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끈따끈한 음식이 나오자마자 사람들은 숟가락이 아닌 핸드폰을 든다. 핸드폰의 각도를 틀어보기도 하고, 여러 필터로 바꿔보면서 마음에 들 때까지 사진을 찍는다. 불과 십년 전까지만 해도 음식이 나오면 사진을 찍으려고 덤벼드는 사람들은 적었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변화시킨 것일까. SNS 속 맛있는 음식 사진들을 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 ‘나 이렇게 잘살고 있어요’라고 알려주는 SNS, 과연 진짜 나도 이렇게 잘살고 있을까.
최근 SNS라는 새로운 판 위에서 사람들이 활발히 교류하자 우리는 남들의 시선을 더 신경 쓰게 됐다. SNS에 음식 사진을 올릴 때도 어떤 구도로 찍을지, 필터는 어떤 것을 적용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요즘은 ‘있어 보이게 하는 것’도 능력이 됐다. 그게 바로 ‘있어빌리티’다. ‘있어빌리티’는 ‘있어보이다’와 ‘ability’가 합쳐진 신조어로, ‘있어보이게 하는 능력’이라는 뜻이다.
몇 년 전 비싼 등산용 패딩 브랜드 ‘노스페이스’가 우리나라를 강타한 적이 있다. 당시 ‘노스페이스’ 패딩이 교복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학생들이 ‘노스페이스’ 패딩을 입었다. 대한민국에 사는 학생이 비싼 돈을 들여 그렇게 보온이 잘되는 패딩을 살 필요가 있었을까. 겨울철 학생들이 입는 것이라곤 교복과 패딩이 전부다. 따라서 값비싼 패딩을 입고 다니는 것은 자연스레 자신이 돈이 많음을 알리는 수단이 된다. 하지만 사실 30만 원에서 60만 원까지 호가하는 패딩을 살 정도로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집안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비싼 패딩을 사는 이유는 돈이 많음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요즘은 값비싼 캠핑 장비를 통해 재력을 과시하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근교에서 캠핑을 하는 것임에도 히말라야 등정할 때나 쓰는 값비싼 캠핑 장비를 사곤 한다. 남들을 의식하면서까지 비싼 캠핑 장비를 구입하는 것은 캠핑 장비가 곧 그 사람의 경제 형편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브랜드 옷과 자전거 등도 마찬가지다. 과시하려는 마음과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는 열등감으로 인해 사람들은 값비싼 물품들을 소비하려고 한다.
자신만의 취향을 과시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유행에 휩쓸려가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고집하는 것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가요제를 통해 이름을 알린 ‘10cm’와 ‘혁오 밴드’를 봐도 알 수 있다. 평소에는 조용히 이 가수들의 노래를 듣고 즐기기만 하던 사람들이 ‘10cm’와 ‘혁오 밴드’가 뜨자 SNS에 자기가 좋아하던 가수들이었다며 열을 내며 말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쫓던 문화가 주류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증’ 함으로써 안목을 자랑하고, 인정욕구를 충족하는 셈이다.
있어보여야 한다는 생각은 선택의 기준을 변화시켰다. 사람들은 이제 먹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찍어 올리기 위해 먹는다. SNS에 그럴듯한 인증사진을 올릴 수 있도록 잘 꾸며진 인테리어는 식당 선택에 있어서 하나의 중요한 기준이 됐다. 실제 호텔 수영장과 같은 소품들로 마치 고급 호텔에서 식사하는 느낌을 주는 레스토랑 ‘풀사이드 228’이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이 레스토랑 속 여러 소품들은 고급스럽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러한 인테리어는 식사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또 멋진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사진이 SNS에 퍼지게 되면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러 레스토랑에 오기 때문에 이에 따른 홍보 효과도 나타난다.
이러한 효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일본의 기업도 있다. 사람이 뛰는 모습을 한 입간판은 오사카에서 사진 찍는 명소로 유명하다. 사람들은 입간판 속 사람과 같은 자세를 취하고 사진을 많이 찍는데, 이 입간판은 일본의 유명 과자 브랜드 ‘글리코’의 것이다. 이 사진은 SNS를 통해 퍼져나갔고, 이 사진들을 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러 ‘글리코’의 입간판 앞으로 모였다. SNS는 자연스레 ‘글리코’를 알리는 홍보 수단이 됐다. 광고를 따로 찍고, 포스터를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용면에서 좋을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다.
소위 ‘명품’이라고 불리는 브랜드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이유엔 예로부터 있어 보이고 싶은 욕망이 자리해 왔다. 명품 브랜드들은 고급스러운 상품을 소유함으로써 남들과는 다른 지위에 있음을 알리고 싶은 소비자들을 겨냥하고 있다. 한편, 가격은 낮지만, 남들에게 과시할 수 있는 상품으로 성공한 사례가 있다. 가성비가 좋은 SPA브랜드 ‘H&M’이 명품 브랜드 ‘발망’과 콜라보레이션 이벤트를 한 것이 그 예다. 소비자들은 가격에 부담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명품브랜드의 제품을 산 것 같은 느낌을 가진다. ‘있어빌리티’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니즈를 제대로 파악한 것이다. 이벤트가 열리기 전 매장 앞에는 수 십 명의 사람들이 제품을 사기 위해 노숙을 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과시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용한 마케팅은 소비자들의 비난을 사기보다는 만족감을 전달해준다.
일각에서는 ‘있어빌리티’가 이름만 멋지게 바뀐 허세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타인의 고가 용품들을 제 것인 냥 촬영해 SNS에 올리거나, 단순히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고급 음식을 먹는 행동들은 ‘능력’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실제로 유럽의 여행지에서는 스냅 사진 시장이 형성돼 있다. 일정 시간동안 사진가가 여행자를 따라다니면서 자연스러운 사진을 찍어주는 대가로 수십만원 정도의 금액을 받는 것이다. 이러한 시장이 형성된 이유는 만족스러운 여행 사진을 과시하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이 최근 SNS를 통해 더욱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가를 고용하지 않더라도 여행을 ‘과시’하기 위한 노력은 다양하다. 여행 전 전문가용 카메라를 구입하거나, SNS에 게시할 사진을 위해 유료 사진 필터 앱을 구매하는 것 등이 그 예이다.
있어빌리티를 허세가 아닌 브랜딩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있어보이기 위해서 노력한 것이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브랜드가치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있어빌리티를 잘 활용한 사람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좋은 평판을 얻어냈다.
우리에게 스타 셰프로 익숙한 최현석 셰프는 기존에 방송 활동을 하던 요리사들이 대중들에게 친숙한 ‘엄마’, ‘주부’ 등의 이미지를 만든 것과는 달랐다. 그는 오히려 요리를 할 때 자칫 ‘허세’로 보일 수 있는 행동들을 즐겨 함으로써 ‘허세 셰프’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런데 대중들은 그런 행동들에 열광했다. 그의 몸짓은 요리를 할 때 꼭 필요하지는 않은 행동이었지만, ‘있어 보이는’ 효과는 확실했기 때문이다. 다른 셰프와 같은 요리를 할 때에도 대중들은 그의 퍼포먼스에 주목했다. 이처럼 특유의 허세스러운 행동으로 만들어낸 그의 브랜드가치는 곧 그가 총괄 셰프로 있던 레스토랑을 인기 식당으로 자리잡게 만든 원동력이 됐다.
있어빌리티가 긍정적인 효과를 낸 경우도 있다. 매일 신문을 읽고, 뉴스를 찾아볼 여유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등장한 카드뉴스가 그 예이다. 카드뉴스는 SNS의 특성과 맞물린 언론보도 형태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실제로 카드뉴스 형태의 보도가 인기를 얻자 수많은 언론사에서 카드뉴스 서비스를 제공했다.
최근에는 ‘넘겨보지 않는’ 형태의 카드뉴스도 등장했다. 페이스북 페이지 ‘스피드웨건’은 하루에 두 번 10여 개의 뉴스 헤드라인을 엮은 이미지를 게시한다. 그리고 독자들은 이미지 속 단 한 줄의 정보로 여러 사건에 대한 ‘얕고 넓은’ 지식을 얻고, 토론한다. 비록 지식의 깊이는 깊지 않지만 신속하게 다양한 담론이 오갈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예시는 ‘힙스터’다. 자신만의 독특한 취향을 쫓는 그들은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획일화되지 않기 때문에 ‘있어 보이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들이 쫓던 비주류 문화는 곧 주류에 편입되거나 기존의 주류 문화를 밀어내고 새로운 주류가 된다. 그들의 남들과는 다른 취향이 현대인들의 희소성에 대한 욕망을 자극한 것이다. 그렇게 대중들 역시 ‘힙스터’들의 비주류 문화를 즐기기 시작했다. 결국 소수의 문화였던 인디 음악과 몇몇 장소들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주류 문화가 됐다.
지나친 있어빌리티의 추구는 ‘SNS 허언증’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있어 보이려는 욕망에서 나아가 거짓 정보로 자기 자신을 포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증상은 익명으로 활동할 수 있는 특정 SNS에서 더 강하게 나타나는데, 심한 경우 타인의 신상이나 게시물을 도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허세’를 풍자하는 예술가도 있다. 태국의 사진작가 촘푸 바리톤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인스타그램 사진 밖에 숨겨진 진실’이라는 주제로 몇몇 사진을 게시했다. 완벽한 자세로 요가를 하는 여성의 사진 바깥에서는 그녀의 다리를 잡아주는 친구를 볼 수 있고, 고급스러운 음식 사진 밖에는 먹다 만 인스턴트 식품들이 놓여있다. 그의 작품들은 완벽할 것 같은 SNS 속 사진이 사실은 우리가 겪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거짓 게시글까지 동원해 ‘있어 보이려는’ 사람들로 가득한 SNS 속에서,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카페인 우울증’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들어진 카페인 우울증은 해당 SNS 속 타인의 일상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과 우울함을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증상은 결국 삶에 대한 만족도 저하로 이어진다.
타인의 반응을 중요하게 여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 특히 카페인 우울증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 대부분의 SNS가 좋아요, 감정 표현 등 반응을 나타내는 기능을 지원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양인보다 반응 개수를 의식하는 경향이 짙다. 자신의 글에 반응한 사람의 수에 따라서도 우울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지난 5월 대학내일 20대연구소는 ‘20대의 인정욕구에 대한 인식 및 실태조사’를 통해 청년들이 SNS에 올리는 게시물의 주제는 주로 특별한 순간이나 여행, 레저 등이라고 밝혔다. 이는 SNS가 행복한 순간을 기록하는 수단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현실 속 개인은 SNS 속 모습처럼 항상 행복할 수 없다. 카페인 우울증은 이러한 사실에 대한 몰이해에서 야기된다. SNS와 현실이 비교대상이 아님을 알면서도 박탈감을 느끼고, 우울증을 호소하게 된다. 이러한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까. 방법은 SNS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다. 또한 비공개 SNS, 익명 SNS 등의 대안 소통방식을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지인과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을 포기하는 대신 박탈감을 덜 느끼는 소통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SNS가 아닌 현실 속 타인과 소통하는 것이다. 이것이 ‘있어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있어빌리티’는 누군가에게는 훌륭한 포장지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박탈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있어 보이게 하려는 것은 곧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에 ‘있어빌리티’가 사라지진 않을 전망이다. 오늘도 있어빌리티는 허세와 자신을 꾸밀 줄 아는 것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를 하고 있다.
황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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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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