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신학기마다 대학가는 활기가 넘치지만, 학생들을 곤란하게 하는 불청객 또한 함께 찾아온다. 종교를 가장해 사회적으로 해를 끼치는 ‘사이비’ 단체들이다. 사이비(似而非)란 겉으로 보기엔 비슷하지만 근본은 전혀 다르다는 뜻으로, 학생들의 사회적 경험 부족과 불안감을 교묘히 악용해 접근한다. 본지는 우리대학 내 사이비 포교 실태를 점검하고 문제점을 짚어봤다.
학우 88%, 사이비 목격 또는 피해 경험
지난 4월 1일(화)부터 5일(금)까지 우리대학 학우 103명(신입생 34명, 재학생 69명)을 대상으로 ‘교내 사이비 포교 활동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88%가 ‘교내 또는 학교 인근에서 사이비 포교를 당하거나 목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포교 활동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심각하다(52%) ▲보통(22%) ▲아주 심각하다(17%) 순으로, 대부분의 학생들이 사이비 포교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로 우리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서는 사이비 출몰 경고와 피해를 호소하는 게시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설문 결과에 따르면, 사이비 포교를 경험한 장소(중복 응답 가능)는 ▲향학로(56%) ▲정문 근처(54%) ▲철길 근처(35%) ▲공릉역 근처(16%) 순이었으며 건물 내부에서 포교를 경험한 경우도 10%로 조사됐다. 학우 A씨는 “어의관에서 공부하던 중, 사이비가 접근해 옆자리로 다가와 지속적으로 포교를 시도해 불편하고 시간도 아까웠다”고 말했다.
사이비 단체의 주요 접근 방식(중복 응답 가능)은 ▲대화 요청(86%) ▲설문 조사 요청(48%) ▲심리 검사 권유(22%) 등이었다. 최근에는 퍼스널 컬러 진단, MBTI 검사 등 20대들이 흥미 있어 할 주제로 접근해오는 경우도 많다. 자신을 우리대학 졸업생이라고 소개하거나 학과 과잠을 입고 나타나 경계심을 낮추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개인 정보를 지나치게 요구하거나, 이후 지속적인 연락을 통해 학생들에게 압박감을 주기도 한다. 학우 B씨는 “설문조사를 하던 중 계속 전화번호를 요구해 약속에 늦을까 봐 어쩔 수 없이 알려줬는데, 계속 만나자며 연락이 와서 곤혹스러웠다”며 불쾌했던 경험을 전했다.
사이비의 집중 표적, 신입생
특히 캠퍼스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신입생들은 사이비 포교에 더 취약하다. 지난해 시험을 마치고 향학로를 지나가다 세 차례나 포교를 당했다는 윤지선(기시디·24) 씨는 “시험 잘 봤냐고 물어봐서 학교 튜터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사이비였다”며 “비슷한 상황이 두 번 더 반복되니 일부러 학생들이 많은 날을 골라 포교하는 것이 느껴져 황당하고 화가 났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은 신입생 1,000명 이상이 동시에 같은 과목 시험을 치르는 날이었다. 홍소민(영문·24) 씨 역시 “신입생 환영회 장소를 찾지 못해 헤매던 중 학교 관계자인줄 알고 도움을 받았지만 사이비였고, 30분 이상 이어지는 포교로 인해 행사에 늦을 뻔했다”며 피해 경험을 털어놨다.
입시 날에 많은 인원의 사이비들을 목격했다는 사례도 있다. 학우 C씨는 “재작년 수시 면접날 20~30명의 사이비들이 나타나 면접을 마친 학생들에게 조직적으로 접근하는 모습을 봤다”며 “학교 측에서 학생들에게 주의하라고 미리 고지를 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답했다. D씨(시디·24)는 “조형대 실기시험 날 특히 사이비 포교가 극성을 부리는데, 마음이 복잡하거나 심리적으로 힘든 학생들을 의도적으로 노리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위장 동아리 주의보, 우리대학은?
사이비 단체들이 동아리로 위장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정상적인 동아리로 위장해 신뢰를 형성한 후 점차 종교적 내용을 설파하거나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방식이다. 이서현(전자·23) 씨는 컬러링 북 연합 동아리에 가입했다가 피해를 볼 뻔했다. 그는 “초반에는 정상적인 동아리처럼 보였으나, 개인정보를 과도하게 요구하고 종교적 대화를 이어가려 했다”며 “심리 상담 센터 방문을 강요받는 등 압박을 느껴 동아리를 떠났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친밀감이 형성되면 위험성을 알면서도 빠져나오기 힘든 구조”라며 “소규모 연합 동아리 가입 시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우리대학 동아리는 안전할까? ‘제41대 파동 동아리연합회’에 따르면 지금까지 사이비 단체와 관련된 중앙동아리는 없다. 동아리 승격 시 엄격한 절차를 거치기 때문이다. 다만 이 외의 동아리들은 절차가 엄격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본지는 이단 및 사이비 종교를 연구하는 <현대종교>의 이사장 겸 편집장인 탁지일 교수에게 사이비 종교로부터 청년들을 지키는 법을 물었다. 탁지일 교수는 <부산성시화 이단상담소>의 소장과 부산장신대학교 신학과 교수직을 겸하고 있다.
Q. 상담을 요청하는 분들 중 대학생의 비율은 어떻게 되나요?
A. 사이비 종교의 피해가 대학생들에게서 상대적으로 많이 나타납니다. 주변 자취방을 공략하는 포교자도 눈에 많이 띕니다. 심지어 위장 동아리를 만들거나, 기존 동아리를 장악하는 등의 비윤리적 방법을 통해 사이비 종교 신도들이 캠퍼스를 종횡무진 누비고 있습니다.
Q. 특히 새학기 캠퍼스에서 사이비 포교가 성행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수능을 마친 후부터 대학 오리엔테이션까지의 기간까지가 포교의 극성수기입니다. 타지역에서 온 신입생들의 고립감과 외로움을 노리고 학연과 지연을 내세워 접근하는 사이비 신도들도 많습니다. 캠퍼스는 이단들의 활동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Q. 사이비들이 대학생을 포교하는 주요 수법은 무엇이 있나요?
A. 사이비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가지고 ‘눈높이 포교’를 진행합니다. 요즘에는 ▲멘탈 케어 ▲스펙 계발 ▲무료 퍼스널 컬러 테스트까지 제공하면서 다가옵니다. ▲해외 봉사 활동과 ▲해외 문화·언어 연수는 사이비들의 필수 장착 아이템입니다. 요즘은 특히 온라인과 한류를 이용한 사이비들이 활개를 칩니다.
Q. 사이비들을 만나면 어떤 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좋나요?
A. 캠퍼스 내에서 다가오는 사이비들에 대해서는 ‘나중에요’라든지 ‘생각해 볼게요’ 등의 여지를 주지 말고 단호하게 거절해야 합니다. 만약 캠퍼스 내에서 사이비의 포교를 목격하거나 겪으면 관련 기관에 알려 예상되는 피해를 예방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내 포교활동, 제지할 법적 근거는?
그렇다면, 캠퍼스 내의 사이비 포교활동을 막을 법률적 근거는 없을까. 법률사무소 ‘도율’의 장혜린 대표 변호사(이하 장 변호사)는 “단순하게 대화를 시도하는 행위만으로는 법적으로 문제 되지 않는다(문제 삼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나 강압적인 방식으로 불쾌감을 주는 경우에는 경범죄 처벌법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경범죄 처벌법에 따르면 ▲공공장소에서 다른 사람에게 지나치게 불쾌감을 주는 행위 ▲강제적으로 특정 행동을 유도하는 행위 등이 처벌 대상이다.
교외(캠퍼스 인근)에서의 포교 활동에 의해 금전적, 심리적 피해를 입은 개인이 법적 보호를 받을 방법에 대해서는 “사이비 종교 측을 사기 또는 협박 등 형사적으로 고소할 수 있다”며, “그동안 갈취당한 금액과 심리적 피해를 묶어 민사적으로 부당이득 반환이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고 서술했다.
사이비 포교, 현행법에 맹점 있어
대한민국은 헌법 제20조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다. 종교의 자유는 ‘믿을 자유’와 ‘거부할 자유’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사이비 포교를 적극적으로 제지하기 어려운 이유도 해당 조항에 있다. 사이비 포교 행위에 다양한 책임을 물어 처벌받게 할 수는 있으나 특정 조건을 만족시켜야만 한다. 앞서 언급했듯 타인에게 피해를 주며 시끄럽게 포교할 경우에는 경범죄 처벌법, 의사에 반하여 지속적으로 쫓아오거나 위협할 경우에는 스토킹 법으로 처벌하는 식이다.
법제도의 공백은 하위 기관에 과중한 부담으로 귀결된다. 본지는 우리대학 재난안전관리본부 김대용 학생안전센터장과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김대용 학생안전센터장은 “교내 사이비 단체에 특화된 대응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해당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며 “(조속한 시일 내에) 관련 부서를 지정하여 신고 및 피해 방지에 대한 체계를 마련해 나갈 계획”이라 밝혔다. 또한 “대학본부 차원에서 관련 회의를 개최하고 ▲대학본부(학생처) ▲총학생회 ▲노원경찰서가 협력”할 것임을 덧붙였다.
현재 우리대학은 해당 사안에 특화된 대응 시스템이 부재하는 대신 각 개별 부서에서 자체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기도 한다. 입학처에서는 매년 수시 면접일, 수험생을 노린 사이비들의 포교를 막기 위해 캠퍼스 안내 인원으로 도우미 학생들을 분산해 배치하고 있다. 직원들이 캠퍼스를 돌아다니다 사이비를 발견하면 수시로 주의를 주기도 한다. 이후의 처리는 여전히 모호하다. 책임을 물을 법적 근거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본인 몫의 ‘종교의 자유’를 내세우며 캠퍼스로, 등굣길로, 지하철역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그에 반해 우리 모두는 스스로의 ‘거부할 자유’를 충만하게 누리고 있을까.
대학 내 사이비 대처에 시급한 사회적 관심
법과 제도의 개정을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사회적 관심이다. 대학생의 사이비 피해는 논의 자체가 활발하지 않으며, 연구도 더딘 편이다. 청년을 노리는 이단 단체의 포교에 대해 공적 논의가 활발히 개진되어야 한다. 그들이 집요하게 대학가를 찾는 이유는 물론이고 청년들이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계기에 대한 사회적 연구가 필요하다.
황아영 기자 ayoung6120@seoultech.ac.kr
이혜원 수습기자 dl0840@seoultech.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