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령인구의 급감, 4차 산업혁명의 도래, 청년 취업문제, 대학구조개혁 등은 하나같이 오늘날 대학을 둘러싸고 제기되고 있는 당면한 현안들이다. 당장 4년 뒤인 2020년에 대학 정원이 현재 인원보다 20만 명이 줄어든다는 통계가 제시될 정도로 학령인구의 급감은 심각한 문제이다. 여기에 개정강사법의 시행, 졸업학점 축소, 각종 교육부 발제과제의 참여 등도 우리대학이 대처해야 할 현안들이다. 이 가운데 시급한 과제는 지난 8월의 학칙개정을 통해 졸업학점을 140학점에서 130학점으로 축소함에 따라 내년부터 시행할 전공, 교양의 이수학점 배분 등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조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우리대학의 졸업학점은 오랫동안 140학점이었다. 우리대학이 140학점을 유지해 오는 동안 다른 일반대학들은 대부분 졸업학점을 130학점 전후로 축소했다. 이미 타 대학들은 졸업학점을 축소한지 10년 이상 경과했다. 그런데 우리대학은 이번 논의를 시작하면서 각 학과의 반발과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140학점 체계에서 전공이수 학점은 75학점이고, 130학점체계에서 이를 8학점 정도 줄일 경우 전공이수 학점이 67학점이 되는데, 이럴 경우 학과 전임교수들의 강의시수가 부족해진다는 점이 주된 문제다. 교무처는 교양의 경우 순수교양 필수이수 20학점을 전공이수의 축소추세에 맞춰 3학점 정도 줄이도록 제안했다. 이에 대해 기초교육학부는 우리대학 순수교양 학점이 타 일반대학에 비해 현저히 적다는 점을 들어 재고를 요청했다.
우리나라 대학에서 졸업학점은 크게 두 번의 대학정책으로 축소됐다. 하나는 1973년에 실시된 ‘실험대학’ 정책이고, 또 하나는 1990년대 중반 ‘학부제 도입’ 때문이었다. 전자에 의해 모든 대학은 160학점에서 140학점으로 졸업학점을 축소했고, 후자에 의해 2000년을 전후로 대부분의 대학은 120∼130학점대로 졸업학점을 낮췄다. 실험대학의 골자는 학점을 줄이고, 학업성취능력에 따라 학점을 부여하며, 복수전공 및 부전공을 확대해 교육기회를 다양화할 것, 학과별 정원제를 대학·계열별 정원제로 전환하며, 조기졸업제와 계절 학기를 운영할 것 등이었다. 학부제로 인해 모집단위 광역화, 복수 및 연계전공제, 최소전공인정제 등의 조치가 시행되면서 각 대학마다 대대적인 교과과정 개편이 이뤄졌다.
특히 학부제로 인해 대부분의 대학은 학생들의 수업 부담을 줄이자는 취지에서 졸업학점을 120∼130학점으로 낮췄고, 더구나 최소전공인정제로 인해 전공학점이 시행초기에는 36학점까지 대폭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공계를 중심으로 ‘전공교육의 부실화’ 문제가 제기되면서 전공학점을 60학점 전후로 늘려 전공교육을 강화하고자 했다. 두 정책의 시행목표에 나타난 공통점은 하나같이 학생들에게 부전공, 복수전공, 그리고 연계전공의 다양한 교육기회를 부여하자는 것이었다. 또한 대학들은 졸업학점의 축소를 대학경비절감의 방편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정책의 시행으로 초래된 문제점은 무엇보다 전공교육의 부실화였다. 그래서 대학들은 하나의 전공을 제대로 이수하기 위해서는 최소 대학원 석사과정과 연계되는 교육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지금 우리대학이 추진하려는 졸업학점 축소는 과거 두 차례 이루어진 타 대학의 상황과는 매우 다르다. 이미 타 대학은 졸업학점이 축소된 교육과정을 10년 이상 운영하면서 다양한 교육경험을 축적해 온 반면, 우리대학은 과거의 학제에 기반을 둔 경험밖에 없고 상당부분 여기에 안주하고 있다. 그리고 교육부의 ‘학부교육선진화사업’에 선정된 타 대학을 보면 하나같이 전공뿐만 아니라 교양 교육과정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단순히 전공과 교양학점을 몇 학점씩 편의적으로 줄여서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각 학과 모두 현재의 교육과정을 허심탄회하게 재검토하고, 모자란 것은 채우고 넘치는 것은 줄여서, ‘새로운 전공 및 교양교육모델’을 만든다는 대승적 자세로 교육과정 개편을 추진해 가야 할 것이다.
대학 졸업생이 하나의 단일전공만을 기반으로 해서는, 인공지능이 초래하는 4차 산업혁명의 커다란 사회변화에 제대로 적응할 수 없음이 명약관화하다.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졸업학점 축소의 역사를 보면 초점은 성찰적 사고력과 소통능력, 핵심지식에 대한 이해 및 탐구능력을 함양할 수 있는 폭넓은 교양교육, 그리고 다양한 전공교육의 기회를 학생들에게 제공하자는 데에 있다. 취업의 생태계 및 학문의 성격, 대학의 역할 등이 혁명적으로 변화하는 미증유의 시기에 대학교육의 근간인 교육과정의 합리적 개편이 절실히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