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반도체 강국 대한민국, 시스템 반도체는 약세
국내 반도체 전문가들의 경고
우리나라는 반도체 강국으로서 대한민국 수출의 약 20%를 반도체 산업이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반도체 강국이라고 하지만 국내 반도체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을 위기로 진단한다. 2022년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반도체 전문가 30명을 대상으로 반도체 산업 경기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6.7%가 현재 상황을 위기로 진단했다. 이 중 58.6%가 이 상황이 2024년 이후에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반도체 강국 대한민국에 대해 왜 반도체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위기라고 이야기하는지,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현 주소는 어떻게 되고 앞으로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찰해보기 위해서는 반도체 산업이 전반적으로 어떤 구조로 돼 있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반도체
반도체는 크게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반도체로 나뉜다. 메모리 반도체는 정보를 저장하고 저장된 정보를 읽는 데 특화된 반도체다. 메모리 반도체에는 크게 휘발성 메모리인 RAM과 비휘발성 메모리인 ROM으로 나뉜다. RAM은 ‘Random Access Memory’의 약자로 CPU가 연산에 필요한 정보를 저장해 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메모리이다. RAM에는 캐시메모리에 사용되는 SRAM(Static RAM)과 주메모리에 사용되는 DRAM(Dynamic RAM)으로 나뉜다. ROM은 ‘Read Only Memory’의 약자로 RAM을 보조하는 동시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역할을 한다. 과거에는 천공테이프와 자기테이프, 그리고 하드디스크(HDD : Hard Disk Drive)를 ROM으로 사용했으나, 요즘에는 SSD(Solid-State-Drive)가 주로 활용된다. SSD에 들어가는 반도체가 바로 플래시 메모리고, 플래시 메모리에는 NAND flash와 NOR flash가 있다.
시스템 반도체는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정보 처리를 목적으로 제작되는 반도체다. 시스템 반도체는 각 반도체마다 특화된 영역이 있어 그 쓰임에 따라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CPU(Central Processing Unit)는 제어 유닛(Control Unit), 산술 논리 유닛(ALU : Arithmetic Logic Unit), 그리고 아주 작은 용량의 메모리 유닛(레지스터, 캐시메모리)이 긴밀하게 소통해 정보를 처리하는 기능을 하는 장치이다. 이 장치를 하나의 시스템 반도체로 원칩화한 것이 MPU(Micro Pro cessor Unit)이고 주로 컴퓨터에 탑재된다. 인텔의 코어 제품이 이에 해당한다. 컴퓨터가 아닌 특정 전자제품(냉장고, 세탁기, 밥솥, 자동차 등)에서의 정보처리를 위해서는 MPU보다 다소 낮은 성능의 CPU가 탑재된 MCU(Micro Controller Unit)가 탑재된다. 이외에도 그래픽 연산에 최적화된 GPU(Graphic Processing Unit), AI연산에 최적화된 NPU(Neural Processing Unit), 특화된 기능을 수행해 하드웨어를 가속하는 ASIC(Appli cation-Specific Integrated Circuit)과 FPGA(Field Programmable Gate Array), 디지털 신호 처리에 특화된 DSP(Digital Signal Processor), 연산된 디지털 신호의 화면 정보를 아날로그 신호로 전환해주는 DDI(Display Driving Integrated Circuit),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돕는 PMIC (Power Management Integrated Circuit) 등 시스템 반도체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메모리 반도체의 종류를 정리해보면 SRAM, DRAM, NAND flash, NOR flash 등이고, 시스템 반도체의 종류를 정리해보면 MPU, MCU, GPU, NPU, ASIC, FPGA, DSP, DDI, PMIC 등이다. 메모리 반도체에 비해 시스템 반도체가의 종류가 월등히 많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메모리 반도체 산업과 시스템 반도체 산업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도출된다. 메모리 반도체는 규격화돼 있는 몇 종류만으로 수많은 수요처에 대응하는 소품종 대량생산의 성격을 띠고, 시스템 반도체는 수요처에 따라 특별히 설계되는 수많은 종류의 반도체를 필요할 때마다 생산하는 다품종 소량생산의 성격을 띤다. 그러다 보니 메모리 반도체는 시스템 반도체에 비해 가격 변동성에 매우 민감하다.
반도체 생산의 분업 체제
반도체는 설계, 제조, 테스트 및 패키지, 유통 및 판매의 네 단계의 분업 체제로 이루어져 있다. 이 네 단계를 한 번에 진행하는 기업을 종합 반도체 기업(IDM : 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이라고 한다. 설계와 생산이 비교적 단순한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이 주로 IDM의 형태를 띤다. 대표적인 기업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다.
시스템 반도체는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수요처에 따라 맞춤형으로 제작돼야 하기에 시스템 반도체 생산에 대해서 IDM의 형태를 띠기는 어렵다. 그래서 각 단계별로 특화된 기업들이 존재한다. 설계 단계에 특화된 기업은 IP기업, 팹리스 기업이고, 제조 단계와 테스트 및 패키지 단계에 특화된 기업은 파운드리 기업이고, 테스트 및 패키지 단계에만 특화된 기업은 OSAT(Outsourced Semiconductor Assembly and Test)이고, 팹리스 기업과 파운드리 기업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하는 기업은 디자인 하우스이며, 유통 및 판매는 팹리스 기업에서 담당해 자신들의 브랜드를 붙여 판매한다. 이 중 팹리스 기업과 파운드리 기업이 시스템 반도체 산업에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팹리스 기업에는 대표적으로 인텔과 AMD, 퀄컴, 애플이, 파운드리 기업에는 대표적으로 TSMC와 삼성전자가 있다.
시스템 반도체는 부진한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현주소
우리나라가 반도체 강국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문제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만 강하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현 주소를 진단하고 앞으로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전문적인 자문을 구하고자 현재 우리대학 전기정보공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인 김현 교수(이하 김 교수)를 인터뷰했다. 2018년부터 우리대학에 재직 중인 김 교수는 영상 처리와 관련된 반도체 설계 연구로 박사 과정을 지냈고, 서울대학교 BK 사업단에서 연구 교수로 지내면서 인공지능 반도체 연구를 시작해 현재 지능형 디지털 시스템 설계 연구소(IDSL)를 운영하고 있다. 이외 반도체와 관련한 다양한 국가 정책이나 국가 과제를 기획 및 심사하고, 대한전자공학회 상임이사 및 반도체공학회 총무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있어 다양한 반도체 관련된 교육이나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김 교수는 인터뷰에서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우리나라의 시장 점유율은 70%를 넘어가지만, 시스템 반도체에 대한 시장 점유율은 약 3%에 그친다”며 메모리 반도체에서는 우위를 점하지만 시스템 반도체에 대해서는 부진한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현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실제로 시스템 반도체 시장은 대부분 인텔이나 AMD, 퀄컴, 애플 등 미국 반도체 기업이 점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한참 전부터 시스템 반도체 제작에 투자하고 몰두한 기업들과의 갭을 따라잡기 힘들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이런 시스템 반도체를 설계하는 팹리스 기업들이 많지 않고 이에 대한 인력도 부족한 상태”라고 했다.
파운드리 산업에서도 우리나라는 밀리고 있다. 2023년 1분기 기준 시장 점유율은 대만의 TSMC가 59%, 삼성전자가 13%로 한참 뒤쳐진 상황이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파운드리 또한 기존에 설비 투자에 집중하고 몰두한 기업에 대한 갭을 따라잡기 어렵다”고 했고 이에 덧붙여 “고객사(팹리스 기업)는 경쟁사(파운드리 기업)에 반도체 제작을 맡기지 않는다. 삼성은 많은 팹리스 기업의 경쟁사이기에 이 기업들은 경쟁사인 삼성전자가 아닌, 반도체 제작에만 집중하는 TSMC를 통해 반도체를 제작한다. 이에 따라 TSMC는 파운드리 산업에서 더욱 발전할 수 있었다”고 했다.
팹리스 기업의 상호 발전과 컴파일러 개발에 힘써야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메모리 반도체에 집중돼 있고, 계속되는 AI 개발에 따른 시스템 반도체의 중요성이 점점 더 확대됨에 따라 우리나라도 이에 대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 김 교수는 “시스템 반도체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팹리스 기업에 대한 성장이 선행돼야 한다. 팹리스 기업은 특정 대기업이 다른 기업들을 흡수해 독주하거나, 여러 팹리스 기업이 개인플레이를 해서는 잘 될 수 없고, 여러 팹리스 기업들이 힘을 합쳐 중견 기업 형태로 가는 식으로 확장돼야 한다”며 “기업에게 베네핏을 주는 정부의 정책으로 정부와 기업간의 유기적인 관계를 통해 대기업이 여러 팹리스 기업들을 도와주고 함께 성장해 대기업 쏠림 현상을 방지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덧붙여 김 교수는 “반도체에서 컴파일러의 중요성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며 반도체 칩뿐만 아니라 컴파일러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컴파일러는 컴퓨터 언어로 프로그래밍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반도체 칩이 인식할 수 있는 기계어로 바꿔주는 중간 다리 역할을 한다. 김 교수는 “아무리 좋은 성능의 새로운 반도체 칩이 나와도 컴파일러가 이를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현재 다양한 인공지능 모델이 쏟아지고 있고, 개발되는 언어가 다양해져서 이들을 하드웨어에 매핑해주는 컴파일러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이 컴파일러 개발에 대한 인재가 부족하고 이에 대한 인재 양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뛰어난 기술력으로 얻어낸 메모리 반도체 강국이라는 타이틀은 자랑스럽게 여길 만하지만, 가격 변동성에 민감한 메모리 반도체에서만 강하고 시스템 반도체에 부진한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가격 변동의 사이클에만 의지하고 있는 위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반도체 산업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도체 강국이라는 타이틀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더욱 확장되는 AI 분야에 따른 시스템 반도체의 수요 증가에 맞춰 이에 대한 인재 양성과 기업 경쟁력 강화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박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