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공과 다른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다. 어렵지만 결국 마음이 이끄는 길을 가기로 결심한 사람들이다. 우리대학 산업정보시스템전공 졸업생 하성빈 학우 역시 그들 중 한 명이다. 4년 동안의 전공 공부를 뒤로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내고 있는 하성빈 학우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Q. 자기소개와 현재 하고 계신 활동에 대해 간단히 말씀해주세요.
A. 저는 산업정보시스템(산정시) 18학번 하성빈입니다. 지금은 졸업 후 음악을 하고 있어요. 지난 4월 5일(토)에 정규 1집 「lost signal」을 발매했습니다.
Q. 산업정보시스템전공(이하 산정시)에 진학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A. 저희 아버지가 과학 선생님이셔서, 어느 과에 진학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이과에 진학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근데 제가 어릴 때부터 문과 성향이 좀 강했어요. 그래서 교육과정을 찾아봤더니, 우리대학 산정시 교육과정에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많았어요. 사실 알고 보니까 산업대 시절 교육과정을 봤더라고요. 당시에는 마케팅과 같은 문과 성향이 짙은 과목이 많았는데 지금은 조금 더 공학적인 성격을 띄죠. 산정시에 대해 잘 알고 진학한 건 아니었어요.
Q. 음악에 대한 관심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A. 중학교 1학년 때 미국 여행을 잠깐 갔는데 그때 「We’re young」이라는 노래가 라디오에서 나왔어요. 노래 제목은 몰랐는데, 그 제목을 찾다가 당시 유행하던 노래를 찾아봤어요. 그렇게 듣게 된 앨범이 빈지노의 「24:26」입니다. 그전까지 음악을 열심히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 앨범이 너무 제 취향인 거예요. 근데 저랑 제일 친한 친구도 같은 걸 느꼈어요. 그래서 그 친구와 카페에서 가사를 쓰거나 학교 복도에서 랩도 하면서 음악에 대한 관심이 짙어진 것 같아요.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군대에서였어요. 군대 동기들 중에 음악을 업으로 하는 동기들이 몇몇 있었어요. 전역 후 그 동기들한테 음악을 시작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Q. 전공과 음악 사이에서 갈등하던 시기가 있었나요?
A. 재작년 여름방학에 고민이 너무 많아서 혼자 제주도에 갔어요. 여행보다는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죠. 취업과 음악은 같이 갈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이제 졸업하면 바로 취업이야. 근데 음악을 하고 싶어. 그렇다고 전공을 뒤로하고 음악을 한다는 그 불확실함에 모든 걸 걸 수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결국엔 음악을 안 하고는 못 살겠다 싶더라고요. 그렇게 여름방학 끝나고 재작년 9월에 제대로 시작하게 됐어요.
Q. 진로를 바꾸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A.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기보다 저는 그냥 하고 싶은 말이 너무너무 많은 사람이에요. 근데 그걸 직설적으로 말하긴 부끄러웠거든요. 글 쓰는 것이나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하는데 그걸로는 이걸 다 표현할 역량이 부족하다고 느껴서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내가 제일 얘기를 잘할 수 있는 수단이 음악이라고 생각했어요.
Q. 비전공자로서 음악을 처음 시작할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A. 부모님께서 나이가 많으셔서 금전적 지원을 많이 받기 어려웠어요. 그런데 곡을 만들어 보면 알겠지만 돈이 엄청 많이 들어가요. 한 과정당 못해도 30만원씩 들어가는데 앨범을 10곡 만들면 거의 천만원이에요. 말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그냥 내가 다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전공자에 비해 도움이나 지원을 받을 곳이 적어 노트북 용량도 작고, 마이크도 중고로 사고, 스피커도 없는 상황에서 시작했어요. 이런 과정에서 비전공자로서의 기술적, 환경적 한계를 많이 느꼈어요.
Q. 음악을 하면서 산업공학 전공에서 배운 점이 도움이 된 순간이 있다면요?
A. 세상에 쓸모없는 공부는 없다는 것을 음악하면서 느꼈어요. 산정시 전공 중 ‘공급사슬관리’ 강의를 열심히 들었었는데, 그게 음악을 유통할 때 도움 되더라고요. 유통 구조를 아니까 유통사와 컨택할 때도 수월하고요. 지금은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얕게나마 배운 마케팅도 추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코딩도 많이 써요. 아티스트는 웹페이지가 중요한데 웹페이지도 직접 만들 수 있고, 음악 프로그램 쓸 때도 경험이 있으니 도움이 돼요. 자세히 설명 듣지 않아도 대강 용어 보고 “이건 이렇게 쓰면 되겠구나”하죠. 또 난수와 같이 공대 아니면 이해 못 하는 가사도 썼어요. 그래서 제 정체성에 오히려 강점이 될 때가 많아요.
Q. 주변의 시선이나 가족, 친구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진로를 바꾸면서 느꼈던 두려움이나 불안감은 없었나요?
A. 일단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를 때까지는 친구들한테 음악을 시작했다고 말하지 않았고, 음악적으로 관련 기술을 배워야 되거나 아트워크를 부탁할 사람들한테만 말했어요. 근데 결국엔 다 소문이 나더라고요. 좋게만 보는 시선만 있던 것은 아니라서, 그런 시선들을 견디는 과정도 있었어요. 그래도 돌아보니 이 모든 것들이 오히려 원동력이 됐어요.
저는 인간관계가 좁고 깊은 편인데, 주변 친구들은 이미 회사 다니고 공무원 준비하는 성실한 친구들이라 제 입장에서는 그 친구들이 정말 멋있거든요. 그런데 친구들은 오히려 제가 멋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이 응원을 해줬고 버틸 힘을 준 것 같아요.
Q. 음악을 전공한 사람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비전공자라는 점이 느껴지거나 비전공자로서 음악을 하며 겪는 고충이 있나요?
A. 누군가한테 배우는 게 두렵진 않아요. “형 이거 알려줘요”, “형 나 노래 못해요” 이런 건 전혀 고충이 아니에요. 오히려 “너 이런 거 하면 안 돼” 이런 말이 고충이었어요.
저는 보컬에 특이한 튜닝을 입히고, R&B 곡도 아닌데 노래를 부르고,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흘리는 랩을 하기도 해요. 대중성을 따지기보다는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음악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음악에 정해진 형식도 꼭 지켜야 하나 싶어요. 하지만 현재 한국 음악은 기준점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전공자들이 대중성이나 기준, 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저에겐 고충이었어요.
Q. 그 고충은 어떻게 해결했나요?
A. ‘나는 비전공자이긴 한데 음악도 잘 알아’ 이 생각으로 했어요. 아직도 그 생각에 의심은 없어요. 악기나 기술은 그 사람들이 더 다룰 수 있지만 창작은 뒤쳐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굳이 다른 사람이 정해둔 틀에 맞추려고 애쓰지 않았고 이런 마음가짐으로 지금도 꿋꿋하게 음악을 하고 있어요.
Q. 본인 음악에 어떤 메시지를 담고자 하는지 궁금합니다.
A. 제가 느낀 것들을 온전히 녹여내고자 하는 것 같아요. 정규 1집(「lost signal」)을 만들 때도 앨범 주제를 정해놓진 않았어요. 그냥 곡들을 만들다 보니까 다 저와 연결돼 있었거든요. 그때 방황도 하고 음악을 해도 되는지에 대한 고민도 있고 좋아하는 것들이 떠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는데 그것들을 음악으로 모으다 보니까 어딘가 다 ‘결핍’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결핍이 주제가 됐어요.
결핍에 대한 노래를 쓰면서 작업실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일을 하면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니까 제가 밝아지더라고요. 그래서 노래들도 후반부로 갈수록 밝아졌어요. 사실 이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긴 했지만 밝은 나도 나니까 그 곡들을 뺄 수는 없더라고요. 결론적으로 앨범을 돌아보니 저의 혼란이 모두 다 담겨 있어요. Signal lost가 미상신호잖아요. 내가 신호고, 내가 길을 잃었다는 점에서 저는 ‘lost signal’인 거죠. 앨범 첫 번째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들어보시면 중간 트랙까지는 제 결핍에 대한 슬픔과 힘듦이 담겨있고, 이후로는 점점 깨닫는 과정을 표현하며 결국엔 어느 지점에 도달해요. 근데 다시 첫 트랙으로 돌아가면 또 결핍이 생기죠. 이런 사이클을 음악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어요.
Q. 전공과 다른 길을 가고 싶지만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A.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이라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근데 그게 진짜 하고 싶은 건지부터 확인이 필요해요. 그냥 즐겁고 재밌으면 안 되고 스트레스도 받아야 하고 고통스럽기도 해야 해요. 그게 진심으로 대하고 있다는 증거예요. 전 축구할 때 스트레스 받는 친구들이 이해가 안 됐어요. 즐겁기 위해 하는 건데 왜 스트레스를 받는지 이해할 수 없었거든요. 근데 음악을 해보니 알겠더라고요. 진심이면 잘하고 싶어서 마냥 즐거울 수 없어요.
그걸 깨달았다면 시도를 해봐야죠. 처음부터 다 때려치우고 시작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처음엔 살짝 맛을 보고 재밌다는 생각이 들 정도가 아니라 “이거 안 하면 못 살아”라는 생각이 들면 그때는 직업으로 삼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특히 예술 분야는 자기 객관화도 필요한 것 같아요. 과제나 점수를 매기는 시험이 없어서 주위 사람들은 본인에게 냉철하게 말하기 어렵기 때문에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해요.
저는 살면서 쾌감을 딱 두 번 느꼈어요. 아무리 잘해도 쾌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중학생 때 직접 만든 영어 발표 자료로 대회 1등하고 미국 갔을 때와 음악을 만들 때 쾌감을 느꼈어요. 그래서 ‘나는 뭔가를 계속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구나’라고 느꼈어요. 만약 저와 비슷한 경험이나 생각이 있다면 시작하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본인을 가로막는 요소는 당연히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하고 싶으면 해야죠. 한 번이라도 시도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소미 기자 somi226628@seoultech.ac.kr
최가예 기자 rkdp1105@seoultech.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