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태죄가 사라진 지 5년이 지났지만, 임신중지 약물은 여전히 정식 허가를 받지 못했다. 제약사의 자료 미비, 식약처의 소극적 태도, 종교계와 의료계의 우려가 복잡하게 얽히며 도입은 계속 미뤄져왔다. 그 사이 온라인 불법 유통 사례는 매년 늘었다. 그러던 중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미프진의 적정 사용 검토를 지시하며 논의가 다시 급물살을 탔다. 하지만 품목허가 심사와 처방 체계 마련, 건강보험 적용 여부 결정 등 실제 도입까지 남은 절차는 아직 적지 않다.
미프진(정식 성분명 미페프리스톤·미소프로스톨 복합제, 이하 미프진)은 자궁 내 착상을 유지하는 호르몬을 차단하고 자궁 수축을 유도해 임신을 끝내는 약물이다. 미프진은 1988년 프랑스에서 처음 승인된 이후 현재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쓰이고 있지만, 한국은 OECD 38개국 중 아직 미프진을 정식으로 허가하지 않은 5개국에 속한다.
정체됐던 도입 논의, 다시 탄력
지난 7월 14일(화),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정부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필요시 미프진을) 적정하게 투약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약 한 달 뒤인 8월 21일(금), 법제처는 “모자보건법 개정 없이도 임신중지 약물 허가가 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을 내놨다. 지금까지 식약처는 “모자보건법의 규정에 따라 인공임신중지가 제한되고 있으니 약을 허가해도 처방할 근거가 없다”는 해석에 막혀 허가 심사조차 미뤄왔는데, 이번 유권해석으로 그 행정적 걸림돌이 해소된 셈이다.

7년째 채우지 못한 입법 공백
2019년 4월 11일(목)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2020년 말까지 국회가 대체입법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국회가 해당 시한을 넘기면서 2021년 1월 1일(금), 형법상 낙태죄 조항은 자동으로 효력을 잃었다. 그 뒤로 5년간 입법 공백은 메워지지 않았다.
이 지연을 단순히 “정부가 미뤄왔다”는 말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현대약품은 2021년 7월 처음 품목허가를 신청했지만 자료 미비로 2022년 12월 스스로 신청을 취하했다. 2023년 재신청 때는 식약처가 “사용 가능한 임신 주수 등 법적 허용 범위가 법률로 먼저 정해져야 심사 기준을 세울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해 막혔다. 그런데 정작 식약처가 받은 외부 법률 자문 6건 가운데 4건은 법 개정 없이도 허가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라 결정을 미뤄온 것 아니냐는 비판이 약계 일각에서 나오는 이유다.
작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오유경 식약처장은 관련 지적에 “관계부처와 제도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남인순 의원이 식약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낙태죄 효력 상실 이후 임신중지 의약품 불법판매 적발 건수는 2,600건을 넘어섰다. 지난달 이수진 의원은 최근 5년간 누적 적발이 3,189건에 달한다며, 허가 지연이 유통 실태 파악조차 어렵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해외는 어떻게 하고 있나
미프진은 1988년 프랑스에서 처음 도입된 뒤 유럽 각국으로 확산됐고, 미국은 2000년 미페프리스톤 단일제 사용을 승인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05년 미프진을 필수의약품 목록에 포함시켰다. 접근 방식은 나라마다 다르다. 프랑스는 산부인과 전문의 대면 처방을 원칙으로 삼아온 반면, 미국은 2023년 규제를 완화해 원격 진료로 처방받은 뒤 병원 방문 없이 약국·우편으로 수령할 수 있게 했다. 방식은 달라도 대체로 ‘전문의 처방’이라는 틀은 유지하면서 접근성을 넓혀온 흐름이다.
반면 한국은 처방 주체나 임신 주수 제한 같은 세부 기준을 논의하기도 전에 품목허가 자체가 5년째 멈춰 있다.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기독교계는 생명권 보호가 충분히 담보되지 않은 채 법적 기준 없이 약물부터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신중론이 나온다. 의료법상 의사는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할 수 없지만, 미프진 처방은 “의사 자율에 맡기자”는 논의가 나온다. 한지아 의원은 앞선 신중론에 모순을 짚으며 “일반 진료라면 거부할 수 없어야 하고, 거부가 가능한 특수한 사안이라면 법적 지위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전한 미프진 사용의 조건
안서희 해운대부민병원 산부인과 의사는 미프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았다. 그는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진통소염제나 감기약처럼 유통되는 것은 위험하다”며, “선택의 폭은 넓어지지만, 더 간편한 임신중지 방법이 생기는 건 아니다. 태아와 태반 부산물이 배출돼야 하는 건 수술이든 약물이든 같아 출혈량 자체는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다만 “수술은 생리량 이하의 출혈이 1주 이내로 끝나지만, 미프진은 길게는 30일까지 출혈이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안 의사는 사전 진단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임신테스트기에서 두 줄이 나와도 정상임신이 아닌 자궁외 임신 등을 의미할 수도 있어, 초음파 확인 없이 복용하는 건 매우 위험하다”며, “자궁외 임신 상태에서 복용 시 복강 내 출혈로 사망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안 의사는 “미프진이 허용된 나라도 의사 감독 아래 복용이 원칙이며, 처방전 없이 쓰이는 경우는 안전해서가 아니라 의료 접근이 어려운 불가피한 선택일 뿐”이라고 전했다.

▲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국정감사에서 발언하고 있다.(출처=여성신문, 손상민 사진기자)
지연될 수밖에 없는 이유
도입이 늦어지는 사이 반사이익을 보는 건 불법 유통 시장이다. 안 의사는 이를 “의료 현장에서 실제로 접하고 있다”고 답했다. “성분을 알 수 없는 불법 유통 약물을 복용한 뒤에도 임신이 지속돼 임신 중기에 병원을 찾는 사례가 있다”며 “이 시점에는 임신을 중지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가 처방하고 중절 과정을 확인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고 덧붙였다.
법 개정 없이 유권해석만으로 도입 논의가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임신 주수 기준 문제를 짚었다. 안 의사는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 24주 이내 임신중지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입법이 추진됐지만 무산됐다”며 “그새 의료 발전으로 21주 조산아도 생존할 수 있게 된 만큼, 미프진 도입 시에도 허용 가능한 임신 주수를 법적으로 명확히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프진이 도입되지 못하는 이유는 약제의 안전성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임신중지에 대한 법안이 없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국회에서 계류* 중인 개정안과 넘어야 할 과제
행정 절차는 속도를 내고 있지만, 입법 공백은 7년째 그대로다. 제도적 미비가 여성의 건강권 및 자기 결정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임선희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은 “현실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임신중지라는 선택에서, 제대로 된 병원을 찾거나 약을 구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현 상황에서 여성들은 수술을 진행하는 병원을 찾더라도, 정확한 금액이 얼마인지 확인하기 어렵고 건강보험도 적용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결국 많은 여성들이 음성적 경로로 유통되는 약들을 투여하게 되는 현 상황에서 해당 약에 어떠한 부작용이 있는지, 또 정확한 투여 방법은 무엇인지 제대로 된 고지를 받을 수 없어 결국 여성의 건강권이 계속해서 침해되는 상황”이라고 답했다.
국회에는 남 의원이 대표발의한 모자보건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이는 수술뿐 아니라 약물 투여를 포함하는 내용으로, 통과될 경우 건강보험 적용의 법적 근거도 마련된다. 이러한 개정안은 2019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회기마다 반복 발의됐지만, 사회적 합의 부족으로 매번 법안심사소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안전관리 체계가 완전히 정비되기 전까지 도입을 유예해야 한다는 ‘입법 선행론’을 내세우지만, 이것이 실질적인 도입 지연의 명분으로 작동한다는 비판도 거세다. 이에 대해 임 사무처장은 “미프진은 현재 100여개 이상의 국가에서 사용하고 있는 안전성이 검증된 약인데, 입법 선행론을 이유로 미프진을 도입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설명”이라고 답했다.
재생산권 논의의 시작점
수술 외에 약물이라는 선택지가 공식화되는 것이 여성의 권리 보장에 갖는 의미에 대해, 임 사무처장은 “미프진 도입은 수술보다 안전하고, 보다 접근성이 높은 약물이라는 새로운 선택지로 오랫동안 금기시 돼온 임신중지 의제에서의 진보”이며, “임신중지를 하는 여성의 몸에 보다 안전한 방법의 도입이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미프진 도입은 이후 건강보험 적용 등 적극적으로 여성의 재생산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
*계류: 의회나 위원회에 제출된 법안이나 안건이 아직 의결이나 처리를 거치지 않고 논의 중인 상태로 남아 있는 것.
고유빈 기자
ub2006@seoultech.ac.kr
최윤서 기자
yschoi29@seoultech.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