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여파로 학령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하는 가운데 문과 소외 현상도 심해지며 서울 소재 대학에서는 인문학과를 없애거나 통폐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덕성여대는 2025학년도부터 불어불문학과와 독어독문학과 신입생을 뽑지 않는다는 내용의 학칙 개정안을 공고해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이는 덕성여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산대 또한 2024학년도부터 불어교육과와 독어교육과 신입생을 받지 않고 있으며, 경북대 역시 2025년부터 불어교육과 신입생의 선발을 중단한다. 2020년 한국외대는 영어통번역학부 등 총 4개 학부 및 전공을 융합인재학부로 통폐합했고, 용인 캠퍼스는 작년부터 영어, 중국어, 일본어, 태국어 통번역학과 등 13개 학과의 신입생 모집을 중단했다. 인문계열, 그중에서도 어문계열의 통폐합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인문학과 통폐합에 대한 상반된 입장
인문학과를 없애거나 통폐합하는 현상에 대해 대학 측과 교수 및 학생 측의 의견은 어떨까? 올해 4월 24일 덕성여대에 따르면 학교법인 덕성학원 이사회는 불어불문학과와 독어독문학과 신입생을 미배정하고, 259명 규모의 자유전공학부 신설 등을 골자로 한 학칙 개정안을 의결했다. 김건희 덕성여대 총장은 이 같은 학칙 개정안을 공고하며 “2023학년도에 평가 최하위를 기록하는 등 유지가 불가한 전공의 학사구조를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수도권 대학 존립 위기에 따른 선제 대응 필요성, 교육 수요자 중심의 학문 단위 선진화 필요 등의 이유를 강조했다.해당 개정안은 대학평의원회에서 찬성 7표, 반대 5표로 가결되며 사실상 두 학과는 폐지 수순을 밟게 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학교 측이 평의원들에 대해 압박을 행사했다”는 주장이 나오는 등 학내 측의 반발은 거세다.
덕성여대 불어불문학과의 한 교수는 교직원 게시판에 “대학평의원회의 부결 결정을 수용하지 않고 재차 삼차 동일안을 상정하고 평의원들에 대한 지속적인 압박을 통해 끝내 통과시킨 것은 분명 대학 민주주의를 유린한 처사”라고 글을 올리며 대학 측의 결정을 비판했다. 덕성여대 독문과의 한 재학생은 “전공 수업을 들으며 적성을 찾아 진로 계획을 짜놨는데 과가 폐지된다는 소식을 듣고 의욕이 떨어졌고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태”라며 “지금이야 독문과와 불문과가 폐지된 것이지만 나중에는 다른 비인기학과도 결국 없어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이공계 졸업자 선호하는 기업 문화
그렇다면 인문학과 통폐합 현상의 원인은 무엇일까? 크게 2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오늘날 인문학 전공에 대한 학생들의 수요 감소이다. 최근 인문계열의 직업에 대한 학생들의 수요가 줄며 인문계열 학과의 입학 정원은 공학계열에 비해 축소됐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2013년 13만 3,215명이었던 인문 계열의 입학 정원은 10년 뒤 10만 6,692명으로 약 20% 줄었지만, 같은 기간 공학 계열의 입학 정원은 8만 4,560명에서 9만 224명으로 늘었다. 이는 인문학 전공에 대한 국내 기업의 낮은 선호도와도 연관돼있다.
과거 2010년대 국내 기업들은 경영, 기술 개발, 신입사원 공채 등 여러 부문에서 인문학과 공학을 결합한 프로그램을 구축했다. 2013년 삼성은 신입사원 공채에서 소프트웨어 과정을 수료한 인문학 전공자들을 선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국내 기업 내에서는 인문계보다 이공계 졸업자를 더 선호하는 추세다. 국내 매출액을 기준으로 500대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2023년 상반기 신규채용 계획’에 따르면 작년 상반기 대출 신규 채용 계획 인원은 10명 중 7명이 이공계열 졸업자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문학 전공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선호도 감소는 인문계열의 낮은 취업률로 이어지며 학생들의 인문학 수요 또한 자연스럽게 줄어든 것이다.
두 번째 원인은 교육부에 따라 2025년부터 전국 대학에서 실시하는 무전공 제도와 관련 있다. 무전공 제도는 대학 신입생이 다양한 전공을 수강하며 2학년에 진입할 시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맞는 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여러 전문가들은 해당 제도로 인해 특정 이공계열 학과에 학생들이 쏠리며 인문계열과 같은 비인기학과의 소멸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우려를 표했다.
정혜중 전국사립대학교 인문대학장 협의회장은 “교육부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무전공 입학 비율을 늘려야 하므로 타 전공 정원을 줄이는 구조조정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며 “지방대의 경우 사정은 더 심각해 이미 두 과가 사라진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또 강창우 전국공립대학교 인문대학장 협의회장도 “이러한 쏠림 현상은 궁극적으로 국가 학문과 산업 발전을 저해하기 때문에 내년부터 무전공 제도가 점차 많은 대학에서 시행되더라도 국가적 차원에서 인문학을 포함한 기초 학문의 붕괴는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박진홍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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