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O과목 교재 PDF 있으신 분?’
우리대학 어느 학과 오픈채팅방에서 시작된 하나의 요청.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학생이 해당 과목 교재의 PDF 파일을 오픈채팅방에 업로드한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고 이 학생은 ‘이왕 이렇게 올린 거 다른 과목도 다 올릴게요’라며 다른 과목 교재의 PDF 파일도 올리기 시작한다. 그러자 하나둘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PDF 공유 불법인 거 아시죠? 걸리면 큰일 납니다’, ‘내리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등, 불법의 현장을 눈앞에서 지켜본 학우들은 이 상황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이후 PDF를 공유했던 해당 학생은 ‘다음에 내리도록 하겠습니다’며 상황을 마무리 짓나 싶었지만 해당 파일은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업로드된 상태이다.
위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대학 교재의 PDF 공유가 심각한 상황이다. 더불어 태블릿, 노트북 등을 통해 PDF 소지가 더욱 편리해진 최근, 이러한 PDF 공유는 대학 내에서 더더욱 성행하고 있다. 5월 17일(금)부터 5월 20일(월)까지 우리대학 학우 2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대학교재 PDF 파일을 공유하거나 받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17명의 학생이 ‘있다’(63%), 10명의 학생이 ‘없다’(37%)고 응답했다. ‘있다’라고 응답한 학생들의 PDF 파일 공유 경로는 친구나 선배, 지인이 제일 많았고(12명), 카카오톡 채팅방(2명), 인터넷 검색 및 대학 커뮤니티(1명), 불법복사(1명)가 그 뒤를 이었다. 심지어는 ‘교수님께서 알아서 돈 쓰지 말고 PDF 구하라고 권유함’(1명)이라는 응답도 있었다.
출판사에서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행동에 나서고 있다. 우리대학에서 사용하는 교재인 『줌달의 일반화학』 번역서와 『스튜어트 미분적분학』 번역서 출판회사인 센게이지러닝코리아(주)(이하 센게이지러닝코리아)에서는 작년 한해동안 불법 PDF 교재 단속활동을 펼쳐 저작권법을 위반한 대학생 47명을 적발해 그 중 37명을 형사고소했고, 2024년 올해는 불법 PDF 근절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전개해 대학생들의 주의를 촉구하는 예방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이러한 대학교 내 불법 PDF 공유 활성화로 인해 출판사 업계의 피해는 상당하다. 센게이지러닝코리아 측은 “불법 PDF 교재는 센게이지러닝코리아뿐만 아니라 수많은 대학 교재 출판사 및 협력업체 종사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심각한 범죄행위”라며 “폐쇄된 온라인 공간에서 은밀히 거래되고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어 피해 규모를 정확하게 집계하는 데 한계가 있지만, 불법 PDF 공유가 관련 대학교재 출판사의 교재 판매량이 매년 5~10% 꾸준히 감소하는 주원인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불법임을 알지만… “다들 하니까”
이러한 교재 PDF 공유는 저작권법 제30조(사적이용을 위한 복제)에 위반되는 엄연한 위법행위로, 저작권법 제136조에 따라 “저작권법 위반 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거나 이를 병과(倂科)*”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저작권법 제30조에서 관련 법적 기준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공표된 저작물을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아니하고 개인적으로 이용하거나 가정 및 이에 준하는 한정된 범위 안에서 이용하는 경우에는 그 이용자는 이를 복제할 수 있다. 다만, 공중의 사용에 제공하기 위하여 설치된 복사기기, 스캐너, 사진기 등 문화체육관광부령으로 정하는 복제기기에 의한 복제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명시한다.
즉, 구매 및 판매가 아닌 개인의 사적 이용을 위해 저작물을 복제하는 경우에는 저작물의 PDF 파일 복제가 가능하다. 물론 여기서 허용하는 ‘사적 이용을 위한 복제’는 정당한 대가를 주고 구매한 실물 저작물을 사적 이용을 위해 복제한 경우에 한해서다.
또한 사적 이용을 위한 복제라도 불특정 다수가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복제하는 것은 불법에 해당한다. ‘공중의 사용을 위해 설치된 복사기기, 스캐너, 사진기’ 등의 장비를 이용한 복제는 배포를 하지 않아도 저작권 침해에 해당한다.
따라서 앞선 사례와 같이 교재 PDF 파일을 공유하는 행위는 사적 범위를 벗어나므로 명백한 불법이다. 또한 해당 파일을 다운로드하는 행위 역시 충분히 불법의 소지가 있다. 아직 교재 PDF 구매 및 다운로드와 관련해서 명확한 판례는 없지만, 유사한 사례인 영화, 음악 등의 불법 복제 파일의 경우, 이를 다운로드 한 행위 역시 적법하지 않다는 판결이 내려진 판례를 다수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본지의 설문조사에서 ‘PDF 파일 공유가 불법인 것을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24명의 학생이 ‘예’(88.9%), 3명의 학생이 ‘아니오’(11.1%)라고 응답했다. 학생들은 대학교재 PDF 파일 공유가 불법이라는 사실을 대부분 인지하고 있었다. 즉, 알면서도 불법으로 PDF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대학에 재학 중인 4학년 이씨(22)는 교재 PDF 파일 공유에 관해서 “대학 교재들이 기본적으로 3만원을 넘어가다 보니, 돈을 아끼겠다는 생각에 교재 PDF 파일을 공유하거나 받은 적이 있다”며, “불법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근데 다들 하니까 잘못됐다는 생각을 크게 하지 않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이로 인해 처벌받은 사례를 주변에서 들은 적도 없고, 그래서 위협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선배나 동기들도 모두 PDF를 쓰라고 권유한다. 교수님들도 학생들이 떡하니 PDF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있고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재를 가한 적은 딱히 없었다”고 전했다. 교재 PDF 이용이 대학 내에서 너무나 흔한 일이며, 학내에선 이에 대한 제재가 전무한 상황이었다. 오히려 불법 PDF 사용을 방관, 또는 권유하는 분위기였다.
센게이지러닝코리아 측은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폐쇄형 대학생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 내에서 거래되는 불법 PDF 공유 신고를 접수하고 직접 사실관계를 파악한 결과 실제로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고 판단해 형사고소와 불법 PDF 근절 캠페인 등 조치를 취한 바 있다.
그런데도 현재 불법 PDF 이용에 관한 정부 차원의 대응은 미비한 상황이다. 정부의 대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말에 센게이지러닝코리아 측은 “작년 (사)한국출판인회의 회원사가 모여 불법 PDF 교재에 대한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는 집회를 가졌고, 올해는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주요 일간지에 공익광고를 게재하는 등 일련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현재까지 정부의 대응은 전무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동시에 “단속하고 적발하며 처벌하는 것은 차선책이므로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고 말하며 저작권법 위반에 대한 처벌 제도만으로는 현 상황을 해결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최선은 저작권에 대한 일반 대중(학생 포함)의 의식 선진화다. 이런 역할을 해야 할 정부와 유관기관이 먼저 불법 저작물에 대한 진지한 문제의식을 갖는다면 관련 대책은 어렵지 않게 수립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와 대중의 불법 저작물 인식 변화를 촉구했다.
일부 학생들, “책값 너무 비싸”
본지의 설문조사 결과, 교재 PDF 파일 공유 제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74.1%(20명)가 ‘그렇다’에 답했고 나머지 25.9%(7명)가 ‘아니다’에 답했다. 제재가 필요 없다고 응답한 이에게 이유를 묻자, “교재가 너무 비싸다”라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센게이지러닝코리아 측은 교재가 비싸다는 의견에 관해선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대학교재 가격이 한국보다 4~5배 비싼 미국에서는 교재구입비용에 부담을 느낀 학생들 사이에서 일찍이 중고 교재 거래가 활성화됐다. 최근에는 출판사가 저렴한 e-book 구독 서비스를 선보이는 등 학생들의 교재구입비용을 줄이면서도 출판생태계를 보호하는 상생의 길을 찾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서 “반면 한국은 국제적 관점에서 볼 때 소득수준 대비 교재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음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째 불법 복사본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교재가격보다는 여전히 저작권에 대한 대중의 의식이나 평가가 낮은 게 문제의 원인이라고 보는 편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결국 비싼 교잿값에 관해서는 충분히 대안이 있음에도, 대중의 저작권 의식이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씨는 학내 불법 PDF 이용 제재에 관해 “문제 인식이 중요한 것 같다”며 “학교 차원에서 주기적으로 공문을 내리는 것도 한 방법인 것 같다. e-class 공지 역시 도움이 될 듯하다”며 학교 측 제재의 필요성을 말했다.
출판 업계는 생존권 달린 문제
인터뷰를 마치며, 센게이지러닝코리아 측은 “일부 학생들이 불법 PDF 교재를 팔고 사면서 손쉽게 용돈을 벌고, 교재 구입 비용을 아끼는 사이 해당 교재를 개발하고 제작한 출판사는 막대한 투자를 하고도 교재를 판매하지 못해 결국 비용 회수는커녕 막대한 재고만 떠안는 악순환이 매 학기 반복되고 있다. 실제 이러한 이유로 최근 업계의 정상권 출판사가 폐업을 결정하는 충격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며 불법 PDF로 출판 업계의 피해 상황이 심각함을 호소했다.
센게이지러닝코리아는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이와 같은 일부 몰지각한 학생들의 불법행위가 교내 출판 생태계 자체를 파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아가 대학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중대한 결과로 이어져 결국 모든 학생에게 피해를 입힌다는 점이다”며, “다행스럽게도 에브리타임 내 불법 PDF 단속 관련 댓글을 모니터링한 결과 상당수의 학생들은 불법 PDF 교재 판매가 저작권법 위반 등의 형사 범죄임을 깨닫는 기회로 삼고 스스로 자정을 촉구하는 등 수준 높은 의식을 보여주고 있어 그나마 안도하고 있다. 센게이지러닝코리아는 당분간 불법 PDF 근절 캠페인을 지속할 예정이며 불법행위에 단호히 대처할 방침이다”고 말하며 앞으로도 학우들의 저작권 인식 제고를 위해 노력할 것임을 선언했다.
여전히 대학 내에선 “다들 하기 때문에”, “책값이 비싸서”, “편하니까”라는 이유로 더더욱 불법 PDF 공유가 성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가볍게 행했던 행위들 때문에 출판사들은 앞으로의 업계 생존까지도 위협받는 불안한 상황에 처해있다. 교재 PDF 공유는 엄연한 불법 행위다. 교재 비용, 정부의 처벌을 탓하기 이전에 학우들의 인식 제고가 가장 우선시돼야 한다.
*병과(倂科)하다: 동시에 둘 이상의 형벌에 처하다. 자유형(징역·금고·구류 등)과 벌금형을 아울러 처하는 일 따위이다.
장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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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율 기자
yulpark@seoultech.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