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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옛날 옛날에~” 이야기를 선물하는 할머니
서나연 ㅣ 기사 승인 2023-10-16 15  |  681호 ㅣ 조회수 : 483

 64세의 이순예씨(가명)는 일주일에 세 번, 이야기보따리를 등에 이고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할머니가 도착하자 아이들은 삼삼오오 원을 그리며 할머니 앞에 앉는다. 이순예씨는 목을 가다듬고 동화책의 첫 장을 넘긴다. 



“할머니, 나무꾼이 진짜로 감동 받았어요?”



수업을 마친 할머니를 쫓아오며 한 아이가 묻는다. 호기심으로 빛나는 아이의 순수한 눈은 아직 이야기에 푹 빠진 것 같다. 이야기 할머니 이순예씨는 다음 수업으로 재촉하던 발걸음을 돌려 친절하게 답한다.



“그럼~ 나무꾼이 진짜로 감동을 해서 어머니 무덤 옆에 호랑이를 묻어줬지~”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사업



 어릴 적 할머니의 무릎에 누워 듣던 옛날이야기, 이런 추억을 가진 사람이 많을 거다. 이런 옛 무릎 교육의 장점을 살린  ‘이야기 할머니’가 인기다.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사업’은 여성 어르신이 전국 유아교육 기관을 방문해 옛이야기와 선현 미담을 들려주는 사업이다. 2009년도에 대구·경북 지역에서 제1기 30명 선발로 시작해 현재 3,000여 명의 이야기 할머니가 8,600여 개 유아교육 기관에서 활동하고 있다. 



 모집 대상은 만 56~74세의 대한민국 국적의 여성이다. 평소 아이를 사랑하고 자원봉사에 관심이 있으면 누구든 지원할 수 있다. 다만 기초자치단체 중 선발 제외지역이 있기 때문에 공고문의 지역별 선발 현황을 확인하고 지원해야 한다.



 이야기 할머니가 되고 싶다면 이야기 할머니 사업단 누리집에서 선발 공고문을 확인 후 지원서를 작성해 우편 또는 온라인으로 접수하면 된다. 그 후 1차 서류심사와 이야기 구연 능력을 포함한 2차 면접 심사를 거치게 된다. 면접 심사에 합격한 예비 이야기 할머니들은 교육과정을 이수한 후 향후 5년간 거주 지역 인근의 유아교육 기관에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활동을 하게 된다.



이야기 할머니 

나경희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에서는 나경희씨의 얘기를 소개하고 있다. 나경희씨는 이야기 할머니다. 2019년 인천에서 옥천군 청산면으로 귀촌해 도시 생활을 마무리 후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을 찾던 중 인터넷을 통해 이야기 할머니를 알게 돼 곧바로 지원서를 제출했다.



 나경희씨는 “어렸을 적 어머니께 들었던 이야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에밀레종 이야기였다. 종을 만들기 위해 아기를 함께 넣었다는 이야기가 얼마나 무섭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이렇게 이야기를 들어도 봤고, 자녀에게 전해주기도 해 봤으니 그런 경험으로 다른 어린이들에게 좋은 기억을 남겨줄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어린이들이 두고두고 나의 이야기를 기억해준다는 그런 생각에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며 이야기 할머니를 지원하게 된 계기를 알렸다.



 이야기 할머니의 이야기는 한국국학진흥원 이야기 할머니 사업단에서 지정한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연간활동계획’에 따라 일주일마다 바뀐다. 그에 따라 매주 새로운 이야기를 준비해야 하는 셈이다. 5~7분 가량의 이야기를 모두 외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나경희씨는 암기를 포함한 준비 과정이 삶에 활력이 된다고 말한다. ‘이야기 준비를 하고, 한복을 차려입고, 거울을 한 번 들여다보는’ 것에서 이야기 할머니는 단순 일자리를 넘어 나를 돌보고 가꾸는 기분이라고 말이다.



아이들은 어디로 

튈지 몰라, 그래서 

‘스릴 있다’



 아이들은 한 살 차이에도 수업의 분위기가 천차만별이다. 자리를 잘 지키며 대답을 잘하는 어린이부터, 돌아다니거나 바닥에 눕는 어린이까지, 가만히 있으면 아이가 아니라고 하는 나경희씨는 집중력을 잃지 않고 이야기에 몰두한다. 엄마로서의 경험과 이야기 할머니 교육으로 얻은 노하우가 집중력을 잃은 아이들을 다시 집중하게 만드는 데 그 역할을 톡톡히 발한다. 나경희씨는 “성인도 가만히 앉아 있으려면 힘든데, 아이들은 어떻겠는가. 아이들은 떠들어야 건강한 거다. 아프면 말이 없다. 그렇게 알고 생각하니 아이들이 떠들거나 집중력이 흐트러져도 ‘너희들이 건강하구나’ 싶더라. 또 질문에 대답하는 걸 보면 안 듣는 것 같아도 다 듣고 있다”며 아이들을 이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집중해 듣는 어린이를 위해 조용히 하자는 주문을 하거나 말소리를 크고 작게 조절하며 이목을 끄는 요령을 보이기도 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어린이의 특성은 나경희씨를 더 ‘스릴 있게’ 만든다.



 “종종 예상과 다른 대답을 하기도 하니 ‘이 질문에는 어떤 답이 나올까?’를 생각하면 긴장되기도, 기대되기도 한다. 이런 기분은 저를 ‘살아있다’고 느끼게 만든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이, 또 정기적으로 아이들을 만난다는 것이 그 자체로 기쁨이다.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러 왔지만, 제가 오히려 기운을 받아서 간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지금도 나경희씨를 비롯한 전국 3,100여 명 이야기 할머니의 이야기 보따리에서 “옛날 옛날에~” 소리는 어린이의 가슴 깊이 물감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산업화 이후 우리나라 가족 형태는 대부분 핵가족화가 됐다. 독거노인이 늘어가는 와중에 기술의 발전은 점점 가속화되고, 예전과 전혀 다른 디지털 시대가 펼쳐지면서 노인은 소외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쌓여버린 세대 간의 벽은 허물 수도, 뛰어넘을 수도 없을 만큼 높아져 버렸다. 세대 간의 벽이 낳은 서로의 오해와 편차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악순환을 반복한다. 이런 세대의 격차를 타파하려는 움직임일 수도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가 어린이에게 전하는 이야기는 그저 ‘이야기’뿐만이 아니다. 어린이에게 따스한 추억을 남겨 주는 하나의 기억이다. 이야기 할머니의 이야기는 어린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앞으로도 오래 울려 퍼질 것이다.



서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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