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사체 전시회
텔레비전이라는 매체가 대중화되기 전까지 종이 인쇄물은 사람들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로써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소식을 전달했다. 그 중 1936년에 창간된 잡지 『LIFE』는 역사상 가장 성공한 잡지로 기억된다. 사진을 중심으로 한 시사잡지가 포토 저널리즘의 시초가 됐으며, 역사적인 순간을 담은 높은 완성도의 사진을 통해 잡지가 곧 사진 기록의 수단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이제는 사진 작품들이 역사의 한 장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LIFE』 지에 근무했던 전속 담당 사진기자들은 잡지가 창간되고 폐간되기까지, 제 2차 세계대전을 사이에 둔 격동의 시대를 온전히 기록했다. 생생한 저널리즘을 위해 카메라로 메마른 순간을 담아낼 뿐만 아니라, 인간과 시대의 본질을 웅변으로 증명하고 낱낱이 파헤치는데 열정, 시간, 돈 그리고 때로는 자신의 생명까지 헌납했다.
<라이프 사진전>이 4년 만에 돌아왔다. 지난 8년간 3부작으로 기획됐던 사진전은 2013년 ‘하나의 역사, 70억의 기억’으로 시작해, 2017년 ‘인생을 보고, 세상을 보기 위하여’에 이어 2021년 ‘더 라스트 프린트’라는 주제로 마무리 짓는다. 이번 전시에서는 101장의 작품과 더불어 알프레드 아이젠슈테트,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등 『LIFE』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사진가 8명을 조명하는 섹션도 있었다. 이를 통해 포토에세이와 당대의 주요 기사, 빈티지 잡지를 만나볼 수 있었다.
선정된 사진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바래지 않는 인간의 가치를 담은 기록임과 동시에 포토 저널리즘의 무게를 알지 못한 채 뛰어들어 희생을 감내했던 탁월한 사진가들이 이룩한 업적이다. <라이프 사진전: 더 라스트 프린트>가 소개하는 작품들은 첨예한 논쟁 끝에 살아남은 사진들이기 때문이다. 한 장의 사진이 잡지에 게재되기까지 사진가와 편집자, 발행인은 끊임없이 수정하며 의논한다. 수 개월 동안 아프리카 일대를 누비며 촬영한 수천 장의 사진 중에 단 3~4장만 쓰이는 경우도 허다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종군기자로 활동한 로버트 카파의 경우처럼 전시 상황에서의 손상 때문에 남은 사진이 많이 없던, 그마저도 흔들린 11장뿐이라 기사의 제목에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라고 써야만 한 적도 있었다.
작품들은 반복되는 역사의 교훈뿐만 아니라, 과거의 시대와 삶의 문제에 대한 새로운 영감을 주기도 했다. 참혹한 전쟁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천진한 어린이의 일상, 올해 유행할 패션에 대한 주제들이 몇 글귀 없이 온전히 담겨있었다. 『LIFE』는 폭넓은 주제로 서로를 자유로운 개인으로 인정하고, 공존했던 이들이 함께 이룩한 인간의 삶에 대한 총체적인 부분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다. 사진을 통해 당시 대중의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그리고 격동의 시대에 희망적인 미래를 나타내고자 하는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지난 두 번의 전시가 격동의 시대와 역사에 남은 인물을 중심으로 한 내용을 선보였다면, 이번 전시는 파리 모터쇼, 우드스톡 페스티벌 등 주변의 삶에 더욱 가까운 일상들도 볼 수 있었다.
『LIFE』를 창간한 헨리 루스는 “인생을 보고, 세상을 보라…. 보고, 보는 것을 즐거워하자. 보고 또 놀라자. 보고 또 배우자”라고 첨언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이 한정된 프레임 속에 일상 속 즐거움을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세상을 기록한 과거의 몇몇 사진들은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그리고 추억을 대변하는 시대의 아이콘이 된다. 『LIFE』 지에 보관된 1,000만장의 사진기록에서 선정된 101장의 작품들이 분명 사진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영감의 원천으로 다가올 것이다. 여유로운 시간에 프레임 속 너머, 사진가의 태도와 의지가 투영된 역사적인 일상의 순간들을 구경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