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봉구 창동역 1번 출구에서 3분쯤 걸으면, 아파트 숲 앞으로 검은 사각형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진 매체를 중심으로 한 공립 미술관,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이다. 지난 5월 문을 연 이곳은 문화 인프라가 부족했던 서울 동북부 지역에 새로운 예술 거점으로 자리 잡으며, 도시의 문화 균형에 기여하고 있다.
국내 첫 사진 특화 공립 미술관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은 국내 공립미술관 가운데 처음으로 사진 매체에 특화된 전문 공간이다. 사진은 독자적인 장르지만 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공공기관은 없다시피 했다. 이곳은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전시 ▲교육 ▲연구 ▲보존 등 사진 매체 전반을 다루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한정희 관장은 지난 5월 28일(수) 개관 기자간담회에서 “그간 뮤지엄 한미, 부산의 고은사진미술관 등 사립 사진미술관들이 역할을 해 온 한국 사진계에서 긴 호흡으로 한국 사진사 연구를 지속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공공 사진미술관으로 자리 잡겠다”며 “한국 대표에서 나아가 아시아와 세계에서도 주목받는 기관이 되도록 지원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사진의 원리를 담은 건축
사진미술관은 지하 2층, 지상 4층, 연면적 7,048㎡(약 2,132평) 규모로, 사진 매체의 특성을 반영해 건축됐다. 외관은 카메라 조리개 구조에서 착안해 판을 쌓아 비틀어진 육면체 형태로 설계됐다. 비틀린 구조로 생긴 공간에는 출입구가 자리하며, 이는 사진과 건축이 공유하는 핵심 요소인 ‘빛’을 상징한다. 공동 설계자인 믈라덴 야드리치 건축가는 “건축이 빛 속 형태들의 유희라면, 사진은 빛으로 빚는 그림이다”라고 두 예술의 유사성을 설명했다. 외벽의 색과 질감은 시간과 빛의 변화에 따라 달라져 사진의 특성을 공간적으로 드러낸다.
내부 1층에는 층고 10m의 로비와 사진의 주요 요소인 프레임과 빛의 3원색(빨강·초록·파랑)에서 영감받은 포토북 카페가 자리한다. 2층은 직각 벽이 없는 비정형 전시공간으로 실험적인 전시를 염두에 뒀으며, 3층은 정방형 공간으로 평면 사진 작품과 영상 전시를 수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4층은 약 5,000권의 사진 전문 서적을 갖춘 포토라이브러리로 연계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한다. 이 밖에도 ▲암실 ▲교육실 ▲수장고 등 다양한 사진 부대시설이 마련돼 있다.
▲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전경
전시와 교육으로 시민 가까이
사진미술관에서는 개관을 기념해 지난 10월 중반까지 특별전 <스토리지 스토리>가 열렸다. 전시 제목은 미술관이 자리한 창동(倉洞)의 지명에서 따왔다. 곡식을 저장하던 ‘창고(倉)’의 뜻에 이미지와 자료를 저장․보존하는 미술관의 역할을 더해 의미를 확장했다. 여섯 명의 작가가 각자의 시선으로 미술관의 건립 과정을 해석해 사진이 기록을 넘어 예술적 표현 매체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현재는 후속 전시 <스토리지 스토리: 또 다른 이야기>가 진행 중이다. 이번 전시는 저장과 기억을 단순한 보존의 개념이 아닌 함께 나누고 새롭게 해석하는 과정으로 바라볼 수 있다. 미술관 안에서 사용되지 않던 공간을 전시에 포함하고 인공지능과 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한 작품을 통해 관람객이 새로운 방식으로 공간을 경험하도록 구성됐다. 오는 11월 26일(수)부터는 새로운 전시 <사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열릴 예정이다.
전시에 이어 시민들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 ‘포토세마 사진아카데미’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사진 매체의 역사와 이론을 배우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며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현재는 ‘사진, 탐구, 생활’을 제목으로, 사진 매체를 사유하고 고전 인화기법을 배우는 과정이 진행중이다.
인근 쌍문동에 거주해 사진미술관에 자주 방문한다는 이민아 씨는 “근처에 미술관이 생겨서 편리하다”며 “사진 작품부터 영상이나 설치미술로 확장한 작품까지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어 흥미로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 오주영 <기계 감상 시스템 2>. 인공지능과 인터랙티브 시스템을 기반으로, 인공지능이 생성하는 정보의 윤리적 문제를 조명한다.
서울 동북부 문화 인프라 확장
창동에 들어선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은 도시의 문화 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한 서울시 정책의 결과물이다. 서울시는 2015년부터 ▲노원구 ▲도봉구 ▲금천구 등 문화 인프라가 취약한 지역에 박물관과 미술관을 조성하는 ‘박물관·미술관 도시, 서울’ 사업을 추진해 왔다. 이 사업은 전통적인 박물관의 역할을 넘어, 지역의 특성과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전문 박물관과 미술관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바로 옆 서울로봇인공지능과학관과 공릉동의 서울생활사박물관이 같은 맥락에서 추진된 시설이다.
사진미술관은 이러한 정책의 연장선에서 서울 중심부에 집중된 문화 자원을 외곽으로 확산시키며 도시의 균형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특히 창동 일대는 ‘창동상계 신경제중심지 조성사업’의 핵심 지역으로 향후 ▲창동역 복합환승센터 ▲서울아레나(공연장) ▲아레나 X 스퀘어(복합 쇼핑몰)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창동이 복합 거점으로 발전함에 따라 사진미술관도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한정희 관장은 “광화문과 경복궁 일대에 집중된 예술 흐름에서 벗어나, 서울 동북권에서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할 발판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사진미술관이 북서울미술관과 함께 서울 동북권의 또 하나의 문화 거점으로 자리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은 도봉구 마들로13길 18(창동역 1번 출구 도보 3분)에 위치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8시까지 운영하며 월요일은 휴관한다. 무료 관람으로 자세한 정보는 공식 홈페이지(photo.sema.seoul.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황아영 기자
ayoung6120@seoul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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