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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평 남짓한 방, 집이라 할 수 있을까? ... 서울 고시원의 현주소
서나연 ㅣ 기사 승인 2025-02-17 18  |  700호 ㅣ 조회수 : 56

 최근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가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법원 테러 등 자극적인 사건들이 잇따르고 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눈에 들어온 것은 구속 직전 머무르는 구인 피의자 대기실이었다.



 화면에 비친 대기실은 예상과 달랐다. 한 사람이 사용하기에는 넉넉한 크기의 화장실, 두 발을 뻗고 눕기에 충분한 매트리스, 그리고 TV와 난방 시설까지 갖춰진 듯 보였다. 특히 넓은 창을 통해 햇살이 밝게 스며들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고 문득 비교가 됐다.



 대한민국에는 여전히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생활하는 이들이 많다. 고시원과 반지하 거주자에게 ‘창문과 햇살’은 당연한 옵션이 아니다. 창문이 있는 방과 없는 방의 월세 차이는 5~10만 원가량이며, 개인으로 쓸 수 있는 화장실이 제공되는지도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러한 공간조차도 마련하기 어려운 이들이 수두룩하다.



 고시원을 비롯한 다중생활시설 생활자들은 대체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요한 최소 주거 면적은 14㎡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크게 다르다. 2020년 한국도시연구소의 기록에 따르면 서울시 고시원의 평균 주거 면적은 7.2㎡로, 기준 면적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좁은 공간에서 생활해야 하는 이들은 열악한 환경을 감내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윤 대통령이 구속 직전 거쳐 간 3평방(10㎡ 정도)은 고시원 거주자가 사는 방보다 넓고, 창문도 널찍하다. 이런 방이 사치로 느껴질 정도로, 우리 옆에는 취약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아이러니하게 법원을 찾아오는 구인 피의자들이 머무는 공간이 일부 시민들이 살아가는 현실보다 나아 보인다는 사실은 씁쓸한 현실을 다시금 환기시킨다.

▲ 우리대학에서 가까이 위치한 원룸텔 외관

 



서울의 겨울, 고시원으로 몰려나 “여기서 밀려나면 갈 곳 없다”



 고시원은 도심 주거의 어둠이자 빛이다. 창도 화장실도 없는 방은 대도시의 주거난과 저소득층의 열악한 삶을 압축한다. 재개발·재건축으로 도심에서 서민들의 주거지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현재 서울은 수십억원대 고층 아파트 천국이 됐다. 접근 가능한 집이 부족해지자, 고시원은 저소득층의 보금자리가 됐다.



 자본금과 안정적인 일자리가 없는 저소득층일수록 도심을 떠나기 어렵다. 그나마 도심에 있어야 일용직이라도 구하기 쉽기 때문이다. 서울의 고시원들은 도심에서 싼 가격으로 보금자리를 제공한다. ‘싼 가격’이란 단지 월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임대보증금이 없고, 수도료·전기료·관리비 같은 추가적인 부담도 없다. 대부분의 고시원에서는 운영업자들이 밥과 김치, 라면 등을 제공하니 식비도 적게 든다. 화장지나 이불 같은 생필품도 제공받을 수 있다.


2025년 서울, 사람은 많고 집은 부족하다. 서울의 주거난이 심화되는 가운데, 여전히 수많은 사람이 집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겨울철이 되면 저렴한 임시 거처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며 고시원의 수요가 증가한다. 이에 본지는 우리대학이 위치한 노원구 인근의 한 고시원을 찾았다.

 우리대학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고시텔’은 월세가 방에 따라 20만원에서 40만원 선이다. 해당 고시원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오래된 상가 건물의 3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안내 데스크 왼쪽 벽에 게시판이 걸려 있었다. 게시판에는 ‘휴지는 인당 2롤씩 매달 공급 받으세요’, ‘이불 필요한 분들 말씀하세요’ 등의 공지사항이 적혀 있었다.



 고시원을 운영하는 이상민(가명) 씨는 “이렇게 싼데도 여기서 못 버티는 사람들은 결국 길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보증금 없이 월 10만~20만 원대의 고시원에서 밀려나면 대안이 마땅치 않아 노숙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는 “서울에서 일하는 이들에게는 잠만 잘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며 “고시원은 그러한 수요를 충족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경제 상황이 점점 더 어려워지면서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고시원을 찾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제적 선택, 그러나 공용시설의 한계



 현재 노원구의 한 고시원에서 1년째 거주 중인 우리대학 김가온(전자·24) 씨는 기숙사 생활의 불편함과 입주 탈락으로 인해 고시원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그는 “기숙사에서는 2인 1실을 사용해야 하고 취사가 불가능해 불편함이 컸다”며 “고시원은 보증금 없이 월세만 내면 입주할 수 있어 당장 거주할 곳이 필요했던 상황에 적합했다”고 말했다. 또한 전공 건물과의 거리, 기숙사와 비슷한 가격에 1인실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선택에 영향을 줬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고시원 생활이 마냥 편리한 것만은 아니다. 김 씨는 “공용 주방과 세탁실 이용이 가장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주방에서 취사가 가능하지만 관리 상태가 좋지 않아 사용을 꺼리게 된다”며 “방에 개인 냉장고가 있지만 크기가 작아 공용 냉장고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다른 입주자가 반찬을 훔쳐 가도 범인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세탁실도 문제다. “세탁기가 공용이고 이용자가 많아 원하는 시간대에 빨래를 하기 어렵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누우면 발끝이 벽에 닿아도 밥과 김치, 라면이 제공되고 화장지 같은 생필품 값도 아낄 수 있다. 부족하나마 냉난방도 되는 이곳을 누군가는 ‘천국’이라 부른다. 대도시에서 고시원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2025년, 갈 곳 없는 이들에게 고시원은 여전히 ‘빛’이다. 지난 30년간 값도 크게 오르지 않았다. 10만원대 중반의 값싼 고시원 방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고시원은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는 대안적인 주거 공간이지만, 불편함 또한 적지 않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고시원으로 몰리는 현실 속에서 너무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살다보니 생기는 문제다. 결국 사람이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고민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신축 고시원의 방은 실면적이 7㎡ 이상 돼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서울형 고시원 주거기준’을 발표했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맞춤형 복지? 주거취약층 현실과 정책 간극 커



 지난 2022년, 노원구는 고독사 위험이 높은 지하·옥탑방·고시원 거주 1인 가구를 적극 발굴해 맞춤형 지원에 나섰다. 노원구는 사회적 고립이 심화된 주거취약계층을 조기에 지원하기 위해 지난 2021년 지하층 4,755가구, 옥탑방 325가구, 고시원 1,425가구 등 총 6,505가구에 대한 현황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발굴된 중장년 1인 가구 394가구에는 공적급여 지원, 복지관 연계, 돌봄 서비스, 안부 확인 등 맞춤형 복지서비스가 제공됐다. 또한 구는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추가 지원이 필요한 가구를 관리하고, 위기도가 높은 대상자는 별도 사례관리대상자로 지정해 보다 면밀히 돌볼 계획이라 밝혔다.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주거취약 1인 가구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안전망 구축의 첫걸음”이라며 “공공과 민간의 역량을 총동원해 지속적인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청년월세지원’과 같은 주거비 부담 완화를 위한 다양한 지원 사업이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현재,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고시원에 거주 중인 김 씨는 “월세 지원 정책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보증금을 직접 마련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당장 도움이 되지 않았다”며 정책의 한계점을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정책이 보다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수혜 대상자들의 다양한 상황을 고려한 세부적인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서나연 기자 jsdgtj@seoul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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