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적으로 보이스피싱의 피해자는 디지털 취약계층인 노년층에 집중된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등장한 신종 보이스피싱 수법의 주 피해자는 2~30대 청년층으로 기존 보이스피싱 피해와는 수법과 접근 방식, 노리는 대상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이에 본지는 대학생과 사회초년생의 전 재산을 노리는 신종 보이스피싱 수법 ‘셀프 감금’과 청년들의 피해를 취재했다.
늘어나는 청년 피해자
지난 8월 31일(일) 경찰청이 언론에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7월 피싱 범죄 발생 건수는 총 1만 6,561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 늘어난 수치를 보였다. 피해금액 역시 7,992억원으로 동일 기간 기준 역대 최고 피해액을 기록했다.
피해 규모의 확대와 함께 두드러지는 것은 청년 피해자의 증가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제공한 ‘보이스피싱 피해자 연령대별 현황’에 따르면 기관사칭형 보이스피싱의 2~30대 청년층 피해 비율이 전체의 절반을 넘는 52%를 기록했다. 20대 이하 피해자의 24년 상반기 대비 25년 상반기 증가율은 15.6%, 30대 피해자의 증가율은 무려 93.3%로 청년들이 보이스피싱 피해에서 결코 안전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디지털 범죄는 점점 더 피해자에게 특화된 접근으로 발전하고 있다. 과거의 보이스피싱이 불특정 다수에게 무차별적으로 전화를 돌려 ‘미끼를 문’ 소수의 피해자를 노렸다면, 지금은 개인의 신상을 먼저 파악한 뒤 습득한 정보를 토대로 치밀하게 접근한다. 기존 수법에 익숙해진 청년들이 나날이 변화하는 피싱범의 수법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신종 수법 ‘셀프 감금’
기관사칭형 범죄에서 새롭게 등장한 수법이 바로 ‘셀프 감금’이다. 사례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셀프 감금’ 수법의 진행은 보통 다음과 같다. 피싱범이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을 수사관 또는 검사라고 사칭한 뒤, 범죄에 연루됐으니 수사에 적극 협조하라고 지시한다. 이때 피해자가 의심하면 수사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고 협박해 심리적으로 억압한다. 피해자가 원래 소지하고 있던 휴대폰은 수사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으니 자신들이 지급하는 ‘안전폰’을 받아 사용하라고 전한다. 이때 ‘안전폰’은 악성 애플리케이션이 설치된 휴대폰으로 ▲수신번호 조작 ▲원격제어 ▲화면 감시 등이 가능해 피해자의 민감한 개인정보와 통장 및 계좌 관련 정보를 모두 빼돌릴 수 있다.
피싱범은 수사관과 검사, 금융감독원 직원 등을 사칭하며 각기 다른 조직원을 통해 피해자에게 반복적으로 전화를 걸어 심리적 지배를 가한다. 의심하던 피해자는 ‘혼나기 싫고 무섭다’는 생각으로 점차 그들의 지시에 순응하게 된다. 피해자의 심리를 지배하는 데 성공한 조직원은 마침내 물리적으로도 피해자를 고립시킨다. 원활한 수사를 빌미로 가족이나 친구, 직장동료와 접촉할 수 없도록 모텔 등의 숙박업소에 피해자를 가둔다. 지시를 받은 피해자는 스스로 숙박업소에 걸어 들어가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2~3주가량을 조직원 이외의 다른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고 고립된다. 이때 피해자는 짧은 외출에도 조직원의 허락을 구할 정도로 절대적인 의존 상태에 처한다. ‘범죄에 연루된 돈인지 확인하겠다’는 조직원의 말에 피해자는 긴 감금 기간에 걸쳐 자신의 전 재산을 모두 피싱범에게 송금하게 된다.
▲ 실제 피해자가 보이스피싱범과 나눈 텔레그램 대화 (출처=전북경찰청)
SNS에 잇따른 피해 후기
‘셀프 감금’의 사례가 대대적으로 보도된 후 SNS 상에는 유사한 피해를 겪었다는 후기가 쏟아졌다. 그들도 모두 사회초년생이었다는 점에서 ‘셀프 감금’ 수법의 대상이 더욱 분명해졌다. 서울 마포구에서는 상급종합병원 레지던트 A씨가, 대전에서는 20대 여성 B씨가 셀프 감금 이후 금전 피해 직전에 주변인의 제보를 받고 출동한 경찰의 도움으로 고립됐던 숙박업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해당 수법이 위험한 이유는 그 치밀함과 체계성에 있다. 다수의 조직원이 한 명의 피해자를 동시에 공략하기 때문에 피해자는 마치 실제로 경찰과 검찰, 금융감독원 직원을 상대하는 것 같은 위압감과 공포심을 느낀다. 다양한 피해 후기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조직의 체계적인 업무 분담과 치밀한 심리적 공략이다. 보이스피싱 조직의 수법은 피해자들의 예방법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신종 수법이 청년을 노리는 이유
셀프 감금 수법이 기존의 디지털 취약계층이 아니라 최신 기기와 비대면 송금 등의 금융 서비스를 능숙하게 다루는 청년층을 노리는 이유는 해당 수법의 특징과 연결된다. 피해자가 대포통장으로 직접 입금하는 방식이 아니라 ‘안전폰’과 가상화폐 구입 등의 방식을 사용하므로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고 온라인 금융 시스템 사용에 큰 어려움이 없는 청년들이 주된 범죄 대상이 되는 것이다.
해당 수법이 기존의 보이스피싱 수법과 가장 명확하게 구분되는 점은 앞서 언급했듯 피해자를 숙박업소에 고립시킨다는 점이다. 피해자들에게는 수사 내용이 새어나가면 안 된다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실종 신고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연락만 허용된다.
이 과정에서 조직원들이 다양한 국가 기관을 사칭, 피해자에게 지속적으로 전화를 걸어 현재 상황에 대한 이성적 판단을 불가능하게 한다. 특히 피해자와 가장 많이 소통하는 조직원이 피해자의 심리 지배를 전담한다. 그들은 피해자를 꾸짖어 위압감을 조성하고 가족이나 지인들의 연락에 시키는 대로 답할 것을 유도한다.
우리대학 재학생도 보이스피싱 피해 겪어…
실제 사례를 가까운 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우리대학 재학생 C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에 큰돈을 송금할 뻔 했으나 겨우 위기를 모면했다. C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를 사칭하는 전화를 받았다”고 전했다. 피싱범은 “최근 지갑을 잃어버린 C씨의 명의가 도용됐으며, 대포통장 개설에 연루돼 이를 수사하기 위해 현재 C씨가 가진 모든 계좌를 동결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피싱범은 당시 실제로 지갑을 잃어버렸던 C씨의 상황과 생년월일, 주소를 모두 알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C씨가 의심하자 피싱범은 “(본인의) 지시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즉시 소장이 발부될 수 있다”고 압박했다. 모든 계좌 내역을 전송받은 피싱범이 “다른 방법으로 소명할 기회를 주겠다”며 포털사이트에 문화상품권을 검색해 결제할 것을 유도했고, 이를 의심한 C씨가 전화를 끊으며 해당 사건은 미수로 끝났지만 1시간가량의 긴 통화 중 C씨의 계좌번호와 카드 CVC 번호가 모두 노출되는 피해가 있었다. C씨는 “평소에 보이스피싱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음에도 내 상황과 인적사항을 정확히 알고, 심리적인 압박까지 가하니 의심하기 어려웠다”며 기관사칭형 보이스피싱의 무서움을 강조했다.
▲ 경찰청에서 제공한 셀프 감금 실제 피해 사례
해당 수법 홍보하고 지속적으로 관심 가져야
경찰 관계자 D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청년 피해자 급증의 원인에 대해 묻자 “고령층의 피해는 고액 현금 인출이나 예·적금 해지 시 경찰에 신고를 요청하는 등 금융기관의 협조를 통한 보이스피싱 예방 사례가 많이 늘어나고 있지만, 청년층의 경우 금융기관 방문보다는 비대면 거래·대출을 통해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앞서 언급한 예방기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범죄 피해를 겪는 도중 가족이나 친구의 도움을 거절하는 심리적 요인에 대해서는 “실제 피해사례에서는 장시간에 걸쳐 ‘은행 직원도 범죄조직과 한 패’ 라거나 ‘비밀수사이므로 주변인에게 알리지 말 것’을 강조하는 등 주변에서 피해를 눈치 채더라도 범죄를 제지할 수 없도록 미리 주입하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는) 경찰이 출동해서 설득해도 자신이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기관사칭형 보이스피싱임을 확인하고 피해를 예방할 방법을 묻자 D씨는 “만약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해킹 애플리케이션이나 프로그램이 설치된 경우에는 112나 금융기관으로 전화를 걸어도 보이스피싱 조직 콜센터로 연결돼 더 큰 피해로 이어진다”며 “조금이라도 보이스피싱이 의심된다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 해킹 애플리케이션 등이 설치되지 않은 다른 휴대전화로 수사기관에 확인 전화를 하거나 직접 경찰서 또는 금융기관을 방문해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D씨는 “실제 검거한 범죄조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출빙자형 보이스피싱은 피해자를 속이기 쉽지만 범죄수익금이 많지 않고, 기관사칭형 보이스피싱은 피해자를 속이기 어렵지만 일단 한 명이라도 속이기만 하면 아주 높은 범죄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교육 받는다”고 전했다. 또한 “보이스피싱은 일부 개그 소재와 달리, 어눌한 말투로 당황하면서 전화를 걸어오지 않고 정교한 시나리오와 멘트로 피해자를 속인다”며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주의할 뿐만 아니라 늘 주위 사람들에 대한 관심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혜원 기자
dl0840@seoultech.ac.kr
김용하 수습기자
divine1251@seoultech.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