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청 공무원들이 대구 경찰을 몸으로 막고 있다.
지난 5월 17일(토) 대구 중구 중앙로에서 경찰들과 민방위복을 입은 대구시청 공무원의 몸싸움이 벌어졌다. 대구시청 공무원 500여 명이 “도로점용 허가를 받지 않았다”며 대구퀴어문화축제 행사 차량을 몸으로 막은 것이다. 이에 경찰 1,500여 명이 동원돼 “신고된 집회를 막을 수 없다”며 이들을 방패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공무원은 부상을 당했다고 호소하며 길바닥에 주저앉기도 했다. 퀴어문화축제의 허용 여부를 두고 이례적으로 경찰과 지방자치단체가 물리적으로 충돌한 것이다.
공무원들의 단체행동을 주도한 홍준표 대구시장(이하 홍 시장)은 지난달 12일(월), 행사 주최 측의 도로 사용을 불법 점용이라고 봤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경찰로부터 축제장 일대 버스노선 우회 요청을 받은 사실과 함께 “도로점용 허가나 버스노선을 우회할 만큼 공공성 있는 집회로 보기 어렵다”고 의사를 표시했다.
또 축제 하루 전날 “퀴어축제 때 도로 불법 점거를 막겠다고 하니 경찰 간부가 집회 방해죄로 입건한다고 엄포를 놓는다”며 “교통방해죄로 고발한다고 하니 나한테 교통방해죄 구성요건을 설명해 주겠다고 설교도 한다”고 말하며 경찰의 태도에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대구시가 ‘행정대집행’에 나서겠다는 강경 방침을 고수하자, 경찰 역시 법률 검토에 돌입했다. 경찰 측은 퀴어문화축제가 ‘집회의 자유’에 해당하는 집회로 도로점용허가를 받지 않더라도 형사법과 행정법 영역에서 정당한 사유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도로점용허가를 받지 않았더라도 집회를 강제로 해산해야 할 만큼 공공의 안녕질서에 명백한 위협이 발생한다고 볼 수 없으면 행정대집행은 위법이라는 법원 판례 등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대구시의 행정대집행은 무리란 취지로 결론을 내린 뒤 축제장에 경력 1,500여명을 투입했다. 결국, 행사 이전부터 시작된 설전을 발단으로 축제 당일까지 시청 공무원과 경찰 기동대의 충돌이 이어졌다.
홍 시장은 대구 중구 대중교통 전용지구에서 열린 대구퀴어문화축제 행정대집행 현장에서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구경찰청장의 책임을 묻겠다”며, “과연 이게 정당한지 아닌지 가려보자”고 말했다. 이어 “내가 대한민국에서 검사를 한 사람이다”며 “대구 경찰청장보다 내가 형법을 모르겠냐”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홍 시장은 “대구시에서 버스통행 우회 불가와 도로점거 불가를 통보했는데 대구 경찰청장은 이를 무시하고 퀴어 축제만을 위해 우리 공무원을 다치게까지 하면서 강압적으로 밀어붙였다”고 주장했다. 홍 시장은 “대구 경찰청장이 집회·시위 제한 구역인 줄 몰랐다면 옷 벗어야 하고 알고도 그랬다면 특수공무집행방해 치상죄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김수영 대구경찰청장(이하 김 청장)은 “집회 전에 대구시가 시내버스 노선 우회 요청을 두 차례 거절하고 주최 측 도로점용이 예상된다며 행정대집행을 예고했다”며 “이와 관련 경찰청에 대구시와 충돌 가능성이 있다며 문의를 했는데 경찰청에서 법리검토를 통해 집회 보호라는 결론이 나왔고, 20개 중대를 지원해줬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이번 충돌 사태와 관련해서 대구 경찰청의 독자적인 판단이 아닌 경찰청 본청과의 협의된 결론임을 알 수 있다.
또 “집회가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금지할 수는 있지만, 보통 법원을 통해 집회를 강제로 해산해야 할 만큼 공공질서에 명백한 위협이 발생한다고 볼 수 없으면 행정대집행은 위법이라는 통상적인 법원 판례 등에 따랐다”고 덧붙였다. 앞서 대구 동성로상인회와 대구퀴어반대대책본부 등은 대구지법에 집회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지만, 재판부는 “집회가 정치적 약자나 소수자 의사를 표현하는 유일한 장이 될 수 있다”며 기각했다.
김 청장은 “경찰은 집회 허가가 아닌 신고를 받는 처지”라며 “그동안 민노총 등 다른 집회도 해당 도로에서 진행한다고 경찰에 신고하면, 주최 측도 따로 대구시로부터 도로점용 허가를 받지 않았고, 대구시는 통상적으로 길을 터줬는데 퀴어문화축제만 제재할 순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축제 주최 측 도로 무단점용은 과태료 처분에 해당하지 행정대집행 사유는 아니다”고 말했다.
두 집단의 입장 차이는 쉽게 좁혀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홍 시장은 특수공무집행방해 치상죄을 운운하며 법적 공방을 암시하는 발언도 했다.
그리고 기자회견 이후 간담회에서는 “쟁점이 되는 몇 가지 법 조항에 대해 법제처에 유권해석을 의뢰하고 결과에 따라 법적·행정적 책임을 묻겠다”며 “이런 문제가 앞으로 전국에서 생길 수 있으니, 법제처에서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서 해석해 달라는 거다. 합당한 해석을 해주면 그에 따르겠다”고 말했다. 이 사안에 대해 명명백백한 결론을 내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일각에선 이번 충돌이 “현 정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5월 20일(화)에 있었던 서울시와 민주노총의 갈등도 그러하다. 서울시가 민주노총의 서울광장 사용 신청을 ‘잔디 관리’를 이유로 불허했다. 서울시는 관련 조례를 따랐다는 입장이지만 민주노총은 서울시가 집회의 자유를 제한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에 이해당사자인 민주노총은 “경찰에 주간 시간대 집회 금지를 당한 데 이어 서울광장에서도 행사를 열 수 없게 됐다”며 “이번 총파업대회와 관련해 30건 가량 집회·행진 신고를 냈지만 이중 27건이 전체 혹은 부분 금지·제한통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날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연 민주노총은 “윤석열 정권에서 집회·시위에 대한 과도한 제한과 금지 조치가 남발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최근 정부는 야간 집회 금지를 추진하기도 했다. 집회의 자유와 적절한 공권력의 집행 사이에서 합당한 지점을 찾기 위해 국민과 정부는 충분한 협의가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