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정부 입장 발표
정부는 지난 3월 6일(월) 박진 외교부 장관(이하 박 장관)을 통해 2018년 이뤄진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회견에서 국내적 의견 수렴 및 대일 협의 결과 등을 내용으로 정부의 의견을 전달했다.
발표 내용은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이 2018년 3건의 대법원 확정판결 원고들에게 판결금 및 지연이자를 대신 지급하고, 현재 계류 중인 관련 소송이 원고 승소로 확정될 경우에도 역시 판결금 등을 지급한다는 것이었다.
박 장관은 “재원은 민간의 자발적 기여 등을 통해 마련하고, 향후 재단의 목적사업과 관련한 가용 재원을 더욱 확충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재원 마련은 박정희 정부 당시 국내청구권 자금의 수혜를 입은 포스코와 같은 기업들의 자발적 기부를 통해 추진될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정부는 한일 양국이 1998년 10월에 발표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발전적으로 계승해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우호협력에 입각한 미래지향적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를 바란다”며 한일관계 회복에 대한 의지를 내보였다.
박 장관은 아울러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기억해 미래 세대에 발전적으로 계승해 나가기 위해, 피해자 추모 및 교육·조사·연구 사업 등을 더욱 내실화하고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 장관은 국내 대법원 판결 이후 일본이 한국에 수출규제를 가하고, 한국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를 통보한 데 이어 코로나-19에 따른 인적교류 단절로 경색된 한일관계가 사실상 방치됐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최근 엄중한 한반도 및 지역·국제 정세 속에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가까운 이웃인 일본과 함께 한일 양국의 공동이익과 지역 및 세계의 평화번영을 위해 노력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일본 피고 기업의 참여가 없는 반쪽 해법이라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물컵에 비유하면 물컵에 물이 절반 이상은 찼다고 생각한다 말했다. 또 앞으로 이어질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에 따라서 그 물컵은 더 채워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 한일관계의
변곡점들
우리나라와 일본의 외교 관계에는 지난 5년간 여러 변곡점들이 있었다. 그 중 가장 파장이 컸던 사안은 2018년 대한민국 대법원에서 내린 최종 확정 판결이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신일본제철에 강제징용 당하고 임금을 받지 못한 원고 4명이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 1인당 1억 원씩의 위자료를 배상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일본은 이전부터 1965년 6월 22일 체결된 한일기본조약을 통해 전후 보상문제의 해결을 이미 마쳤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피해자들의 청구권이 이미 공소시효가 소멸됐음을 말해왔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일본기업의 불법행위를 전제로 한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대상에 포함될 수 없다고 봐 피해자들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위자료를 청구할 권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피해자들의 청구권은 일본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반인도적 행위에 대한 것이며 한반도 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하지 않는 협정이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에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청구권의 소멸시효(10년)가 지났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피해자들이 소를 제기한 2005년 2월까지 한국에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 장애 사유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1965년 이전까지 한일 국교가 단절됐었고, 국교 정상화 이후에도 협정 관련 문서가 제공되지 않아 피해자들이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사유가 있었다고 본 것이다.
일본은 이 대법원 판결에 반발했고 2019년 7월 1일 일본 경제산업성에서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조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을 제한하기로 발표했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 역시 전국민적인 일본 물품 불매운동과 함께 지소미아 협정을 종료하며 한일관계는 더욱 경색됐다.
‘제3자 변제’
옳은 해법일까?
물론 2018년에 이뤄진 대법원의 판결을 바탕으로 일본기업에 배상을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리고 지난 일본 정부의 정치·외교적 입장을 여럿 봤을 때, 강제징용 배상안에 대해 소극적이며 심지어 부정하기도 한다. 강제징용 자체를 부정하는 키워드를 사용할 때가 도리어 많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현재 일본 정부가 한계치에 도달했다”고 판단하면서, “1965년에 받은 5억불의 보상금은 개인의 청구권을 대리해서 한국 정부가 수령한 것으로 하겠다고 한 뒤, 이후에 이뤄진 2018년 대법원 판결은 일본의 입장에서 한국이 합의를 어긴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 역시 합의안에 대해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결단”이라며 자평했다.
이에 대해 안호영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학폭 가해자는 사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데 피해자들끼리 돈 걷어 병원비 내라는 것”이라며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무릎 꿇게 만든 윤석열 정부의 굴종 외교”라고 규탄했다.
대법원의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일제 강제징용 생존 원고 3명 역시 13일 정부가 추진하는 ‘제3자 변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 양금덕 강제징용 피해자는 “금방 굶어죽는 한이 있어도 그런 돈 안 받는다”며 정부의 해법안을 강하게 비난했다.
일본은 우리 정부의 이러한 한일관계 회복을 위한 결단을 두고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이번 합의안은 건전한 한일관계로 되돌리기 위한 것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시에 일본 중의원 안전보장위원회에서 “강제동원은 없었다. 그렇기에 제3자 변제 역시 일본과는 무관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일본 경제산업상 니시무라 야스토시는 반도체 수출규제에 대해 “정책 대화를 재개할 환경이 조성됐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의 입장 변화에는 호응하며 식민지 지배에 대한 역사 사죄에는 확실하게 선을 긋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시사저널의 3월 7일(화)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기업 대납에 대한 반대의견은 59.5%, 찬성의견은 37.8%였다. 매일경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번 결정이 ▲매우 잘한 결정이라는 의견은 21% ▲어느 정도 잘한 결정이라는 의견은 16.9% ▲어느 정도 잘못한 결정이라는 의견은 6.8% ▲매우 잘못한 결정이라는 의견은 51.1%였다.
‘제3자 변제’에 대해 국민의 약 60% 정도가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한 것이다. 일본의 과거사 인정 없이, 한국 정부의 독자적 처리에 반대한 것으로 보인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강제징용 피해자 제3자 배상안에 대해 “미국이나 유럽연합(EU)조차도 윤석열 대통령의 이런 조치를 환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정부의 일제강제징용 배상방안이 국민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안은 아니다”라면서도 “이제 동북아시아의 미래와 한일관계의 미래를 위해 이 현상을 과감히 타파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합중국 국무부는 윤석열 정부의 해당 방안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이 협력과 파트너십의 새롭고 획기적인 장을 열었다”고 환영하며 “양국의 역사적인 외교장관 성명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양국 국민들을 위한 보다 안전하고 안정적이며 번영하는 미래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중요한 발걸음을 내디뎠다”고 성명을 내놨다. 이는 미국의 안보 동맹국으로 자리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 발전으로 북핵과 중국 팽창에 대비한, 견고한 한미일 안보체제를 구축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한일정상회담,
엇갈린 평가
한국 정부가 한일관계 회복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지 얼마 되지 않아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 방문이 결정됐다. 3월 16, 17일 이틀간 윤 대통령의 일본 방문과 함께 한일정상회담이 진행됐다. 한일 양국은 회담을 통해 지소미아 완전 정상화와 수출규제 갈등 해결을 위한 실무적 절차를 밟았다고 말했다.
한일정상회담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갈렸다. 19일 대통령실은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에 대해 ‘커다란 성공’이라고 자평했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이하 이 대변인)은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외교라는 게 상대방의 마음을 열고 양자 또는 다자 관계에서 판을 바꾸는 것이라면 이번 윤 대통령의 방일 외교는 커다란 성공”이라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성공의 근거로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전환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됐다는 평가가 한일 양국은 물론이고 국제사회에서도 공통되게 나오고 있다”며 “정치권, 경제·산업계 간에, 특히 미래 세대 간에 새로운 협력의 물꼬가 트였다는 게 일반적 평가”라고 밝혔다.
하지만, 국민의힘 소속 유승민 전 의원은 “피해자가 왜 가해자의 마음을 열어야 하느냐?”면서 한일정상회담을 만들어낸 과정에 대해 비판했다. 양국의 국민 여론도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우리나라는 한일회담 직후 대통령의 지지도가 떨어지는 추세를 보였고, 기시다 총리는 자국 내 지지도가 올라가는 모습을 나타냈다. 각 지도자가 이번 외교를 통해 얻어낸 실리에 국민들의 평가가 구분되는 모습인 것이다.
또, 치열한 진실 공방이 필요한 쟁점도 존재했다. 한일정상회담 과정에서 위안부 합의 이행과 독도 영유권 문제를 논의했는지를 두고 우리 대통령실과 일본 측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이에 야당은 “한쪽은 분명히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진실을 명백히 밝히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대변인은 국회에서 브리핑을 열고 “대한민국 대통령실은 위안부와 독도 논의가 전혀 없었다고 강변하기만 한다”면서 “일본 주장이 거짓말이라면 왜 항의하지 못하는 것이냐”고 주장했다. 또 “윤 대통령이 당당하다면 오간 대화를 다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회담 내용 공개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또 대변인을 통해 “대통령과 정부는 외교 참사를 초래하고도 역사적 결단이라며 방일 외교 성과를 홍보하지만, 이미 외교 참사를 덮기란 불가능하다”며 “윤 대통령은 하루빨리 국민께 잘못을 이실직고하고 석고대죄하라”고 비판했다.
앞서 기하라 세이지 일본 관방장관은 한일정상회담 직후 기자들과 만나 “독도 문제가 포함됐고 위안부 합의에 대해 착실한 이행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일본 공영방송 NHK도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이 같은 일본 측 입장을 회담에서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윤 대통령의 한일정상회담이 가져온 결과를 두고 여야간 공방은 앞으로도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최종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