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15일(금)에 방영된 MBC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 11회가 역사 고증 오류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21세기 입헌군주제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한 해당 회차에서는 새 국왕의 즉위식 중 신하들이 일제히 “천세(千歲), 천세, 천천세”를 외치는 장면이 송출됐다. 이에 21세기 대한민국을 스스로 제후국으로 격하시킨 연출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시청자들의 항의는 구체적인 복식과 의례 오류로 이어졌다. 황제가 착용하는 십이류면관 대신 제후국 왕의 구류면관을 사용한 점, 국왕의 서거를 황제의 표현인 ‘붕어’가 아닌 제후국의 ‘홍서’로 처리한 점 등이 대표적이다.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는 “한국사를 중국 역사에 편입하려는 동북공정 논리에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며 시정 캠페인에 착수했다. 제작진은 이틀 만에 공식 사과문을 내고 재방송에서의 수정 조치에 나섰으나,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반복되는 역사 오류, 달라지지 않는 구조
드라마에서의 역사 왜곡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2021년 방영된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는 조선 왕실을 배경으로 하면서 중국풍 소품과 의상을 사용해 논란이 됐다. 극 중 월병·피단 등 중국 음식이 등장하는 등의 역사 고증 오류가 잇따라 지적됐으며, 태종과 충녕대군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역사 왜곡 비판까지 더해져 방영 2회 만에 폐지됐다.
역사 왜곡이 드라마 플롯 전반에 영향을 준 사례도 있다. 같은 해 방영된 JTBC 드라마 <설강화>는 5·18 민주화 운동에 북한 공작원을 결합한 설정이 논란의 핵심이었다. 방영 중단을 요구하는 국민 청원에 수십만 명이 서명했고 주요 광고주들이 잇따라 광고를 철수했지만, 드라마는 끝까지 방영됐으며 논란은 봉합되지 않은 채 마무리됐다.
세 사건의 구조는 닮았다. 방영 전에는 걸러지지 않고, 시청자의 항의 후에야 수정이 이뤄졌다. 역사 감수가 별도의 절차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공통된 배경이다. 현재 드라마 제작 과정에서 역사 자문은 선택 사항에 가깝다. 제작비 구조 또한 문제로 지목된다. 최태성 역사 강사는 개인 SNS 계정에서 해당 논란을 언급하며 “배우 출연료에는 수억원을 아낌없이 쓰면서 역사 고증 비용은 몇십만원 수준으로 퉁치려 한다”고 지적했다.

▲ 논란이 된 MBC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 즉위식 장면(출처=MBC)
“K-콘텐츠도 철저한 조사와 고증이 동반돼야”
전문가들은 이번 논란을 의도적 왜곡보다 역사적 맥락에 대한 무감각의 결과로 본다. 갑오개혁으로 청나라와의 종속 관계를 끊고, 고종이 황제를 선포하며 대한제국을 세운 역사가 창작 현장에서 충분히 내면화되지 않은 채 가상 세계관 설정 속으로 흘러내린 결과라는 것이다.
우리대학 김성수 교양대학 교수는 이번 논란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중국의 황제에 대해서는 만세, 고려나 조선의 왕에 대해서는 천세라는 구호를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갑오개혁 이후 조선이 청나라와의 종속 관계를 끊고 대한제국을 선포한 것은 청과 조선이 외교적으로 동등한 관계라는 점을 대내외적으로 선포한 사건”이라며 강조했다.
역사적 사실 변형의 허용 가능한 범위에 대해 김 교수는 사회적 합의를 기준으로 제시했다. “우리 공동체는 역사 사실과 그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며 형성된다”며 “역사 사실이 공동체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고 평가해 사회적 합의를 마련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소통의 결과물이라면 우리 사회가 수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설강화>와 같이 역사적 사건의 성격 자체를 바꾸는 설정이 논란이 된 것은 그러한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만들어진 콘텐츠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창작 현장의 역할에 대해서 “창작자가 역사 연구자가 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창작물이 독자와 관객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철저한 조사와 적절한 수준의 고증이 동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역사학을 비롯한 인문과학, 예술 창작 등 다양한 분야의 성장이 K-콘텐츠 산업의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디즈니플러스 자체 집계에서는 전 세계 최다 시청 로컬 오리지널 콘텐츠 상위 15개 중 9개가 한국 작품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 위상이 수치로 확인되는 만큼, 그 안에 담긴 역사 인식의 문제는 단순한 제작 실수로 처리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이를 바로잡는 수단은 여전히 시청자의 항의에 기대고 있다. <21세기 대군부인>의 경우 국내 재방송분과 해외 OTT 플랫폼 모두에서 수정이 이뤄졌지만, 논란이 확산된 뒤 수습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21세기 대군부인>에 제작비를 지원했던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이번 논란 직후 “제작지원 신청·선정 단계부터 자문 및 고증 계획 제출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약 6만 명의 동의를 얻은 국민청원이 국회에 회부됐고, 방송통신위원회는 지원금 환수 여부를 검토 중이다.
해외에서도 이를 법령으로 강제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다만 일본 공영방송 NHK의 대하드라마는 역사학자, 복식·건축·예법 전문가를 제작팀에 포함하고 박물관 소장 유물 데이터를 의상과 세트 고증에 직접 활용하는 것이 오랜 제작 관행으로 자리잡혀 있다. 영국 공영방송 BBC 역시 시대극 제작 시 역사 자문가가 대본 작성 단계부터 참여해 의상·세트·예법·대사까지 전반을 검토하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관행이 자리 잡히지 않은 한국에는 인위적인 절차 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K-콘텐츠가 글로벌 소프트파워의 역할을 하는 지금, 그 안의 역사 인식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는 콘텐츠 산업 전체의 구조적 과제로 부상했다. 이번 논란이 촉발한 국민청원과 지원금 환수 검토는 이미 그 논의가 시작됐음을 보여준다.
최윤서 수습기자
yschoi29@seoultech.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