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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 반한 “한지”, 우리는?
권민주, 장수연 ㅣ 기사 승인 2020-11-16 00  |  638호 ㅣ 조회수 : 94

유럽이 반한 “한지”, 우리는?



▲한지문화산업센터에 있는 한지 전시(출처: 잡지 리빙센스)



  한지는 오래전부터 우수성을 자랑하며 해외에서 인정받고 있는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전통 중 하나이다. 최근, 이 ‘한지’가 유물을 복원할 때 활용된다는 점이 알려지며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대외적으로 인정받는 것과는 달리 현실 속 우리나라의 전통 한지 시장은 무너지고 있다. 전통 한지의 변화와 국내 전통 한지 수요 급감, 그리고 정부의 부족한 지원이 주요 원인이다. 그런 위기 속, 최근 한지는 전통적인 종이로서뿐 아니라 독창적인 디자인과 결합해 멋을 더한 공예품 혹은 트렌디한 문화상품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에 국내 한지의 현황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한지는

우수한 우리의 문화입니다.



  전통적으로 종이는 수제지와 기계지로 나눌 수 있다. 기계지는 보통 우리가 쓰는 종이를 말하며 흔히 ‘양지’라고 불린다. 한지는 한국에서 손으로 뜬 수제지로서 중국의 수제지인 화지(華紙)나 일본의 수제지인 화지(和紙)와 구별해 지칭한다. 원래 한지라는 이름의 유래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계림지·삼한지·고려지·조선지란 명칭에서 시대가 변함에 따라 한지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러한 한지의 특징은 두껍고 질기다는 점이다. 현존하는 종이나 문헌을 보면 신라 시대와 고려, 그리고 조선 시대에는 종이의 두께가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중국에서 진귀하게 여겨졌던 신라의 백추지 혹은 경면지 등도 긴 섬유의 종이를 몇 겹으로 붙여서 이를 두드려 광택을 낸 것이다. 백추지는 두드려 만든 하얀 종이라는 의미이고, 경면지는 두드려 거울처럼 빛나게 한 종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당시 우리의 한지는 색감이 곱기도 했지만, 실용성과 종이의 두께 측면에서도 우수했다.



  올해 8월 10일(월)에는 전주한지가 세계 문화재 복원 선도국인 이탈리아로부터 우수성을 인정받아 ‘세계적인 복원용지’로의 길이 열리게 됐다. 이날 전라북도 전주시는 유럽 문화재 보존·복원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이탈리아 국립 기록유산 보존복원 중앙연구소(이하 중앙연구소)로부터 전주한지가 문화재 보존·복원용으로 적합하다는 ‘유효성 인증서’를 획득했다고 밝혔다. 더불어 이번에 인증된 전주한지는 ▲SH4 평량 35g/㎡ ▲SH5 평량 45g/㎡ 2종으로 전주산 닥 원료와 황촉규(닥풀) 뿌리 점액 등 전통원료를 사용해 최성일 전주한지장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다. 그 결과 중앙연구소가 이번 인증서를 통해 “한지 SH4와 SH5는 화학적, 생물학적, 물리적, 기타 기술적인 기준에서 모두 일치하는 긍정적인 결과가 나왔다”라고 전했다. 더불어 “전주 한지는 신뢰성을 가질 뿐만 아니라 내구성과 높은 수준의 안정성을 가지므로 보존과 복원 분야에 사용이 적합하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지난 9월 14일(월) 전주시는 전통 한지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전통 한지 세계 문화 유산화 자문단’을 구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지는 세계 각국으로 뻗어 나가며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실제로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서 한지는 ‘기록 유물 복원용 종이’로 사용될 정도로 우수성이 뛰어나다. 이에 “문경전통 한지는 퀄리티도 좋지만 일본의 화지와 달리 천연알칼리제인 잿물로 중화돼 자연스럽고 우아하다”라며 “그림과 걸맞는 자연스러움과 기품이 지류작품 복원에 가장 핵심인데, 특히 대한민국 문경한지의 색상은 루브르 박물관 컬렉션의 많은 지류문화재와도 완벽하게 어울린다”라고 평하며 주목받고 있다. 이렇듯 문화재 복원의 재료로 쓰인 우리의 전통 한지는 한국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있어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해외에선 인정받지만…

위기에 처한 전통 한지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한지, 그러나 국내에서 전통 한지의 현실은 어둡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쓰이고 있는 한지는 대부분 전통 한지가 아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4대 궁궐인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창경궁의 창호지에도 대부분 수입 닥 또는 펄프가 혼합된 ‘종이’가 사용되고 있다. 사실 한지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재료, 제작 기법 등 대부분 일본화가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한지는 일본의 화지처럼 변형되며 품질 또한 현저히 저하됐다. 우리가 쓰는 한지는 더 이상 한지가 아니게 됐다. 이 때문에 중국 선지는 2009년, 일본 화지는 2014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지만, 우리나라의 한지는 아직 등재되지 못한 상황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종이이지만 한지의 전통을 되찾기 위한 노력이나 지원책은 부족한 실정이다.



  한지 전통기술의 퇴보만큼이나 큰 문제가 되는 것이 또 있다. 바로 한지에 대한 국내의 수요 급감이다. 한지산업지원센터에 따르면 1996년까지만 해도 전국 69곳이었던 전통 한지 업체는 꾸준히 감소해 작년 기준 전국 26곳 만이 남아있다. 여기서 농한기에 한시적으로 조업하거나 한지 제작 체험을 위한 곳을 빼면 10곳 남짓이다. 그런데도 위 4대 궁궐의 사례처럼 공공 문화재의 수리와 복원에도 전통 한지를 잘 사용하지 않는 실정이며, 이에 대한 의무 규정 역시 없다. 심지어 한지의 단가가 줄어들어 수입도 넉넉지 못하다. 그에 비해 한지의 전통 작업 방식은 거의 3D업종을 방불케 하는 수준이다. 한지의 재료인 닥나무를 베어 껍질을 다듬고, 원료를 배합하는 일부터 종이를 떠서 말려 한지를 완성하기까지 총 11가지의 공정을 거쳐야 한다. 이러한 악조건에 전통 한지계는 심각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으며, 현직 업계 종사자들은 앞으로 우리 전통 한지의 명맥을 이어나갈 젊은 기술자가 절실하다고 말한다. 현재 국내에 몇 없는 한지 장인들은 가족과 함께 겨우 한지 공장을 꾸려나가고 있다. 과거 직원들은 모두 나가고 새로운 직원들을 고용하기에는 경제적인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지 제조 기술을 전수할 후계자도, 이를 육성할 지원책도 마땅치 않다. 이로 인해 국내 한지 업계의 미래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 한지를 지키기 위해선 무엇보다 가장 요구되는 것은 우리의 관심과 정부의 실질적인 대응책이다. 특히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가 한지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데에만 열혈이지, 정작 생산과 유통, 소비 등 한지 산업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나 이해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김진희 한지개발원 이사장은 “한지 제작 방식과 관련한 연구개발 예산 같은 걸 편성한 적도 있지만 제대로 된 성과물은 나온 게 없다”라며 “최소한 공장을 굴릴 수 있을 정도로 활용처를 넓힐 방도를 찾는 일이 필요했는데 그런 고민이 부족한 상태에서 지원책을 내놓다 보니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정부 지원책의 허점을 지적했다. 이외에도 한때 한스타일(K-Style) 사업으로 한지 시장 규모를 두 배가량 키우거나, 지방자치단체 소관의 별도 지원 기관을 설립하며 다양한 분야로 한지의 용처를 넓히고자 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정권이 갑작스레 교체되면서 지원 사업 전반이 흐지부지됐다.



▲한지로 제작한 문구류(출처: 잡지 리빙센스)



  전통 한지 되찾기가 절실한 지금, 최근 우리나라 한지계에 희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바로 전통 한지 ‘태지’의 복원 소식이다. 태지는 닥나무 섬유에 녹색의 *수태를 넣어 만든 고급 한지로 조선 왕실에서도 사용됐던 한지이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전통 한지의 다양성과 가치를 높이기 위해 명확한 제조법이 전수되지 않은 전통 한지 중 ‘태지’의 핵심원료가 ‘해캄’임을 밝혀내고, 전통기법으로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태지의 우수성은 일본, 중국, 미국 등 해외의 각종 서적에서도 소개됐으며, 세계적 종이 연구가 다드헌터는 1933년 태지를 수집한 후 “태지는 당시 한국에서 제조된 종이 중 최고이다”라며 칭송하기도 했다. 이번 ‘태지’의 복원은 잃어가던 전통의 회복과 전통 제지업의 산업화를 위한 희망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를 통해 국내에서 한지의 위상이 다시 부상하기를 기대한다.



한지의 수많은 변신,

한지 공예



▲공방 솔 알뜰리에의 한지 공예 작품



  국내 한지 시장은 퇴보하고 있지만 예술 분야에서 한지의 위상은 격상하고 있다. 최근 한지는 전통적인 종이로서의 의미뿐 아니라 다양한 개성을 담은 공예품과 창작의 소재로 발전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지로 만들어진 실용성 있는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가장 먼저 소개할 것은 ‘한지 인테리어’이다. 원래 한지는 종이와 창호지로 널리 사용됐다. 창호지는 문이나 창에 바르는 종이다. 창호지는 바람과 열을 막고, 빛을 통과시키기 위해 쓰인다. 그래서 우리의 옛 조상들은 한지를 바른 창호지로 집의 문과 창문을 구성했다. 바로 여기서 한지 인테리어가 유래됐다. 요즘 한지를 활용한 인테리어가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한지 인테리어로 벽지를 한지로 도배하거나 한지를 활용한 전등, 현관문 등이 있다.



  다음으로 한지의 쓰임은 의류 및 문구 분야에서도 활발히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개량한복과 한지의 조화로 인해 개량 한복의 디자인을 한지로 구성함으로써 전통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또한 그 외에도 한지를 활용한 한지 필통이나, 한지 에코백 등 기존 생필품과 한지의 콜라보로 실용성 높은 한지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수태: 녹조류 별해캄과에 속하는 담수 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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