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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비평_끊임없이 가라앉음에도 수면 위를 떠올리며_어수윤
기사 승인 2024-11-29 20  |  697호 ㅣ 조회수 : 13

끊임없이 가라앉음에도 수면 위를 떠올리며

-소설 『비행운』을 읽고



어수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창한 삶의 이유는 없다고 믿는다. 굳이 부언하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부사 한마디를 외친다. 삶의 궤적은 늘 어긋난다. 삐뚤어진 수평선을 아무리 교정해 봐도, 금세 어긋난다. 이러한 어긋남을 통해 깨닫는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자유의지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대게 인생이 그렇고, 그런 인생을 살아간다. ‘때때로’, ‘어쩌다’, ‘운 좋게’라는 부사는 삶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삶의 방향성은 우리가 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삶에서 중요한 사건들은 우리의 의지와는 아주 무관해진다. 그런 사건들은 불규칙한 요동을 낳는다. 이후 고독함, 슬픔, 외로움 등의 감정만이 남는다. 우리는 금세 눅눅해진다. 그렇지만 때때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이를 건조하고, 우리의 한숨을 잠시나마 맡겨준다. 삶의 방향성에 수없이 많은 미로가 존재해도, 상실감으로 인해 끊임없이 가라앉아도 우리는 살아간다. 세상은 이러한 사람들과 이들의 마음가짐으로 현재 진행 중이다. 소설가 김애란은 <비행운>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부사가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들을 대변하고 껴안는다. 이들을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며 위로한다. 고군분투 속에서 실마리를 꿈꾸는 우리,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그 무언가를 <비행운>에서 나는 다시 한번 관찰하고, 회고했다.



비행운(飛行雲), 비행운(非幸運)



 이 책에서 비행운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비행기가 하늘에 그리고 간 비행운, 불운을 뜻하는 비행운. 김애란의 인물들은 이러한 비행운(飛行雲)과 비행운(非幸運)의 경계를 오고 간다. 닿을 듯 말 듯한 하늘 속 비행운은 자칫 무언가를 상상하게 만든다. 하늘 속 비행운을 모두 바라보고 다시 현실을 마주했을 때, 이제 삶 속 비행운을 바라볼 차례이다. 국제공항의 청소부로 일하는 <하루의 축>의 기옥은 공항을 방문하는 수많은 인종을 보며 세계를 상상한다. 그리곤 비행기를 바라보며 비행 중인 자신을 상상해 본다. 출발과 도착이 명확한 비행기와 달리 기옥의 출발과 도착은 불확실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고, 어디까지 잘못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하늘을 바라보며 행복을 꿈꾼다. 옥살이를 하고 있는 아들의 오래만의 편지를 꿈꾼다. 남들처럼 평범한 추석다운 추석을 꿈꾼다. 행복과 행운을 바란다. 그러나 여간 기옥에게 행운은 늘 어색한 단어이다. 여행객이 버리고 간 마카롱을 먹으며 왜 이렇게 단가, 이렇게 달콤해도 되는 거느냐며 혀의 감각을 어색해한다. 운 좋게 얻은 뜯지도 않은 마카롱을 오히려 경계하는 기옥의 모습은 불행으로 점철된 하루의 축의 중심부에 선 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어떤 이들의 24시간의 축은 참으로 고통스럽다. 우선시되는 행복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은 누군가에게 당연함이 아니다. 이들의 행복은 추상적이다. 추상적인 행복에서 겨우 미래를 기대해 볼 수 있는 위로를 마주한다. 하늘을 바라보고, 다시 비행운(非幸運)으로 이루어진 삶 속을 살아간다. 상실과 고독만이 아른거린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간다. 꿋꿋이 희망의 내일과 미래를 그린다. 금세 사라질 비행운(飛行雲)이지만, 하늘의 습도가 높아져 더욱 오래 남아있길 바라본다. 그리고 이 하늘에서 이들이 찾지 못한 현실과 동경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조우하길 바라본다.



잔상만이 남고



 긴 꼬리 모양의 비행운(飛行雲)은, 시간이 흘러 결국 사라진다. 그리고 그 사라진 것에서 살아가는 이유를 찾는다. 부재에서 사랑을 찾는다. 존재가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시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존재가 부재함을 깨달았을 때다. 기옥이 비행운(飛行雲)의 현상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동경했다면,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의 용대는 비행운(飛行雲)의 잔상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동경한다. 용대는 살아오며 그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이후 늦은 시기에 조선족인 명화라는 여인을 만나, 평범한 일상을 느껴보고,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섞는다. 비행운(非幸運)의 궤적이 그를 관통할 시기 즈음, 명화는 암에 걸려 생을 마감한다. 자신을 바라봐주는 유일한 실마리를 잃는다. 이후 용대는 택시 운전을 하며 하염없이 중국어 테이프를 듣고 중얼거린다. 명화의 언어만이 공기 속을 부유한다. 다시 용대의 밤은 외로워졌고, 외로운 밤에는 노래 같은 언어만이 남는다.



 소중한 이를 잃은 사람들의 삶 속엔 잔상만이 남는다. 궤적의 잔상은 끊임없이 불행을 낳는다. 정작 그 불행의 중점인 사랑하는 사람은 이제 없고, 사랑했던 사실만이 남는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결코 잊지 못하는 누군가를 가슴 속에 묻어두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들은 그렇게 억누르며 살아간다. 시도 때도 없이 사랑이 떠올라 좌심방을 쿡쿡 눌러 찍지만, 눈물 몇 방울에 외로움과 괴로움을 담아 떠나보낸다. 망각하지 못하기에, 과거형이 되어버린 사랑은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리고, 마침내 묻어두기로 결심한다.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이 주위에 실체로 남아 함께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은, 참으로 기적 같은 행운임을 느낀다. 테이프에서 “제 자리는 어디입니까?”라는 문구를 중국어로 듣는 용대의 모습은, 앞으로의 용대는 제 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지, 또다시 삶을 지탱해 줄 사랑을 찾을 수 있을지 궁금증과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지금도 끊임없이 제 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 주위의 모든 이들을 위로한다. 아무리 달려도 제 자리 그대로인 듯 보이지만, 보폭의 흔적은 남기 마련이다.



내가, 무얼, 더



 연쇄적으로 몰아치는 비행운(非幸運)이 삶을 관통하는 시기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이 시기는 우리로 하여금 결국 살아가는 것은 고통이며, 허무임을 깨닫게 한다. <서른>에서 수인은 열심히 번듯하게 살아왔지만, 노력만큼 결과가 따라주지 못한다. 이후 방황하다가 다단계 회사에 들어가 결국 자신의 옛 제자였던 혜미마저 다단계 회사로 끌어들인다.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였다는 혜미의 소식을 듣고 나서야 수인은 자신의 삶과 선택이 단단히 잘못된 미로를 향해 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수인의 서른의 출발선은, 그저 비행운(非幸運)의 연장선일 뿐이었다. 깨달음을 통한 그의 고해성사로 이루어진 <서른>의 내용은 그저 막막하기만 하여 독자가 어떤 위로의 말도 건넬 수 없게 만든다.



 노력만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은 간혹 끊임없는 좌절에 빠지게 한다. 운과 선택의 갈림길은 인생의 중요한 요소이기에, 인생이란 예측할 수 없는 실험과 같다. “내가, 무얼, 더.” 수인은 읊조리듯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봐도 실패한다면 과연 그 무엇을 탓할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수인은 불행의 연쇄를 인정하면서도 끊임없이 자아 성찰을 통해 내면에서 실패의 원인을 찾으려 한다. 비행운(非幸運)은 거역할 수 없는 매서운 파도와 같기에, 그 속에서 묵묵히 할 수 있는 것을 찾는다. 파도의 방향을 우리의 의지대로 바꿀 수 없다면, 그 위에서 최대한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서는 법을 배울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절뚝거리면서도 전진한다. 우리는 모두 수인이었고, 지금도 수인의 삶과 닮아 있는 이유이다.



전진할 수밖에 없다



 소설 <비행운>에서 행복의 순간을 찾기는 힘들다. 좌절만이 연쇄되기에, 이들에게 삶이란 투쟁과 같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김애란의 인물들은 단순 소설 속에 그치지 않고, 시련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을 관통한다. 돌이켜보니 삶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부사와 너무나 잘 어울린다. 비행운(非幸運)으로 점철된 순간 속에서도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아장아장 걸어간다. 불행의 궤적이 조금이나마 꺾이게 될 그 순간을 고대하며 살아간다. 우연히 불어올 행운의 산들바람이 눅눅한 삶을 조금이나마 건조하길 기대하며 살아간다. 간혹 끊임없이 가라앉는 시기가 인생을 덮침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수면 위를 떠올리기 위해 노력한다. 김애란은 비행운(非幸運)의 과정에서 비행운(飛行雲)을 동경하는 우리 모두를 위로한다. 기약 없는 행복의 바램보다, 시련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들을 말없이 포옹한다.



 소설을 덮고 앞으로의 나의 삶을 그려본다. 언제 다가올지 모를 비행운(非幸運)의 궤적을, 앞으로도 나는 잘 견뎌낼 수 있을까. 그 어떤 시련이 닥쳐도, 묵묵히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인정한다. 불완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보 한 보 나아가는 내 모습을 그려본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기에, 앞으로도 그렇게 전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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