드로 나뉘어 노래가 담겨 있으며 Oasis와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앨범의 경우 하나의 앨범에 두 개의 LP판으로 구성되어 총 4개의 사이드에 노래가 담겼다. 직접 턴테이블의 뚜껑을 열고 LP를 올려놓고 들으니 새롭고 신선한 느낌이 들었고 온전히 음악에 집중할 수 있었다. 좋아하는 노래만 골라서 듣는 기존의 스트리밍 방식과는 다르게 앨범으로 노래를 들으니 유명한 노래뿐 아니라 익숙한 앨범 속 숨어있는 명곡들을 발견하면서 해당 아티스트의 다양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노래의 의도나 앨범 재킷 등에 대한 설명을 담은 ‘라이너 노트’ 역시 새롭게 다가왔다. 다만 스트리밍으로 듣는 음악에 비해선 음질이 떨어져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필름 카메라,
한 장 한 장 신중히
필름 카메라는 화학 처리한 필름이 빛과 반응하면서 상이 맺히는 원리를 이용한 카메라다. 필름 카메라는 파일로 저장되는 디지털카메라와 달리 필름에 상이 남기 때문에 사진을 찍고 나면 인화를 해야 한다. 인화를 거쳐야만 필름 속 상이 사진이 된다. 필름을 인화하려면 필름 통에서 필름을 빼고, 필름을 휠에 감은 뒤 휠을 탱크에 넣어 현상액과 정지액 등의 화학약품으로 처리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빛이 없는 암실에서 진행해야 하는 만큼 꽤 번거로운 작업이다. 이러한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약품과 암실을 마련해 직접 필름 사진의 인화를 시도하는 경우도 많다.
필름 카메라는 디지털카메라처럼 찍고 나서 바로 확인할 수 없고 인화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우리대학 사진동아리 어의 사진반을 운영하고 있는 박태용(금속공예 ·20) 씨는 이러한 기다림 속에 필름의 매력이 있다고 얘기했다. “필름 카메라에는 기다림의 미학이 있어요. 필름에 담은 사진이 인화되기까지 필름 카메라는 확인할 수 없잖아요. 미리 알 수 없는 결과물을 기다리면서 기대하는 과정이 필름 카메라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라며 필름 카메라가 인화될 때까지의 기다림 자체를 매력으로 느낀다고 얘기했다.
필름 카메라의 아날로그적인 특성에 매력을 느끼는 경우도 있었다. 이경훈(기자차·23) 씨는 “필름 카메라는 그날의 빛을 그대로 담아낸다는 점에서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디지털은 아무래도 0과 1로 치환되는 부분이 존재하니까요. 있는 그대로의 빛을 담아서 말그대로 그 시간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필름 카메라의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라며 아날로그 자체가 주는 매력에 대해 얘기했다.
찍을 때마다 필름이 한 장씩 소모되기 때문에 디지털 카메라처럼 무작정 많이 찍을 수도 없다. 필름 카메라의 유행 역시 LP의 유행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누구나 핸드폰으로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이기에 오히려 한 장 한 장 공들여 찍는 경험에 가치가 생긴다.
뉴트로(Newtro)
열풍 너머
뉴트로는 새롭다는 New(뉴)와 복고풍을 뜻하는 Retro(레트로)를 합친 말로, 밀레니얼 세대가 과거의 것들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느끼는 것을 말한다. LP나 필름카메라 역시 뉴트로에 속한다. 과거의 것들을 ‘추억’이 아닌 ‘새로움’으로 받아들이고 불편함 자체에 흥미를 가지는 것인 셈이다. 디지털에 익숙한 세대가 아날로그에 매력을 느끼는 것 역시 뉴트로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디지털은 아날로그에 비해 편하다. 그러나 편한 만큼 체험이 주는 울림은 적다. *턴테이블: LP를 재생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자기기 *카트리지: 레코드판에 녹음된 음을 턴테이블에 달린 바늘을 통해 기계적 진동을 전기 신호로 변환하는 장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