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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짓밟힌 혐오의 시대
장수연 ㅣ 기사 승인 2021-04-11 19  |  644호 ㅣ 조회수 : 162



개인이 짓밟힌 혐오의 시대



  재작년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는 얼마 가지 않아 전 세계로 퍼지게 됐고, 감염의 공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시기, 최근 뉴스를 뜨겁게 달구는 주제가 있다. 바로 “인종 차별”이다. 지금도 SNS에선 아시아인을 혐오하는 내용의 각종 글과 영상들이 올라오고 있다.



  코로나-19의 확산과 함께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가 절정에 달하고 있다. 우리가 권리처럼 누려왔던 것들을 빼앗겼다는 상실감은 분노를 일으켰고, 분노의 대상은 어느 새부터 평범한 개인들을 향해 있었다.



  영화 <조조 래빗>은 그러한 혐오와 맹목적인 믿음들로 점철된 또 다른 비극의 시대를 그리고 있다.



  주인공 조조(로먼 그리핀 데이비스)는 2차 세계 대전 시기를 살고 있는 독일의 어린 소년이다. 조조는 겉보기에는 여타 아이들과 다를 것 없는 모습이지만 상상 속 히틀러를 친구 삼는 나치 신봉자이다. ‘전쟁’과 ‘나치’의 역사에 대해 다뤘지만, 이 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역사를 어린 조조의 시선에서 밝고 코믹하게 연출하고 있다.



  어린 조조에게 나치는 마땅히 따라야 할 의무이고, 유대인은 피해야 할 무시무시한 존재이다. 그러나 조조는 나치를 반대하는 어머니가 집에 몰래 데려온 유대인 소녀 엘사(토마신 멕켄지)와 만나면서 자신이 지금까지 배워왔던 상식이 현실과 어긋났음을 점차 깨닫게 된다. ‘유대인은 사악한 괴물’이라는 관념들은 모두 편견이었다.



  영화의 후반부에는 자신이 신봉하던 나치로 인해 남은 가족마저 잃으면서 조조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세상과 나치즘에 빠진 독일을 더 이상 이전의 다채로운 색상으로 볼 수 없었다. 겨우 11살짜리의 어린 소년들이 전쟁이라는 살육에 참여하고, 여성은 나라를 위해 의무처럼 아이를 낳는다. “히틀러를 위해서”라는 명목하에 개인이 죽음을 자초하는 이상한 세상이었다. 나라를 위한다는 맹목적인 목적 아래 개인의 자유와 개성은 당연하듯 묵살됐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낸 편견에 물들지 않고 언제든지 또 다른 색깔들로 채워나갈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런 아이의 시선에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맹신도처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모습은 다소 우스꽝스럽고 이상하게 느껴진다. 영화 속 조조의 친구 요크는 이런 대사를 한다.



  “숲에 잡힌 유대인들을 봤는데, 솔직히 왜 그렇게 난리인지 모르겠더라. 무섭지도 않고 평범하게 생겼던데”



  개인은 다양성을 가졌지만, 그 본질은 별반 다르지 않다. <조조 래빗> 속에는 유대인뿐 아니라 동성애자, 나치 등 다양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나오지만, 특정 인물을 유독 부정적 인물로 연출하지는 않는다. 영화 속 인물들은 신념과 종교를 떠나 모두 평범한 이들이었다. 그렇게 이 영화는 맹목적인 믿음과 편견이 가진 공허함을 풍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세상은 영화 속 세상과 얼마나 달라졌는가. 지금도 자행되고 있는 각종 인종 차별과 혐오는 과거 나치가 행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상한 역사가 다시 되풀이되고 있다. 편견들로 개인들을 옭아매고 있는 나치의 모습에서 지금 사회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조조 래빗>은 혐오가 만연해 있는 현 사회에 많은 시사성을 던지는 영화이다. 부디 또 다른 비극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영화 <조조 래빗>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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