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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성수동
문단비 ㅣ 기사 승인 2016-10-03 00  |  577호 ㅣ 조회수 : 605



  2호선 성수역에서 내린 후 승강장의 안전문을 유심히 보면 구두 모양의 스티커가 붙여진 것을 볼 수 있다. 성수역 승강장 내 기둥, 역사 곳곳에 ‘구두’가 가득한 이유는 성수동이 수제화로 유명한 곳이기 때문이다.







  성수역이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는 구두 말고도 성수동은 가죽 공방과 공장지대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성수동은 변화하고 있다. 칠이 벗겨진 건물, 망치 두드리는 소리, 아침 일찍 열리는 낡은 셔터로 기억되던 곳에 ‘젊은 감성’이 들어오면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성수동의 변화는 낡은 창고에서 시작됐다. 1970년대에는 정미소였다가, 이후 20여년간 창고로 방치되던 낡은 건물에 언제부턴가 젊은 예술가의 작품이 전시되고, 유명 브랜드의 행사가 열리게 된 것이다. 그 낡은 건물은 바로 ‘대림창고’로, 현재도 다양한 전시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40년은 더 돼 보이던 건물에 건물보다 젊은 사람들이 가득차게 된 이후, 성수동은 점점 ‘뜨는 동네’가 되기 시작했다.





  기자가 만난 성수동은 한마디로 ‘아이러니’였다. 창고가 전시장이 되고, 인쇄소가 카페로 변하는 곳이라니, 뜨거운 젊은이들의 감성이 녹아있지만, 아직 ‘동네’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곳이라니, 하나부터 열까지 신기하기만 한 동네였다. 하지만 얼마 후 기자 역시 성수동을 이해하게 됐다. 성수동은 ‘형형색색의 가죽들이 가득하고, 살짝 올려진 셔터 사이로 열심히 일하는 분들의 모습이 보이는’곳이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서 ‘사진기를 든 외국인들이 벽화를 보며 맥주를 마시는’ 동네다.





  사실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다 고급 아파트를 봤을 땐 조금 실망했다. 결국, 이곳도 옛 모습을 잃고 도시로 변해가는구나 싶었다. 그렇지만 아파트를 둘러싼 다른 건물들은 모두 옛날 그대로였다. 푸른 유리로 뒤덮인 고급 건물과 칠이 떨어져 가는 낡은 건물의 조화는 몹시 낯선 느낌을 줬다.





  성수동의 주력산업이었던 ‘구두’역시 과거와 현재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성수동을 걷다 보면 수십 년간 같은 자리를 지켜온 수제화 공방을 볼 수 있다. 어릴 적 보던 단화와 뾰족구두부터 최신 유행하는 로퍼 스타일의 구두까지 다양한 구두를 취급하는 공방의 분위기는 왠지 모르게 정겨운 기분이 들게 했다. 공방을 지나 골목으로 들어가면 젊은 감성을 자랑하는 신발가게와 편집숍, 브랜드 쇼룸 역시 만날 수 있다. 카페처럼 예쁜 색감으로 꾸며놓은 신발 가게를 보다 보면 기자가 성수동에 있는지 홍대에 있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우리나라는 제조업으로 초기 산업화를 이뤄냈지만, 90년대 이후 제조업이 급격하게 쇠퇴하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공장과 철공소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 얼마 남지 않은 공장지대는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과거와는 달리 공실이 많아졌고 주변에도 아파트가 들어서는 등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 됐다.

  2호선 문래역 7번 출구에서 조금 앞으로 나가면 있는 ‘문래예술촌’역시 과거에는 철공소가 모인 곳이었다. 하지만 철강산업은 점점 쇠퇴했고, 문래동 곳곳에는 텅 빈 철공소 건물만이 남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곳에 예술가들이 찾아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렇게 문래동은 철공소와 예술이 공존하는 곳으로 재탄생했다.





  예술촌으로 들어서는 골목 어귀엔 쇠로 만든 목마와 용접 마스크, 거대한 망치 모양 조형물이 있었다. 쇠와 예술이 공존하는 문래동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았다. 특히 거꾸로 세워진 망치의 손잡이 부분에는 고양이 상이 있었는데, 기자가 생각하는 문래동의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래동에는 성수동과 다른 매력이 있었다. 성수동이 조화와 공존의 동네였다면, 문래동은 스며듦의 동네다. 골목을 걷다 마주치는 철공소 근로자마저도 예술인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곳이라고나 할까. 철공소 간판, 이정표, 식당 간판마저도 문래동의 매력을 잘 나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래동은 최근 무분별한 초상권 침해로 고통받고 있다. 문래동이 생계와 예술이 독특한 조합을 이룬 동네로 알려지면서 출사 명소로 떠오른 이후, 몇몇 사람들이 철공소 근로자의 모습을 무단으로 촬영했기 때문이다. 이는 이화 벽화마을, 북촌 한옥마을 등에서도 나타나는 문제로, 문래동 곳곳에는 이러한 촬영을 방지하기 위해 초상권을 지켜달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골목 끝에서는 한창 촬영이 진행되고 있었다. 철공소 셔터에 걸린 비닐을 수차례 촬영하던 사진작가, 그 옆에서 들리는 용접소리는 문래동만의 매력이 물씬 피어나는 장면이었다. 아쉽게도 최근 지역 일대를 달구고 있는 재개발 이슈 때문에 예술가들은 떠나고, 카페나 식당이 그 자리를 채우기 시작한 문래동이지만, 여전히 느껴지는 독특한 분위기는 문래동을 찾는 이들에게 기분 좋은 느낌을 준다. 기자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힘을 합쳐 문래동만의 특색 있는 예술 활동이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었으면 한다.



  금요일 밤 2호선 홍대입구역은‘불금’을 즐기러 온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대형 브랜드 매장, 유흥업소가 밀집돼있는 홍대 일대는 서울 내에서도 거대한 상업지 중 하나다. 과거에는 홍대도 젊은 예술가와 소극장이 있던 곳이었지만, 최근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프랜차이즈와 유흥업소가 그 자리를 채웠다.

  그런데 홍대 근처의 임대료가 오를수록, 홍대에서 작은 가게들이 사라질수록 근처의 연남동과 상수동에 작은 가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임대료를 피해 떠나온 ‘작은’사람들은 작은 동네 연남동에 모여 저마다의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연트럴파크가 생겨났다. 홍대입구역에서 경의선 가좌역으로 이어지는 경의선 선로를 재탄생시켜 경의선 숲길로 만든 이 공원은 뉴욕의 센트럴파크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연트럴파크’로 불리고 있다. 홍대입구역 3번출구로 나오면 바로 연트럴파크를 볼 수 있다. 불과 몇백 미터 떨어진 홍대가 화려한 네온사인과 클럽 음악으로 가득한 불금의 메카라면 연트럴파크는 풀과 나무 사이에서 즐기는 피크닉의 메카다.





  이른 저녁에 찾은 연트럴파크는 초록 잔디와 형형색색의 돗자리로 가득했다, 몇몇 사람들은 기타를 가져오기도 했다. 버스킹 소리와 맥주캔 부딪히는 소리, 북적이는 소리로 가득한 숲길은 제법 낭만적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연인과 함께 다시 가고 싶은 곳이다.





  숲길을 등지고 골목으로 들어서면 연남동만의 소박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특유의 색감과 소품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소품샵 ‘네온문’부터 젊은이의 눈길을 사로잡는 펍까지 모두 모인 골목이 연남동의 매력을 말해준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 사이에서 춤추는 금요일에 피로를 느낀다면, 연남동으로 떠나는 게 어떨까. 연남동만의 소소한 매력을 느끼며 마시는 맥주 한 캔은 세상 그 어떤 술보다 꿀 같은 맛일 것이다.





  기자는 2호선 노선도를 보면 항상 ‘우리 사회의 단면적은 딱 2호선 모양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테두리를 끊임없이 달리는 2호선 속 사람들은 각자의 무게에 눌려 어깨를 움츠리고 있다. 여전히 현실은 각박하고 사회는 치열하지만, 가끔은 성수동과 문래동, 연트럴파크처럼 정적이고 소박한 ‘동네’를 찾아가보자. 빠르게만 가려는 우리 사회의 관성을 조금은 줄일 기회일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 : 임대료가 싼 정체 지역이 활성화돼 상권이 형성됨으로써 원래의 지역 문화나 소상공인들이 지역 밖으로 내몰리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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