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설계하기 위해 날아가다
오늘날 4차 산업이 주 산업 무대가 되면서 코딩과 컴퓨터는 디자인 분야에서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지난 인터뷰에 이어 만나 뵙게 된 이남주 씨(건축·99)는 현재 미국에서 컴퓨테이셔널 디자인 스페셜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코딩과 디자인을 융합한 영역이다. 대학을 졸업 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MIT 연구원에서 시작해 하버드와 UC 버클리를 졸업했다. 그리고 현재는 개발자뿐 아니라 정보 및 지식 전달자로서 활발한 활동 중이다. 지난 1부의 유학생활에 관한 이야기에 이어서, 이번 2부에서는 코딩과 그의 직업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예정이다.
Q. 현재 유튜브, 다음 브런치, 강의 등을 통해서 ‘컴퓨테이셔널 디자인’에 관한 여러 정보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A. 짧게 답을 해보자면, 컴퓨테이셔널 디자인 저변 확대가 주목적이에요. 회사 조직문화 등 바뀌지 않을 것 같은 견고한 문화가 개선되고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어요. 과거에는 사회에 자리를 잡으신 분들에게 컴퓨테이셔널 디자인을 알리려 노력을 많이 했는데 유의미한 큰 변화는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나 근래에 학생들과 산업의 젊은 인력들을 교육하고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산업이 실제적이고 근본적으로 바뀌는 모습을 경험했어요.
저는 컴퓨테이셔널 디자인 실력을 상향평준화를 시키면 산업이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할 수 있다고 믿고 있어요. 동시에 제가 학생 때는 공부할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었어요. 사실 요즘도 큰 변화는 없어요. 비싼 사설 학원비를 주고 공부를 해야 하는 실정인데 사실상 툴의 사용법 위주로 익히는 것이 대부분이죠. 유학의 경우는 영어도 공부해야 하고 투자해야 하는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죠.
그러던 중 이메일, 친구들의 소개 등을 통해 질문들을 받다가 “질문의 성격에 맞게 제가 정리하고 있는 전공지식과 경험을 섭취하기 편하게, 그리고 다양한 난이도와 복잡도로 온라인에 올려놓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죠. 저의 이런 취미활동과 사이드 프로젝트가 아직 유아기에 머물고 있는 우리나라 컴퓨테이셔널 디자인 산업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영광이고 너무 재미있는 기회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Q. 디자이너에게 있어서 코딩은 어떠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시나요?
A. 가장 짧은 답은 “꽤나 쓸 만한 최신의 도구가 디자이너의 손 앞에 놓여있다”입니다. 다른 말로는 “소프트웨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코딩을 사용한다”인데요. 요즘 디자이너들은 연필과 종이보다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통해 가상공간에서 디자인을 하는 경우가 많죠. 이것이 시사점이 얼마나 크냐면 전기가 안 들어오면, 컴퓨터가 없다면, 디자이너들은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없게 되죠. 건축, 웹디자인, 앱디자이너, 모션그래픽, 2D, 3D 애니메이션, 영상 디자인 등 굉장히 많은 디자인 산업이 그 순간 멈출 거예요. 이 정도로 소프트웨어는 오늘날의 디자이너에게 굉장히 중요한 도구죠. 하지만 이러한 소프트웨어의 장점이자 단점은 소프트웨어(Generic Software)는 일반 용도라는 것이죠. 특정 업무에 컴퓨팅 파워를 증강시켜 활용하기 위해서는 커스터마이제이션(Customization)을 해야 해요. 즉 코딩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이죠. 지금 스스로 사용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파워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코딩이라는 도구로 소프트웨어를 굉장히 높은 수준의 복잡도와 정밀도로, 디자인 프로세스에 맞게 조작 및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죠.
Q. 현재 디자인과 코딩은 분리된 영역이지만, 그럼에도 많은 디자인 전공자들이 코딩공부에 대한 막연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디자인 전공자들, 특히 건축 디자인 전공자의 경우, 코딩 공부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요?
A. 가장 일반적으로 추천되는 시작점은 있어요. “내가 가장 잘 사용하는 도구에서부터 시작하자!”인데요. 디자이너라면 왼손과 오른손에 가장 잘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 소프트웨어가 한두 개는 있을 거예요. 예를 들면 일러스트레이터, 라이노 등등의 프로그램들이에요. 이러한 프로그램은 스크립트 환경이 지원돼요. 그 소프트웨어에 이미 익숙하기 때문에 어떤 명령어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잘 알고 있죠. 그 순서를 그냥 컴퓨터의 언어로 작성을 하는 것이죠. 즉, 이행지침서를 만들어 주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재미있고 좀 더 빨리 배울 수 있어요. 왜냐하면 코딩을 수정할 때 시각적인 피드백이 바로바로 나타나서 재미있게 학습할 수 있어요. 만약 컴퓨터 공학에서 프로그래밍을 하는 방식으로 공부하면 재미도 없고 너무 어려워요. 디자이너의 경우 그래픽스 코딩을 하기 전 이미 지쳐 버리는 케이스를 많이 봤어요. 코딩의 문법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그때부터 컴퓨테이셔널 사고가 중요해지기 시작해요. 복잡한 문제들을 작은 단위로 쪼개고 순서를 나누고 논리 분기들을 디자인하는 것이죠.
Q. 유학 시절 배웠던 지식이나 경험이 지금의 프로그래밍과 건축 디자인에서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A. 지식적 측면에서는 4차 산업의 쌀인 ‘데이터’를 디자인에 활용할 수 있는 실력과 안목이 생겼다는 것이죠. 요즘 4차 산업에 관해서 이야기 많이 나누죠. 인공지능, 초연결, 초저지연, 병렬 컴퓨팅, 클라우드 시스템, 자율주행, 드론 등 다양해 보이지만 결국 “어떻게 데이터를 모을 것인가?”, “이렇게 모인 데이터를 어떻게 프로세스 할 것인가?” “데이터로부터 추출된 통찰을 어디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로 크게 나눠 볼 수 있어요. 디자이너가 데이터 재료를 적극적으로 디자인 프로세스에 활용하기 위해서 코딩이라는 도구를 사용해야 해요. 건축 디자인의 경우 재료가 중요하죠. 가령 목재, 유리, 철근 콘크리트, 플라스틱 이러한 재료들이 디자인 산업에 소개될 때마다 도구와 가공기술들이 다양해지고 정밀해지고 있죠. 4차 산업의 재료는 데이터예요. 이러한 재료를 가공하기 위한 도구로 코딩, 즉 프로그래밍이 쓰이는 것이죠. 디자이너로서 코딩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다양한 장점이 있어요.
경험적 측면의 영향은, 상당한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제가 해외 생활을 10년 넘게 하고 있는데요.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이야기 나누고, 일을 하고, 공부를 하면서 한 시대의 컴퓨테이셔널 디자인 분야의 지도가 그려지며 그 안의 주요한 지점들과 방향들이 보이는 것 같아요. 물론 저의 위치도 그 안에 나타나죠. 내가 무엇을 더 집중하면 그 지도에 어떤 유의미한 표시를 할 수 있을까도 보이기 시작하죠. “해볼 만한데”라는 자신감이 생겨요. “얘들은 이렇게 하네, 내가 이렇게 하면 더 잘 만들 수 있겠는데?”라는 자신감이 생기는 거죠. 또한 같이 공부하고 일했던 친구들이 세계 각지에서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낼 때, 과거에는 막연한 동경과 “역시 다르구나!”라고 생각하고 넘겼다면, 지금은 “이 친구, 이번엔 이렇게 했네. 관심을 많이 가지더니 결국 이런 식으로 풀었구나. 나는 이렇게 한번 해볼까?”와 같이 의식의 흐름과 그에 따른 자신감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Q. 우리대학 건축학과 수업 중 현직 실무자로서 가장 도움이 됐던 수업이 있을까요?
A.많은 수업이 있지만 ‘설계 스튜디오’와 ‘건축 컴퓨팅’ 수업이 저에게 가장 중요한 수업이었다고 생각해요. 설계 디자인 스튜디오는 사실 건축학에서 가장 중요한 수업으로 여겨져요. 단순히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을 넘어 생각하는 방법을 기르는 수업이에요. 사실 컴퓨테이셔널 디자인은 어떤 새로운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디자인 방법론을 좀 더 명시적으로 컴퓨터에게 코드로 적어서 알려 줘야 하거든요. 결국, 컴퓨터의 사용 기술을 넘어 스스로의 생각과 디자인 랭귀지가 더 중요해지게 되죠. 따라서 4년간의 다양한 스튜디오 수업들을 통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논리를 발전시켜 공간을 만들어 내는지에 대한 사유 훈련을 했었어요. 설계 스튜디오에서 배운 생각하는 방법은 제가 하는 모든 일들의 기초 블록들이 됐다고 생각해요.
두 번째 수업은, 건축 컴퓨팅 수업이었어요. 당시 김진욱 교수님께서 CAD(컴퓨터를 이용한 설계)쪽 연구를 많이 하시고 학교 커리큘럼에 적용을 하셨던 것 같아요. 다른 학교에 비해서 우리 학교 수업 환경은 적극적으로 컴퓨터 도구를 설계에 도입하려고 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제가 대학 3학년 때부터 NJSTUDIO 스타트업을 할 수 있었던 관심과 자신감도 건축 컴퓨팅 수업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어요. 그 수업을 통해서 건축 디자인과 3D 디자인 그리고 다양한 디지털 디자인 프로세스를 배울 수 있었고 그 흥미가 유학과 미국의 직장까지 확장된 것이죠.
Q. 지금까지 하셨던 프로젝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요?
A. 지역을 넘어 여러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두 가지 프로젝트가 기억이 남아요.
첫째는 회사에서 개발하고 있는 프로덕트, 둘째는 엔제이채널 프로젝트입니다. 저희 회사가 세계 GIS(지리 정보 시스템)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큰 회사인데요, 그만큼 여러 상황에 대한 시스템이 잘 돼있죠. 그런 회사에서 제가 입사 6개월 만에 연봉을 거의 80% 이상 인상한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그 이유가 제가 개발하고 있는 디자인 툴 때문이라 생각해요. 큰 회사인 만큼 처음에는 정말 많은 견제구와 회사의 관례, 관습에서 오는 많은 마찰이 있었어요. 하지만 저의 디자이너로서의 경험과 그에 따른 도구를 개발할 수 있는 능력, 이 두 가지의 화학반응을 내면서 경쟁적으로 프로덕트를 개발했었어요. 우여곡절 끝에 운이 좋게 회장님께 발표를 했고 그 결과 많은 프로모션이 이루어진 프로덕트예요. 회사 통계를 보면 매일매일 세계의 몇 만 명의 사람이 제가 만든 프로덕트로 지도 위에 데이터와 정보를 표시하고 공유하는데 쓰고 있어요.
두 번째로 엔제이채널 프로젝트인데, 이것은 저의 경험과 전문 지식을 나누고 있는 프로젝트예요. 유튜브에서 비디오, 다음 브런치에서 글, 그 밖의 다양한 채널로 한국어와 영어 버전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있어요. 컴퓨테이셔널 디자인 이론 수업부터 워크숍까지, 그리고 유학과 취직 그리고 젊은 청년들의 전투력을 상승시키기 위해 제 경험을 공유하는 프로젝트예요. 보통 후배님들이 힘들다고 오시면 제 이야기를 들으시고 난 뒤 “그래도 내가 저 사람보다는 상황이 낫네”라며 힘을 얻고 가세요. 약 3년 정도 진행 중인데 나름의 열매가 나오는 것을 보고 감사하고 있어요. QnA에서 학업, 취직, 유학에 대한 고민과 정보를 여쭤 보신 분들도 계시고, 그 과정을 통과해서 잘 마무리하신 분도 계셨어요.
Q 그렇다면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나요?
A. 두 가지 목표가 있어요. 첫 번째는 콘퍼런스, 두 번째는 협회 설립이에요.
엔제이채널과 컴퓨테이셔널 디자인 슬렉과 오픈채팅방을 운영하면서 한국의 컴퓨테이셔널 디자인에 관심 많은 선후배님들과 소통을 계속해오고 있어요. 그분들과 함께 첫 콘퍼런스 추진을 목표로 잡고 있는데 어디까지 실현시킬 수 있을지 저도 궁금해요. 잘 안되더라도, 최선을 대해서 시도해보고 꾸준히 매해 발전시켜 나가고 싶어요.
좀 더 먼 미래로, 협회 설립이에요. 궁극적으로 산업이 보호와 발전을 위해서는 협회가 필요하고, 한국 컴퓨테이셔널 디자인 협회를 통해서 좀 더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도움과 환경을 구축하고 싶죠. 아직은 저도 많이 어려서 생각만 하고 있는데 언젠가 상황이 된다면 선배로서 더 좋은 상황과 생태계를 후배님들에게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비주류로 여겨지는 컴퓨테이셔널 디자인 영역을 각각의 산업에서 좀 더 존중받고 인정받고, 건강한 협업이 일어날 수 있는 선순환을 보장하는 초석으로서 협회를 만들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이루고 싶은 직업적 비전이나 계획이 있으시다면 말해주세요.
A. 첫째, 컴퓨테이셔널 디자인 산업의 확장이에요. 디자인과 건축산업의 발전방향은 명확하다고 보고 있어요. 균형 잡힌 속도감과 어떻게 디자이너들이 4차 산업이라는 파도를 타고 넘어갈 수 있을지 저의 경험과 지식으로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비주류로 여겨지던 컴퓨테이셔널 디자인이 근래에 많은 조명을 받고 있어요. 특별히 건축 산업의 경우 건축가의 역할이 발휘될 수 있는 새로운 영역들이 출연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세계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온라인을 통해 모이고 소통하는 일에 익숙해졌어요. 그리고 기술과 인프라스트럭처, 사용자의 고정관념도 바뀌어 가고 있어요. 예를 들면 전통적으로 온라인상에서 UI/UX 디자이너들이 2차원적인 화면의 사람들의 소통의 인터페이스를 창조했다면 VR, AR 혹은 메타버스의 콘셉트는 왜 가상의 공간 디자인에 실력을 발휘해야 하는지 중요성과 필요성이 더 부각되고 있지요. 이러한 연구와 가상공간에서의 디자인에서 컴퓨테이셔널 디자인은 매우 중요한 도구와 통찰과 개념들을 제공하고 있죠.
둘째, 컴퓨테이셔널 디자인 교육의 확대예요. 제가 건축을 시작한 20여 년 전에는 CAD라는 도구는 선택적인 도구였죠. 하지만 지금의 시대는 CAD가 없으면 대부분의 디자인 사무실은 업무가 마비가 돼요. 그만큼 산업은 바뀌었죠. 앞으로는 어떨까요? 어릴 때부터 인공지능과 코딩에 노출된 세대들을 산업에 투입되는 시점을 고려해 본다면 미래에는 모든 디자이너가 코딩을 하는 시대가 온다고 보고 있어요. 따라서 작금의 많은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위한 코딩과 컴퓨테이셔널 사고를 공부해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의 수업과 워크숍이 그런 분들께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고 지속적으로 제가 공유할 수 있는 교육들을 제공하려고 합니다. 사실 산업의 토양인 교육이 건강하고 풍부한 영양을 품고 있다면, 산업은 긍정의 사이클과 다양한 경쟁력을 가지며 발전할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에요.
마지막으로, 은퇴 후 NJLAND를 만들고 싶어요. 큰 창고에 여러 작업실을 만들어 놓고 학생분들과 실무자들 연구자들 교육자들이 모여서 같이 토론하고 작업하고, 강의도 하며 연구도 하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다산 정약용 선생님이 하신 것처럼 함께 지식과 기술을 연구하고 남기는 작업을 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러면 좀 더 빠르게 유아기를 지나 성숙기에 접어드는 컴퓨테이셔널 디자인 산업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