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치르수흐(경영·18) 씨는 2006년, 부모님을 따라 몽골을 떠나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그 후 그는 재한몽골학교에서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의 과정을 마치고 우리대학에 입학했다. 워낙 어릴 적부터 한국에서 지냈기 때문에 한국은 그에게 고향 같은 곳이다. “제가 7살 때 한국에 와서 어릴 적 몽골에 있었을 때의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한국이 그냥 제 고향 같아요. 몽골이 오히려 타국 같은 느낌이에요. 지금까지 한국에서 쭉 살았다 보니 한국 사회가 더 익숙하고요. 몽골에 가면 모르는 것이 많아요.”
몽골학교는 첫 학기가 9월에 시작한다. 따라서 어치르수흐 씨는 9월에 우리대학에 입학했다. 또한 우리대학에는 외국인 학생들의 수업 적응을 위해 이들만 따로 모아 한국어로 수업을 하는 AMS(Asian Management Studies) 제도가 있는데, 어치르수흐 씨도 AMS 수업을 들었기 때문에 한국인 친구를 사귈 기회가 많이 없었다. 심지어 코로나-19로 대면 강의도 힘들어지면서 한국인 친구를 사귀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평소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수흐 씨는 앞으로 교내에 한국인 친구들과 함께 운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길 바란다고 했다. 한국인 친구를 사귀면 가장 함께 하고 싶은 것도 축구였다. “몽골 친구들 중에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가 많이 없어요. 한국인 친구를 사귄다면 같이 축구도 하고 관련 이야기도 하고 싶어요.”
수흐 씨의 한국어 실력은 사실상 한국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 때문에 팀 프로젝트 때는 다른 외국인 친구들을 대신해 발표를 도맡아 하기도 한다. 이렇게 한국에 잘 적응해 지내고 있는 수흐 씨지만, 외국인으로서 겪었던 좋지 않은 에피소드도 있다. “초등학교 시절 제가 축구부를 했는데, 그 당시 옆 학교 한국 학생들이 외국인인 저를 깔보듯이 대했던 경험이 있어요. 어릴 때는 뭘 몰랐으니깐, 그럴 수 있는데… 제가 처음 대학교에서 MT를 갔었을 때 그 당시 한국어를 잘하는 외국인 학생이 저를 포함해서 세 명 있었어요. 그때 한 한국인 학생이 ‘한국어 잘하는 외국인이 싫다’라고 다 들리게 말해서 충격받았던 기억이 있어요. 제가 한국어를 잘하니까 다들 처음엔 제가 한국인인 줄 알아요. 그런데 가끔가다 외국인이라고 밝히면 안 좋게 보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한국이 고향 같은 그에게도 몽골이 그리운 순간들이 있다. 바로 몽골의 날씨이다. 몽골의 여름은 한국만큼 덥지 않고, 겨울에는 눈이 자주 내리는 편이다. 여름과 겨울이 되면 수흐 씨는 몽골에 가고 싶어진다. 이외에도 수흐 씨는 몽골의 음식과 술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몽골 고원은 고기와 가축의 젖을 구하기 쉬운 환경이다. 따라서 몽골의 주식은 고기로 만든 음식이 많은데, 수흐 씨 역시 이런 고기 요리를 좋아한다. 또 수흐 씨는 한국의 소주보단 몽골의 전통주인 ‘아이락’을 좋아한다. 아이락은 말젖으로 만든 한국의 막걸리와 비슷한 술이다. 그러나 이외의 개인 취향들은 한국인과 별반 다른 것이 없었다.
수흐 씨는 이제 온라인 강의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한다. 수흐 씨의 주변 외국인 친구들도 마찬가지이다. 외국인 학생의 입장에서는 강의 속도도 조절하고 못 들었던 내용을 다시 반복해 들을 수 있어 좋지만, 이제는 대면 강의가 그립다. 이번 본지와의 만남도 집에만 있는 일상이 아쉬워 신청하게 됐다. 최근에는 KBS에서 방영하는 한국 문화 관련 퀴즈쇼에도 지원했다. 수흐 씨도, 다른 외국인 학생들도, 그리고 한국인 학생들도 모두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종식돼 이전의 생활로 다시 돌아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자수르혼(컴공·20) 씨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외국인 유학생이다. 어렸을 때부터 <겨울연가>, <대장금>, <주몽> 등 한국 드라마를 많이 봤고, 이 영향으로 한국에 관한 관심이 있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고장 난 휴대폰, 컴퓨터 등을 고쳐봤다. 아르바이트로 고장 난 제품들을 수리하며 재미를 느꼈고 더 나아가 소프트웨어 부분에 관심이 생겼다. IT 강국인 한국에 가서 공부하고 싶어 한국 유학을 결심했다.
자수르혼 씨는 K-POP과 한국 문화를 즐길 것을 기대하며 한국에 왔다. 그러나 유학 온 지 얼마 안 돼서 코로나-19가 발생했다. 자수르혼 씨의 로망은 물거품이 됐고, 온라인 강의만을 듣게 됐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친구를 사귀며 즐겁게 생활했어요. 그러나 코로나-19 이후에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제한돼서 아쉬워요. 지난 학기에 온라인 시험을 봤어요. 제한 시간 안에 시험지를 제출해야 하는데 기숙사 인터넷에 문제가 생겨서 시간을 넘어버렸어요. 기숙사 행정실의 도움과 교수님께 문의 끝에 시험을 잘 마무리했지만, 이때만 생각하면 아찔해요. 교수님께 질의응답도 쉽지 않아서 모르는 것을 해결하기 쉽지 않아요. 다른 학생들과 팀 프로젝트 하며 교류도 원했는데 이것도 못 해서 너무 아쉬워요. 그나마 온라인 수업이라 강의를 여러 번 다시 들을 수 있는 장점은 있네요.”
자수르혼 씨는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학교생활과 문화적인 차이를 느낀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대학교에서 공부를 많이 하고 열심히 해요. 교수님들이 학생들에게 화도 내며 공부를 많이 시켜요. 이에 반해 한국의 대학 공부는 자유롭다고 생각해요. 열정적인 한국 교수님들이 계시기는 하지만 우즈베키스탄 교수님처럼 공부를 시키는 교수님은 못 본 것 같아요.”
결혼 문화도 다르다고 말한다. “한국 성인들은 늦게 결혼하고 비혼도 많죠?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기 쉽지 않아요. 우즈베키스탄 여성의 경우 25세 전으로 대부분 결혼해요. 그렇지 않으면 부정적인 시선이 있어요. 요즘에는 많이 줄긴 했지만, 정략결혼도 아직 있어요.” 자수르혼 씨는 좋아하는 한국 문화들이 있다. 첫 번째는 ‘빨리빨리 문화’다. 음식점에 가면 음식이 빨리 나오고, 인터넷도 빨라서 편리한 부분이 많다. 자수르혼 씨는 이런 특성 덕분에 한국이 빠르게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선후배 문화’다. 자수르혼 씨는 신입생 때 선배 덕분에 수강 신청을 무사히 할 수 있었다. 수강 신청 외에도 많은 정보를 주고 밥도 사주는 선배가 고맙다고 생각한다. 우즈베키스탄에도 이런 문화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자수르혼 씨는 무슬림이다. 라마단 기간에 기숙사의 조리실을 상시 개방해서 불편함을 못 느낀다. 한국에 오기 전에 한국에는 이슬람교가 흔하지 않아서 걱정했다. 그러나 막상 한국에 오니 다양한 종교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식당에서 돼지고기 포함 여부를 물으면 친절히 알려줘서 불편한 점은 하나도 없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자수르혼 씨는 한국에 온 뒤로 우즈베키스탄에 간 적이 없다. 종종 부모님 생각이 나서 우즈베키스탄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럴 때마다 옆에서 힘이 돼주는 어학당, 친구, 교수님이 있어서 힘이 난다고 한다.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잠잠해져서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가 가족들에게 한국 음식, 문화를 알려주는 것이 자수르혼 씨의 바람이다.
처음 외국인 학생들과 인터뷰를 하게 됐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많은 사람과 만남을 갖고 인터뷰를 하는 기자이지만, 여전히 낯선 사람들과 말을 하는 것은 기자에게 어렵게만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두 학생과의 만남을 갖기 전 여러가지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걱정한 시간이 무색하게도, 이들과의 인터뷰는 너무나도 편안했다. 오히려 인터뷰이 덕분에 기자가 긴장이 풀릴 정도였다.
인터뷰를 하면서 크게 와닿았던 사실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우리대학이 생각보다 외국인 학생들을 굉장히 많이 신경 쓰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대학교는 외국인 근로 학생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대학은 외국인들을 위한 근로 학생 자리가 따로 마련돼 있었다. 이외에도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도 잘 갖춰져 있었고, 어떤 수업은 외국인 학생들을 배려해 절대평가 방식을 시행하기도 한다. 또한 자수르혼 씨처럼 무슬림 같은 다른 문화와 종교를 가진 학생들도 세심하게 신경 써주고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결국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다’라는 사실이었다. 이들과 대화하는 시간은 마치 친구들과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그만큼 서로 공감되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코로나-19가 종식돼, 외국인 학생들이 다시 고향에 돌아가고, 대면 강의에서 이들을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길 간절히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