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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서있는 사람들, 경계성 지능인
서나연, 조예진 ㅣ 기사 승인 2024-01-08 16  |  684호 ㅣ 조회수 : 951

이승연(가명·28)씨는 어렸을 때 또래보다 말문이 늦게 트여 여느 사람과는 다른 시선을 받아왔다. 유치원에 가서는 한글을 배우는 게 또래보다 오래 걸렸고, 친구와도 잘 어울리지 못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고는 또래보다 학습 능력이 떨어지고, 말투가 어눌해 발표를 하는 일조차 어려움을 겪어 선생님께 자주 혼나며 친구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중·고등학교에 가서도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이승연씨는 우울 증세와 강박 행동을 보였으며, 집중력이 좋지 못해 혼자 공부하기도 어려워 성적도 좋게 나오지 못했다. 어렵게 대학에 들어갔지만 대학 수업에 따라가지 못해 학교를 1년도 다니지 못한 채 그만두게 됐다.



이승연씨는 경계성 지능인이다. 경계성 지능이란 지능지수(IQ) 71~84 사이로, 지적장애인과 비 지적장애인 사이의 경계로 분류되는 상태를 말한다. 지적장애인은 아니지만 지능이 평균보다 낮아 또래에 비해 정신연령이 더 낮고 학습능력, 어휘력, 이해력, 인지능력, 대인관계 등에 어려움을 겪는다. 또한 지식습득에도 또래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다. 어릴 때 발견해 체계적으로 지능계발을 하며 나아질 수 있지만, 남들보다 조금 둔한 정도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발견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경계성 지능의 인지도 또한 굉장히 낮기 때문에 적절한 시기를 놓쳐 방치되는 경우가 많고, 치료를 받지 못해 성장 과정이나 사회생활에서 많은 문제를 겪을 수 있다.



게다가 경계성 지능은 한국에서 장애와 질병에 속하지 않는다. 이들은 ‘장애정도판정기준’의 지적장애 기준(지능지수 70 이하)에 해당되지 않아 장애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 탓에 장애인복지법에 의한 지원을 따로 받을 수 없다. 하지만 평균 지능(85~115)에는 미치지 못해 학교나 사회에서 많은 차별과 불이익을 받으며 살고 있다. 한국에서는 법적으로 장애인 등록이 불가능해 비장애인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경계성 지능인은 미등록 자폐인과 비슷하게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정부 지원의 필요성





통계에 따르면 국내 경계성 지능인의 수는 약 7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공개한 ‘경계성 지능인 현황과 향후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IQ 정규분포도 상 경계성 지능에 해당하는 인구 비율은 13.6%였다. 이 수치를 인구수로 환산하면 약 699만명으로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경계성 지능인으로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겪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계성 지능인은 어렸을 때부터 학습능력과 언어능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따라서 언어치료와 인지치료를 진행하거나, 1대1 수업으로 학습치료를 하기도 한다. 조기에 치료를 시작할수록 아이가 사회인으로 자립할 가능성도 커진다.



그렇지만 문제는 경계성 지능을 알 수 있는 명확한 증상이 없다는 것이다. 지적장애는 언어력, 기억력 등 모든 인지 기능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지만 경계성 지능은 모든 인지기능이 조금씩 감소하거나 하나만 크게 감소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피아노는 잘 치지만 기타는 못 치는 사람을 두고 악기를 잘못 다룬다고 보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약 700만 명이라는 상당한 수의 인구가 경계성 지능인에 속할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경계성 지능인들과 그들 가족이 겪는 다양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법적 보호와 지원이 필요하다. 이에 2023년 4월, 국회에서는 경계성 지능인 지원에 대한 첫 법제화 시도로 ‘경계성지능인을 위한 법률’이 발의됐고 같은 해 6월 ‘경계성지능인을 위한 평생교육 법안’이 발의됐다. 해당 법안에서는 현재 정돈되지 않은 채 사용하고 있는 경계성 지능인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하고, 이들에 대한 실태조사를 통해 실상을 파악해 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했다. 법안은 경계성 지능인의 생애주기별 특성과 수요에 따른 지원 근거를 마련해 경계성 지능인 지원센터를 통한 통합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평생교육을 통해 경계성 지능인의 원활한 자립 및 사회참여를 지원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발의됐다.



그러나 해당 법안들은 아직까지 제정되지 않고 입법과정에 머물러있는 상황이다. 경계성 지능인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 정책이 시행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명백한 장애가 아닌 특정 상태의 경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명확한 장애를 가지지 않은 이들을 독립된 정책 대상자로 봐야 할지, 발달장애의 범주에 포함시켜 지원해야 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발달장애와 정상의 경계선에 있기 때문에 적절한 지원이 주어진다면 충분히 당당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들의 주변 환경에 따라 정상 범주에 속할 정도로 향상 될 수도 있고, 장애 수준으로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복지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다. 누구보다 적극적인 지원책이 필요한 이들이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사각지대에 놓인

경계성 지능인



실제로 우리나라의 경계성 지능인이 정확히 몇 명인지, 그들이 어떤 상태인지 정확한 실태 파악조차 되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관련 법 규정도 없어 적절한 지원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장애 등급을 받지 않은 경계성 지능인의 경우, 교육지원은 물론 취업지원 같은 혜택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병역과 관련해서도 장애인이 아닌 정상인들과 같은 기준을 적용받는다. 특히 경계성 지능 아동에 대한 교육지원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다. 경계성 지능을 가진 학생들은 전국적으로 80만명으로 한 학급당 2∼3명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들은 특수교육서비스와 일반교육 사이에서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학교에서 소외받는 경계성 지능아동 중 소수만이 지역사회의 종합사회복지관이나 장애인복지관에서 단기간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정도다. 이에 경계성 지능 아동을 키우는 부모들은 검사기관, 검사 당시 검사자의 컨디션 등 변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지능검사의 특성을 이용해 아동에게 문제를 틀리게 풀라고 지시하기도 하며, 수치를 낮게 판정하는 병원을 찾아가기도 한다. 일부러라도 장애 판정을 받는 이유는 장애 등급이 있어야 다양한 치료혜택을 받을 수 있고, 법으로 보호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경계성 지능인에 대한 지원이 많이 이뤄지지 않고있고, 그들을 위한 다양한 의료, 경제, 교육적 지원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다.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시점



아직 국회의 법안은 제정되지 않았지만 지방자치단체 및 관련 부서와 단체에서는 경계성 지능인에게 지원책을 제공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먼저 전국 곳곳의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련 조례가 제정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충북 도의회에서 경계성 지능인을 위한 지원조례가 통과됐다. 전국의 17개 시도 중 14번째로 경계성 지능인을 위한 조례가 제정된 것이다. 또한 이 조례의 내용은 단순히 평생교육에 대한 내용을 넘어 포괄적인 지원을 담고 있다. 조례에서는 경계성 지능인에 대한 시책을 도지사의 책무로 규정해 현황파악·진단·치료·교육·취업 등 종합적인 지원을 하고, 맞춤식 서비스 제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까지 제정된 14개 시도의 조례 중 이런 포괄적인 지원을 규정한 시도는 충북을 포함해 총 네 곳 뿐이다. 이런 움직임은 비록 전국적인 효력을 갖지는 않지만, 관련 조례가 제정됨으로써 국회의 입법을 촉구하며 실질적인 지원을 위한 초석을 다진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시·도차원의 조례는 아직 불안정한 부분이 많아 앞으로 다양한 사회적 논의와 개정을 통해 보완해 나가야 한다.



경계성 지능 아동을 위한 교육지원의 확대도 필요하다. 현재 경계성 지능에 속한 아동이 마주한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시도가 이뤄지는 중이지만, 그 수요에 비해 수용 가능 인원은 턱없이 모자란 수준이다. 경계성 지능 아동이 일반 학교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운영 중인 대안학교가 있다. 그중 서울특별시 교육청 위탁 대안학교로 운영되고 있는 도봉구립 예하예술학교는 경계성 지능 아동만을 위한 전문기관이다. 이런 경계성 지능 아동 전문기관은 전국에 몇 군데 없기 때문에 대안학교에 입학하기도 쉽지 않다. 또한 대안학교들도 주로 공익사단법인에 의해 운영되고, 학력을 인정받지 못해 따로 검정고시를 통해 학력을 취득해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국의 경계성

지능인 지원책



독일의 경우 경계성 지능인을 위해 다양한 기관을 운영 중이다. 경계성 지능 청년의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돈보스코’는 독일 전역에 여러 개의 기관이 위치한다. 이 교육기관은 공립학교에 적응하기 어려운 학생을 대상으로 하며, 베를린 돈보스코의 경우 독일 정부로부터 인가를 받아 베를린 청소년청과 고용노동지원센터, 돈보스코 재단으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아 무상으로 운영된다. 또한 학생들의 교육과 치료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다른 기관과의 유기적인 연계도 이뤄지고 있어 실질적인 자립에 도움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더 이상 국가의 지원을 받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아닌 국가 지원시스템을 전제로 한 홀로서기를 추구하는 독일의 복지정책은 체계적인 지원시스템을 기반으로 경계성 지능인들에게 안정적인 지원과 유동적인 후속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경계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나



경계성 지능인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경계성 지능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며, 정부의 지원도 다른 나라에 비해 열악한 상황이다. 여전히 사각지대에서 생활하고 있는 경계성 지능인들은 사람들의 차별과 턱없이 부족한 복지에 더더욱 사각지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경계성 지능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정부는 경계성 지능인이 사각지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더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서나연 기자

조예진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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