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혁(스과·24)

11월엔 등교할 때 맡는 공릉역 빵집 냄새처럼 내 오감을 자극하는 수능 향기가 난다. 사실 이번이 나에게 성인 이후 처음 맞이하는 수능 없는 11월 둘째 주 목요일이다. 정신없이 끝난 중간고사들과 함께 별생각 없이 옷장에서 S가 새겨진 내 과잠을 꺼내 살포시 후드 위에 올려본다. 지하철을 타고 학교로 가는 길, K, Y가 새겨진 다른 학교 과잠이 눈에 들어오면 슬쩍 등 뒤도 구경해 본다. 내가 가고 싶었던 학교의 옷이 보일 때면 부럽기도 하지만, 이내 다시 내가 듣던 노래 가사를 흥얼거리거나 폰 속 메모장을 한 번 들춰본다. 두꺼운 옷을 입고 열심히 어의관까지 걸어가도 등에선 땀 한 방울 나지 않고, 오히려 손이 시려 따뜻한 물로 녹여본다. 차가운 공기가 이제는 나를 떨리게 하지 않는다. 수능까지 열흘 남짓한 시간, 오늘도 난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온전한 내 일상을 살아간다. 내가 12시에 달리기를 해도, 10시에 친구의 부름에 시원한 소주를 쪽갈비와 함께 넘겨도, 나에게 조급함이란 내일까지 내야 할 과제뿐이다. 수능날 단 하루, 대략 8시간의 사투로 내 8개월이 종이 한 장에 담겼다. 그 종이 한 장이 내 모든 가능성을 만들고 또 없앴다. 나는 그 가능성에 중독됐었고, 쉽게 끊어내지 못했다.

나는 군대에서 대학에 합격했다. 과기대에 합격한 그날, 나는 일병 5호봉이었다. 2023년 7월, 해가 쨍쨍 내리던 여름에 입대했다. 훈련소에서 수능 특강을 풀던 때가 떠오른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입대 초반 적응기에 받은 갖은 스트레스를 ‘수험생’이라는 생각으로 버텼다. 공부가 내 약점이 되지 않도록 새로운 공간에서의 인간관계, 맡은 업무 숙달 등 군 생활에 최선을 다했다. 일과 이후 주어지는 달콤한 개인정비시간에도 누워서 유튜브를 보고 싶은 마음을 참고 독서실로 향했다. 점호가 끝나고 동기들과 떠들고 싶은 시간에도 또 참고 독서실로 향했다. 참고, 또 노력하는 법. 흔한 합격수기에서만 보던 ‘간절함’을 나는 이때 몸으로 깨달았다. 사회에서 공부하던 내 모습을 돌이켜보며 후회도 많았지만, 지나간 시간보다 현재에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먹었다. 그 결과, 입대 후 4개월 만에 본 수능에서 합격했다.

20대 초반, ‘증명’의 방법을 수능 성적으로만 생각했던 내가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 시간을 버텨내며 얻은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건 분명하다. 수능은 단순한 시험이 아니었다. 참고 버티는 법, 나를 믿는 법을 배운 과정이었다. 그때의 끈기와 집중력은 지금도 내 안에 남아 있다. 이제 나는 그 경험을 내가 흥미를 느끼는 다른 분야로 확장하고 싶다. 방식은 달라도, 원하는 것을 향해 참고 노력한다면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결실을 볼 것이라 믿는다. 모두에게 각자만의 수능 이야기가 있다. 누군가에겐 아쉬움으로, 누군가에겐 새로운 시작으로 남겠지만, 그 시간을 견뎌낸 마음만은 모두 같다. 그 마음이 앞으로의 삶에서도 또 다른 도전과 성장을 이끌어줄 것이다. 수능 향기가 나는 이 계절, 한때 무언가에 온 마음을 쏟았던 그 시절의 자신을 다시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