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텔레그램 성착취 범죄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범죄자의 신상 보호를 피해자의 안위보다 우선시하는 우리나라 법체계에 대한 대중들의 불안 심리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갈수록 대범해지는 범죄와 변함없는 형량의 괴리는 결론적으로 ‘디지털 교도소’라는 플랫폼 형성의 근간을 마련했다. ‘디지털 교도소’는 개인의 신상을 협의 없이 공개한다는 점에서 분명한 위법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의 옹호와 지지를 받았다.
이러한 디지털 교도소 1기의 시작은 ‘n번방 사건’ 속 피해자들의 성 착취를 가담했던 피의자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SNS 계정에서 비롯됐다. 이후 생성된 사이트에서도 주로 성범죄자 혹은 살인자와 같은 강력 범죄 사건의 가해자들을 중심으로 업로드됐으며, 신상이 공개된 가해자들은 얼굴, 이름뿐만 아니라 직업 및 대학 등 세밀한 이력까지 사이트에 박제됐다. 대표적으로 ‘웰컴 투 비디오’의 운영자 손정우의 얼굴과 나이, 학력 등을 공개해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었으나 당년도 9월 1일, 도피 중이었던 사이트 운영자가 베트남에서 체포된 뒤 디지털 교도소 1기는 완전한 폐쇄를 맞이했다.
2기, 범죄의 다변화 반영
4년 만에 돌아온 디지털 교도소 2기는 소개말에 ‘다시 필요한 시점’이라는 말로 재기를 알리며, 전보다 다양한 유형의 범죄자들에 대한 수감 계획을 밝혔다. 학교폭력, 전세사기, 코인사기 등 최근 떠오르는 신종 범죄를 언급하며, ‘범죄 목록’ 카테고리에도 이를 반영해 항목을 세분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디지털 교도소 2기는 최근 화제가 됐던 ‘거제 전 여친 폭행 사건’ 가해자와 ‘여친 살해 의대생 사건’ 가해자의 신상을 박제하며 다시금 대중들의 주목을 받았다. 사이트 내 인기 순위에는 살인, 납치, 학교폭력 등 다양한 유형이 분포됐으며, 가해자의 직업 또한 판사, 외국 대학 학생 등 다양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해자들의 신상이 디지털 교도소에 업로드됨에 따라 사건에 대한 대중들의 경각심이 고조되는 효과를 일으켰지만, 결론적으로 이 사이트는 한 개인이 마련한 운영 체제라는 점에서 ‘사적 제재’ 논란을 피할 수 없었다.
또한 불확실한 가해 혐의에 대한 신상 공개 조치로, 실제 억울하게 공개 처형을 당한 한 학생이 자살을 택한 비극을 남기기도 했다. 이렇듯 무분별하고 불확실한 정보 확산 및 사적 제재를 우려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는 지난 13일 디지털 교도소 2기에 대한 접속 차단을 의결했으나, 이를 인지한 디지털 교도소 측에서는 차단을 대비해 새 주소로 도메인을 변경하며, 사이트 운영 지속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다. 또한 디지털 교도소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코인 후원에 대한 투표를 진행하며, 운영 및 보안을 위해 더욱 체계화할 전망을 드러냈다.
기울어진 법의 무게
최근 몇 년간 ‘부산 돌려차기’ 사건, ‘신림역 칼부림’ 사건 등 다양한 양상의 강력 범죄가 발생해 사법 시스템의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가해자와 신림역 칼부림 사건 가해자 모두 과거 여러 차례 범죄를 저질렀던 전과범이었으며, 악독한 만행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사건에서 ‘심신 미약’과 ‘반성문’ 제출 등 감형을 노리는 의도를 드러내 대중들의 분노를 샀다. 이러한 만성적, 상습적 범죄자들의 양산을 막기 위한 대책을 하루빨리 마련하라는 국민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법의 심판에 대한 논의는 현재까지도 계속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맥락은 대중 매체에도 반영돼, 범죄를 다루는 드라마나 영화, 웹툰 등 미디어 안에서도 법을 불신하는 인물들을 통해 쉽게 엿볼 수 있다. 나아가 이야기의 흐름은 ‘법’에 대한 불신과 미미한 처벌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며, 개인 혹은 사적인 집단이 나서서 직접 가해자에게 물리적인 보복을 행사했다. 이는 충족되지 않았던 정의 구현에 대한 갈증을 가상의 이야기를 통해 해소하며, 은연중 누적됐던 법체계에 대한 분노를 미약하게나마 상쇄시키는 효과를 일으켰다.
정의 구현의 본질
디지털 교도소는 위법 행위를 만발하고, 피해 사례를 초래하는 등 불안정한 행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에게 열광을 받았다. 일련의 신상 털기 행위에 대해 누리꾼들은 진정한 ‘정의 구현’이라는 의견을 내세우며, 나아가 신상이 공개되지 않은 악질적인 사건에 대해 범죄자의 신상 털기를 요청하는 현상까지 빈번히 일어났다.
대중들은 죄질에 합당한 형량을 부과하지 않는 국가가 왜 두려움에 떠는 국민보다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 범죄자의 권리를 우선시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늘 제기해 왔다. 솜방망이 처벌로 인해 법에 대한 신뢰가 하락한 현시점에서 디지털 교도소는 무력한 법체계에 대한 대중들의 갈망을 충족시키는, 왜곡된 응징이라고 볼 수 있다. 국가가 공권력에 대한 대중들의 불신을 직면하고, 심각성을 명확히 인지하지 않는 이상 디지털 교도소의 폐쇄는 단편적인 응급 처치에 불과할 것이다.
서유정 수습기자
suj7260@seoultech.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