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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걷는 길
전유진 ㅣ 기사 승인 2016-03-28 00  |  570호 ㅣ 조회수 : 303





  혼자 서울 한양 도성길 낙산구간(이하 낙산 성곽길)을 가보기로 한다. 봄나들이 최적의 장소, 데이트하기 좋은 장소, 야경이 예쁜 장소…. 수많은 수식어들이 이 길을 꾸며주지만, 조금 색다르게 걷고 싶어 홀로 걷기로 했다. 누군가와 함께인 사람들이 가득한 거리를 혼자 걸어보려니 조금은 어색하다. 왠지 함께 걸을 친구가 필요할 것 같아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그렇게 낙산 성곽길로 올라가는 첫 계단에 발을 디뎠다. 아름다운 낙산 성곽길을 음악과 함께 올라본다.




  늦은 일요일 오후, 맑지는 않았지만 나쁘지도 않은 날씨다. 지하철역에서 나와 앞으로 쭉 걸어간다. 건너편 높은 언덕에는 이 여정의 시작점인 혜화문이 있다. 혜화문은 조선의 도읍 한양의 4소문 중 하나로, 숙정문과 흥인지문 사이, 도성의 동북쪽에 있는 문이다. 지금 혜화문의 모습은 사실 1992년에 복원된 것인데, 일제 강점기 혜화동과 돈암동 사이 전찻길을 내기 위해 모두 헐어버렸던 것을 서울성곽의 일부로 다시 쌓아올린 것이라고 한다.


  낙산 성곽길에 오르는 첫 번째 음악 친구로 백예린의 ‘우주를 건너’를 선택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길이면 사람들이 그렇게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나 싶어 궁금함과 기대에 마음이 부푼다. 높은 계단으로 자신의 모습을 높은 곳에 꼭꼭 감추고 있는 낙산 성곽길. 그 길과 기자 사이 계단이라는 우주를 건넌다.


  너무 시끄럽지도, 너무 조용하지도 않은 음악에 귀를 기울인다. “더 이상 기다리게 하지마”라는 가사가 마치 성곽길이 기자를 부르는 것 같아 발걸음을 재촉한다. 드디어 계단 위로 성곽이 모습을 드러낸다. 성곽을 따라 계단과 이어진 데크길을 걷는다. 마침내 데크길이 끝나고 이제부터는 잘 정돈된 붉은 황톳길이다. 푸른 하늘과 옆에는 높은 성벽, 그리고 저 앞의 나무 한 그루. 그 아래 벤치엔 한 아저씨가 책을 읽고 있다. 영화 속에나 나올법한 앵글이 기자의 눈동자에 비친다.


  조금 더 걸어볼까. 성벽의 모퉁이를 돌자 건물이 빼곡 들어선 서울의 모습이 발아래 내려다보인다. 미니어처들을 모아놓은 것처럼 개미보다 작은 집들이 서울 성곽을 마주하고 있다.





  오르막을 올라 조금 더 걷다보면 조그만 쪽문이 보인다. 성 밖만 걷다 성 안의 모습이 궁금해져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서본다. 낙산공원이다.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사람들의 표정이 다들 밝다. 덩달아 힘든 오르막을 올랐던 이전 기억은 사라지고 미소를 지어본다.


  성곽 안쪽을 따라 걷는다. 성 밖에서는 감히 오르지도 못할 웅장함을 자랑했던 성벽은 안으로 들어서니 고작 허리 높이밖에 되지 않는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집들이 정말 개미보다 작다. 아까 성곽 밖에서 본 것보다 더 작아졌다. 귀여운 먼지 같은 집들이다.


  공원을 돌아 아래쪽으로 내려온다. 한 가족이 배드민턴을 치고 있다. 누나와 아빠가 한 팀, 엄마와 남동생이 한 팀이다. 아들이 내려치는 귀여운 스트로크에 아빠는 꼼짝하지 못한다. 내기는 아들과 엄마 팀의 승리. 기쁨에 겨운 엄마와 아들은 하이파이브를, 내기에 진 딸은 한숨이다.


  앞에는 조그만 아이가 있다. 한 단이 제 다리보다 긴 공원 안의 계단을 힘겹게 내려오고 있다. 반대로 오르고 있던 기자는 잠시 아이가 내려가길 기다려준다. 아이가 힘들어보였는지 아이의 아빠는 결국엔 아이를 안아들고 계단을 내려간다. 공원엔 그렇게 저마다의 추억이 쌓인다.





  한 20분쯤 걸었나 싶다. ‘장수마을’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비석이 기자를 반긴다. 잠시 성곽길을 벗어나 마을을 둘러본다. 마을은 조용하다. 놀이터가 있었지만 성곽길을 걷던 사람들이 잠시 쉬었다 갈 뿐 아이들이 뛰어노는 풍경은 보지 못했다. 조그만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마을은 좁은 길에 오르막과 내리막이 쉼 없이 반복된다. 6-70년대 서울로 상경한 젊은이들은 땅값이 싼 이 동네에 집을 짓고 모여살기 시작했고, 40년 이상씩 머무르면서 이제는 나이가 들었다. 마을에 60세 이상의 어르신들이 많이 살아 ‘장수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장수마을은 2004년 재개발 예정구역으로 선정됐다. 하지만 문화재인 서울성곽과 맞닿아 있어 재개발을 하기 어렵고 사업성이 적어 섣불리 재개발을 하겠다고 나선 업체가 없었다. 그렇게 방치됐던 장수마을은 2008년부터 마을기업인 ‘동네 목수’를 중심으로 도시재생 사업을 시작했고, 지금은 집을 허무는 대신 리모델링을 하는 방법으로 마을을 재탄생시키고 있다.


  다시 장수마을의 초입, 그 비석 앞으로 되돌아온다. 어릴 적 살던 동네와 많이 닮은 장수마을을 뒤로하고 비석 옆으로 놓인 길로 올라선다. 가파른 오르막 카펫이 성벽 옆으로 길게 놓인다. 낙산 성곽길 전체를 통틀어 이 오르막이 가장 가파르다. 언제쯤 끝이 날까 이 오르막은. 고된 오르막의 끝에는 고되게 올라온 만큼 아름다운 장수마을이 담고 있는 서울 풍경이 보인다.


  다시 성 밖으로 나와 걷다보니 두 번째 쪽문이 보인다. 또 안으로 들어서본다. 성 밖은 그렇게도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였는데 성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사람이 없는 공간을 찾을 수 없는 이곳은 이화마을이다.


  벽화마을로 유명한 이화마을. 역시나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들이 가득하다. 그 사이사이엔 교복을 입고서 낭만을 즐기는 청춘들도 눈에 띈다. 골목골목마다 아름다운 그림이 가득했고, 예쁜 카페나 공방도 줄줄이 늘어섰다.


  눈부신 햇살이 비추는 작은 달동네 이화마을은 2006년 예술가 70여명이 참여한 ‘ART in City 2006-낙산 프로젝트’를 통해 지금의 모습이 됐다. 벽을 캔버스 삼아 그린 그림에 사람들은 카메라로 화답했고, 이제는 서울의 빼놓을 수 없는 관광 명소가 됐다.


  플레이리스트의 노래는 에피톤 프로젝트의 ‘이화동’이다. 시끌벅적한 지금의 이화동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노래지만, 그저 여기가 이화마을이라 선곡한 노래다. 언젠간 추억이 될 이 마을에서의 기억을 써내려가는 노래를 들으며 마을을 벗어난다.





  내려오는 길은 성벽 안쪽 길로 걷는다. 이 길의 끝은 동대문과 이어진다. 산의 모양이 낙타를 닮았다 해 낙타산이라고 불렸다는 야트막한 낙산의 능선을 따라 이어진 길을 걷다 보니 작은 놀이터가 보인다. 시소를 타고 있는 아이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 시소 뒤 성벽과 한양도성 박물관 사이로 동대문이 보인다.


  박물관 사잇길로 내려간다. 드넓은 잔디밭이 펼쳐진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던 두 명의 소녀가 기자에게 다가와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한다. 황금색 잔디밭, 그리고 그 위에 우뚝 올라선 성벽을 배경으로 두 소녀의 시간을 멈춰준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순간을 카메라 속에 담는데 바쁘다. 기자도 낙산 성곽길의 마지막을 카메라에 담아내고는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내려온다. 조금 늦게 출발한 탓에 어느 새 해는 뉘엿뉘엿 서녘으로 넘어갈 기미를 보인다. 그렇게 성곽길에 남겨둔 마음을 향해 힘껏 손을 흔들면서, 짧다면 짧은 여정을 마친다.


  전유진 기자
  uzj109@seoul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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