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한국만화가협회
지난 3월 11일(토), <검정고무신>의 원작자로 알려진 이우영 작가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조사 결과 자살로 추정됐으며, 고인은 수년간 <검정고무신>의 저작권을 둘러싼 소송을 진행 중이었음이 드러났다. 이우영 작가는 해당 소송의 피고 신분이었고 소송의 제기자는 출판업체 형설앤과 대표 장모 씨, 그리고 스토리 담당이었던 이영일 작가였다.
소송은 <검정고무신> 캐릭터가 나오는 만화책을 허락받지 않고 그렸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또 이우영 작가의 부모가 운영하는 농장에서 검정고무신 체험학습장을 운영하고 애니메이션을 무단으로 상영했다며 형사 소송도 추가로 제기했다.
15년간 77가지 사업,
돌아온 돈은 1,200만원
1992~2006년 만화잡지 <소년챔프>에서 연재됐던 <검정고무신>은 이영일(필명 도래미) 작가가 스토리를 담당하고, 이우영과 이우진 형제가 그림을 맡았다. 우리에게 익숙한 기영이와 기철이, 땡구 등 검정고무신 캐릭터들의 모습은 이우영 작가의 손에서 탄생했다. 이후 만화는 큰 성공을 거뒀고 이우영 작가는 <검정고무신>으로 1995년 제5회 한국만화문화상 신인상을 받기도 했다.
한국 만화의 대표 격인 <검정고무신>의 원작자가 저작권 분쟁에 휘말리게 된 데는 2007년 이우영 작가가 장모 씨와 맺었던 계약이 발단이 됐다. 당시 이우영 작가는 장모 씨의 제안으로 사업권 설정 계약서와 양도 각서를 작성했는데, 이우영 작가 측은 이 계약이 원작자에게 불리한 불공정 계약이었다고 주장한다.
사업권 설정 계약서에선 ‘검정고무신 원저작물 및 그에 파생된 모든 이차적 사업권을 포함’하도록 했다. 또 손해배상청구권 및 양도 각서는 ‘손해배상청구권 및 일체 작품 활동과 사업에 대한 모든 계약에 대한 권리를 양도’하고 ‘위반 시 3배의 위약금을 낸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저작권 지분을 양도하는 대가로 지급하는 대금에 관한 내용은 언급되지 않았다.
이우영 작가의 친동생인 이우진 작가에 따르면 당시 장모 씨가 작가들이 할 수 없는 캐릭터 사업을 대신 해주겠다며 설득했고, 작가들의 작품활동과는 무관하게 사업만 진행하겠다는 장모 씨의 말을 믿어 체결한 계약이었다. 추후 이 계약이 발목을 잡아 창작활동까지 제한당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점차 원작자의 동의 없이 진행되는 사업이 잦아졌다. 검정고무신 캐릭터를 활용한 제품이 출시됐고 애니메이션과 극장판이 제작됐지만 이우영 작가에겐 금시초문이었다. 계약을 더 구체적으로 수정하자고 거듭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사업 진행 상황 역시 알 수 없었다.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의 대변인인 김성주 변호사는 지난 3월 26일(일) 공개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약 15년간 검정고무신 관련 사업이 77가지를 넘어가는데 이우영 작가가 수령한 금액은 불과 1,200만원 가량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그는 ▲계약기간을 설정하지 않아 영구적인 사업권을 설정한 점 ▲사업 내용과 종류를 전혀 특정하지 않았고 원작자 동의 절차도 없었다는 점 ▲사실상 포괄적 권리를 양도받으면서 이에 따른 대가는 지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해당 계약은 불공정하고 효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계약서엔 사업 수익에 대해 30%의 대행 수수료를 제외하고 나머지를 지분율에 따라 나누겠다고 명시됐지만 실제 정산은 불투명하고 불규칙하게 이뤄졌으며 금액 또한 약정한 것보다 터무니없이 적었다는 것이 대책위의 입장이다.
계약을 둘러싼
진실 공방
그러나 형설앤 측의 입장은 달랐다. 형설앤에 따르면 작가들이 저작권 지분양도 대가로 ▲애니메이션 4기 제작에 대한 투자 ▲검정고무신 신간 도서의 지속적 출간 ▲타 출판사에서 계약 종료된 절판도서의 복간을 요청했다. 또 정산에 관해서는 사업 저조로 지급이 안 된 적이 있지만 이외 지급은 정확히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또 사업권 설정계약에 대해서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사업권은 애니메이션 제작사와 투자사에 있고 애니메이션 관련 권한은 2014년까지 1~3기를 제작한 KBS 측이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2015년부터 2022년까지 형설앤이 지급한 원작료는 약 8,600만원으로 이우영 작가의 지분으로 환산해 올바르게 지급됐다는 것이 형설앤 측의 설명이다. 오히려 이우영 작가가 이영일 작가의 동의 없이 독자적으로 창작활동을 진행했고, 이를 활용해 저작권자들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수익을 창출했다고 형설앤은 주장했다.
불공정 계약,
막을 수 있을까
해당 사건이 알려지면서 출판업계에서는 창작자를 상대로 한 불공정 계약 관행에 대한 비판이 거센 상황이다. 문체부는 지난 3월 15일(수) 창작자의 권리 보호와 불공정 계약 방지를 위해 만화 분야 표준계약서에 2차 저작물 작성권 내용을 구체화하고, 제삼자 계약 시 사전동의 의무 규정을 포함해 창작자의 저작권 보호 장치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15개 분야 표준계약서 82종의 내용도 재점검할 계획이다.
그러나 문체부의 이러한 대응과 관련해서 실효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표준계약서는 법적 구속력이 없고 현장에서 표준계약서를 따르지 않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문체부는 지난 2020년 <구름빵> 사건 이후 출판 분야의 표준계약서를 마련했다. <구름빵> 사건은 일명 ‘매절(買切) 계약*’으로 인해 원작자가 저작권을 상실한 사례로, 문화예술계에 만연했던 불공정 계약을 알렸던 사건이다.
그러나 여전히 불공정 계약 문제는 크게 개선되지 않았고 표준계약서 개정만으로는 해당 사안을 해결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업계에서는 표준계약서 개정 외에 법적인 장치들이 필요하며, 제대로 된 저작권법 개정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검정고무신〉은 제 인생 전부이자 생명입니다. 창작 이외에는 바보스러울 만치 어리석은 창작자들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사망 이틀 전 이우영 작가가 제출한 최후 진술서에 적혀있던 내용이다. 작품을 알리는데 절실한 작가들에겐 불공정 계약마저 기회가 된다. 이우영 작가 사건이 불공정 계약인지는 여전히 법적 공방 중이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해당 사안이 다시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번을 계기로 올바른 제도적 개선이 이뤄져 제2의 검정고무신 사건이 발생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장수연 기자
*매절(買切) 계약: 출판사가 저작자에게 일정 금액만 지급하고 나면 향후 저작물 이용을 통해 얻는 수익을 모두 독점하는 계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