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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필수템 족보, 악습인가
장수연, 서유정 ㅣ 기사 승인 2024-05-13 14  |  689호 ㅣ 조회수 : 271
“아는 선배한테 족보 알아서 받아 풀어라.”



우리대학 재학생 A씨가 작년 한 수업에서 교수로부터 실제 들었던 말이다. 족보가 암암리에 공유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교수가 학생들 앞에서 대놓고 족보 공유를 권장하는 모습에 그는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일부 교수들의 경우 족보로 인한 불공정성을 인지하면서도 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며 대학 내 뿌리 깊은 족보 문화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실제로 시험 기간이 다가올 때면 우리대학 에브리타임(학생 커뮤니티)엔 족보를 구한다는 제목의 게시물들이 심심찮게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다.

 



“OO 수업 XX 교수님 족보 구합니다”



“OO 수업 족보 사례합니다”





본지가 우리대학 학우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응답 88명)에 따르면, ‘족보를 구매 및 공유한 경험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예’라고 답한 학우는 40.9%(36명), ‘아니오’라고 답한 학우는 59.1%(52명)로 상당수가 족보를 공유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족보를 획득한 경험이 있는 이들의 족보 획득 경로는 대부분 선배나 동아리였으며, 에브리타임에서 익명 거래를 통했다는 이들 역시 다수 존재했다. 대부분 인맥을 통해 족보를 얻고 있었으며, 마땅한 인맥이 없는 이들은 금전 거래를 통해서라도 족보를 구하는 상황이었다. 





족보, 학업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71.6%(63명)가 ‘족보가 실질적으로 학업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동의하는 답변을 내놨다. 이들 대부분은 족보가 학업에 도움 된다는 이유로 시험 유형을 미리 확인할 수 있고, 중요한 부분이 어떤 것인지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족보가 일종의 시험 기출이라는 점에서 시험 대비에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주된 내용이었다.

우리대학 최진석 문예창작학과 교수(이하 최교수)는 족보에 관해 “어떻게 보면 특정 학문에 대해서 첫 단계부터 마지막 단계까지 길잡이를 만들어준다는 측면에서 그 자체로서 문제 삼을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라며 “학생들이 수많은 공부를 다 할 수가 없으니까 일정 부분을 빠르고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정리한 것이 족보인데, 학생들이 수공예로 만든 자습서 개념 정도로 활용한다면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라고 전했다. 공부하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족보 자체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 그 의견이었다.

이에 반해 족보가 실질적으로 학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한 28.4%(25명)는 족보가 학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 대해 ‘내용 전체를 온전히 이해하지 않고 선택적으로 공부하게 된다는 점에서 좋은 공부가 아니다’, ‘시험을 위한 수단일 뿐, 학업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학생들의 노력 가치를 훼손시키고 학교를 그저 학점 따고 졸업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시키는 악습’ 등의 의견들을 내놓았다. 이러한 의견들은 족보가 성적을 따기에는 좋은 수단이 될지 모르겠지만 지식 습득의 의미로서 학문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면에서 일맥상통했다.





인맥 없으면 불리… 돈 주고 족보 거래





앞선 설문조사 결과에서 일부는 족보 획득 경로가 금전 거래를 통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 또한 작년에 에브리타임 익명 거래를 통해 족보를 구한 적이 있었다. 그는 “족보가 있으면 공부하는 시간이 현저히 적어지니 구매하게 됐다”며, “시험에 실제로 반영이 많이 돼 도움이 됐다. 적은 시간과 노력으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4,500원 정도 가격으로 족보를 거래한 결과, 가격 대비 만족도가 매우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어서 그는 본인의 전공 시험들은 족보 반영이 매우 높다는 것을 언급하며, 인맥이 없으니 족보를 돈 주고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말했다. 그는 “일부 교수들은 ‘족보 구하는 것도 능력이다’라며 족보를 당연시하기도 한다. 왜 시험을 보는데 인맥이라는 요소가 평가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공정한 시험이라면 인맥과 무관하게 본인의 실력만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인맥에 따라 시험 결과가 좌지우지되는 현실을 꼬집었다. 인맥이 없어 족보를 구하지 못하면 성적 얻기 또한 불리해진다.

또 다른 재학생 B씨 역시 “우리 학과의 어떤 동아리는 연도별로 시험 기출들을 정리해 드라이브로 공유하고 있다더라”며 “나처럼 동아리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족보가 도는지조차 모른다”라며 인맥 없이 족보를 얻기 불리해지는 상황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처럼 인맥이 없어 족보를 구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결국 금전 거래를 통해 족보를 구하기도 한다. 우리대학의 어느 학과 오픈채팅방에는 대놓고 족보를 사례한다는 채팅이 올라왔다며 제보가 들어오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 관해 최교수는 “우리 학교의 경우 상대평가 위주인데, 누군가는 한 계단 위로 올라가면 누군가는 한 계단 밑으로 가야 된다는 뜻이다. 이게 성적을 떠나서 장학금 수혜 등 여러 가지 문제로 이어지지 않나”라며, “나아가 학교 바깥의 사회라고 부르는 곳에서 생겨나는 계급적인 차이까지 반영된다. 이건 문제가 된다”라고 말했다. 누군가는 족보를 얻고 누군가는 얻지 못하는 상황이 단지 대학 내 문제만으로 여길 것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학우 대부분,족보로 인한 불공정 체감





재학생 C씨는 작년 수강했던 한 수업이 시험 난이도에 비해 시험 평균이 유독 높았다. 이에 반해 C씨는 열심히 공부했음에도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았기에 회의를 느꼈다. 그러나 알고 보니 해당 수업 내에서 학우들 사이에 족보가 돌고 있었고, 이에 따라 높은 평균을 기록했던 것이다. 한참 후에 이 사실을 알게 된 C씨는 회의감과 더불어 상대적 박탈감 또한 느끼게 됐다.

앞선 설문에서 족보로 인한 불공정을 체감한 적 있냐는 질문엔 ▲예 68.2%(60명) ▲아니요 31.8%(28명)의 응답이 따랐다. 응답자 대부분이 족보의 불공정을 느끼고 있다는 결과였다. 불공정을 체감했다고 답한 학생들은 이와 관련해 다양한 경험담들과 함께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 중 ‘족보와 완전히 동일한 문제가 나왔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족보로 공부한 사람보다 훨씬 낮은 점수를 받았다’, ‘시험 난이도에 비해 족보가 도는 수업은 높은 평균을 기록했다’는 사례들이 다수 확인됐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족보와 시험 출제 유형이 흡사해 족보가 없는 사람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족보를 가진 사람의 성적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노력 대비 낮은 성적에 대한 박탈감을 이야기했다.

한 학우는 “한 과목의 모든 연습문제를 2주에 걸쳐 열심히 풀었지만, 시험에는 연습문제는커녕 과제나 교과서 예제와 유사한 문제도 안 나왔고 매우 어렵게 출제됐다. 그래도 지금까지 공부했던 지식을 이용해 열심히 풀었지만 내 점수는 100점 만점에 60점이었고, 이틀 정도 공부한 족보 소지자들은 100점이 수두룩했다. 그로 인해 시험 평균이 매우 높았고 지금까지 해온 게 물거품이 되면서 공부할 의욕도 사라졌다”라고 족보로 인해 무력함을 느꼈던 경험을 전했다. 

이어서 그는 “더 억울한 건 족보로 이득을 본 학생들은 입을 꾹 다물고 있어 이의를 제기하지 않지만, 족보로 인해 상대적 불이익을 받은 학생들은 족보가 도는 것조차 몰라서 이의를 제기하지 못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1~2명이 이의를 제기하는 것으로는 고쳐지지 않는다”며 족보 기출이 끊이지 않는 현실에 관해 말했다.



‘정답’이 아닌 ‘수단’으로





족보는 시험 문제를 미리 대비할 수 있고, 출제 방향을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앞서 살펴보았듯이 암암리에 공유되거나 금전적으로 거래되는 문화로 인해 이에 대한 불합리성을 제기하는 학우들이 매 학기 존재했다. 단지 시험공부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험의 ‘정답지’로써 쓰이는 경우도 빈번했기 때문에 족보를 ‘공부’가 아닌, ‘시험’을 위한 수단이지 않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학우도 있었다.  수업 평가 방식은 각 수업이 다루는 내용에 따라 다양하게 반영되지만, 대부분 수업에서 시험을 주요한 평가 항목으로 다루는 만큼 족보에 대한 학생들의 이견에 귀 기울일 필요성이 있다.

본지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많은 학우가 족보에 대한 제재나 규제에 관해 의견들을 제시했다. 가장 많은 이들이 내놓은 해결책은 ‘교수가 직접 기출을 뿌려야 한다’와 ‘교수가 매년 시험 문제를 변형해서 출제한다’라는 것이었다. 한 학우는 “시험 문제들이 중요한 개념을 묻는다는 점에서 매번 출제 포인트가 같다는 것은 이해하나, 교수들이 문제를 매번 변형해서 제출해 학우들의 노력에 보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도 말했다.

이렇듯 근본적인 해결책은 굳어진 시험 문제 유형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에서 시작될 것이다. 각 과목의 특성상 매 학기 문제 유형을 바꿔 출제하는 게 어렵다면, 학생들이 언급했듯이 시험 성적 반영의 비중은 낮추고, 과제를 비롯한 영역의 비중을 높이거나, 혹은 교수가 지난 기출 시험 문제를 수강생 모두에게 제시해 공평히 학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단순히 정보의 불균형을 막는 것뿐만이 아니라 학업 탐구의 본질적인 의미를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족보가 공유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장수연 기자

jso8787@seoultech.ac.kr 



서유정 수습기자

suj7260@seoul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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