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규(전정·21)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올 때면 사람이 미워진다. 사람이 미처 내리기도 전에 타려고 밀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잡동사니가 가득 들었는지 불룩한 가방을 뒤로 메고 통행을 방해하기도 한다. 지하철에 나와 좁은 골목길에 다다랐을 때 마주 오던 사람을 배려해 몸을 돌리면 상대 쪽에서 기어코 그대로 걸어와 어깨를 부딪히기도 한다. 세상 돌아가는 일은 또 어떤가. ‘지구인들의 조별과제’라고 불리는 탄소 중립과 같은 지구온난화 방지대책들은 유명무실하며, 러-우 전쟁의 책임을 물어 러시아산 원유거래를 금지했더니 인도에서 러시아산 원유를 대량으로 수입해 막대한 수익을 얻기도 한 사례도 있었다. 흔히 접하는 인터넷상의 댓글창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세상이다보니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인간 혐오에 빠질 수 있다. 나아가 자신이 겪은 특정 부류의 사람들의 특성을 일반화해 인종, 성별, 세대, 지역 등의 정체성 자체에 낙인을 찍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문화평론가 신형철의 저서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라는 책에는 “우리는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다”는 구절이 있다. 사람은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타인을 평가할 때,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평가를 내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 마주친 사람들도 각자의 사정이 있었을 수 있다. 이를테면 오늘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밀치던 아주머니는 노숙자를 위한 무료 급식 봉사를 하는데, 거기에 늦을까 봐 마음이 급했던 것일 수도 있고, 길에서 어깨를 부딪친 사람은 평소 걱정이 많아 미처 신경 쓰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반대로 내가 남에게 폐를 끼치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며 넘겼을지 모른다. 나는 내 행동에 대해서는 전체적인 맥락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타인을 이해할 수 있을까. 『1984』와 『동물농장』의 저자로 이름을 알린 조지오웰의 책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작은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조지 오웰은 한 진보단체로부터 노동자들의 삶을 취재해달라는 요청을 받게된다. 그가 취재 요청을 수락하고 탄광 노동자들을 취재하면서 이를 르포르타주(경험을 재구성한 소설) 형식의 소설로 재구성한 것이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다. 취재를 시작한 그가 처음 마주한 것은 노동자들의 악취와 지저분한 손이었다. 평생을 노동자를 위해 싸워온 조지 오웰이었지만 노동자들의 악취와 주거 환경, 식사 습관들은 버티기 어렵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조지 오웰은 노동자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심층적으로 접근한다. 탄광에 직접 취재를 가기도 하고 노동자들의 재정을 분석하기도 한다. 탄광의 경우 주별로 수입이 다른데, 이를 세세하게 정리하고, 광부들의 지출을 둘러본다. 그 결과 노동자들은 일요일을 제외한 주 6일을 탄광에 보내면서도 작은 화장실과 온수가 없어 목욕할 수 있는 집은 한 채도 없었으며, 악취를 풍기는 유독가스와 탄광 쓰레기 사이에 살았다. 이마저도 탄광에서 다쳐서 실업급여로 연명하는 가정이라면 식비나 연료비까지 긴축해 신장이 작아지고 영양실조로 인해 각종 지병에 시달리기도 했다.
타인을 이해하려면 그들의 삶에 들어가야한다. 내가 그러하듯 타인도 입체적이기 때문이다. 만약 조지 오웰처럼 심층적으로 그들의 삶에 들어갈 자신이 없다면, 타인을 판단하지 않는 편이 여러모로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