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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상
수필 부문 우수
기사 승인 2020-12-07 00  |  639호 ㅣ 조회수 : 238



꿈을 꾸었다

이지원(문예창작학과·15)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금발 머리를 하고 있었다. '아, 내가 드디어 정규직이 되었나 보군.' 나는 어림잡아도 최소 세 번은 탈색한 듯한 금발 머리를 소중히 빗으며 생각했다.



  그러다 어김없이 새벽 6시면 울리는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어깨를 겨우 넘는 짧은 머리를 매만지며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자를까, 말까. 아니야. 한 달만 더 있다 자르자. 인턴십 계약이 다 끝나면, 그때 자르자. 나는 사방으로 뻗치는 머리카락을 그러모아 하나로 묶었다. 이제는 제법 물이 빠진 검은색 염색모가 조명을 받아 촌스러운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3개월 전, 졸업 시험을 무사히 통과한 나는 졸업 이후를 고민하고 있었다. 때마침 학과 홈페이지에서 우연히 장기현장실습 안내 공고를 발견했다. 우리 학과 역사상 최초로 열린 장기현장실습이었고, 꽤 규모가 있는 A사에서 한 학기 동안 인턴으로 일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오, 솔깃한데? 공지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며 스크롤을 내리자, 심지어 내가 원하던 직무 계열의 인턴을 뽑는다고 적혀있었다. 집에서 꽤 먼 거리의 직장이었지만, 다른 조건들이 퍽 마음에 들었다. 벌써부터 A사를 향한 애사심이 솟는 기분이었다.



  면접일이 잡히자마자 밝은 탈색모 위에 검은색으로 염색했다. 단정해 보이도록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오랜만에 옷장에서 면접용 정장을 꺼냈다. 내가 지금 26살이니까, 몇 년 전이더라. 하여튼 19살 봄에 샀던 투피스 정장이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던 수험생 시절의 나는 수능을 몇 달 앞두고 일명 ‘고졸 취업’을 택했었다. 결국 1년 반을 채 채우지 못하고 퇴사했지만…. 약 5년 만에 돌아온 취업준비생 신분이 낯설어 정장 치마를 몇 번이고 만져봤다. 근데 이게 지금도 맞으려나. 밥 안 먹고 입으면 맞겠지?



  이 글을 쓰는 지금, 바깥에서는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고 있다. A사 면접날도 그랬다. 연일 역대 최장 장마 신기록을 경신하던 늦여름의 어느 날, 나는 물이 찬 구두를 신고 지하철에 올랐다. 사람들의 휴대폰 액정 속 뉴스 기사에서는 이상기후니 기후위기니 떠들어대고, 코로나의 원인이 환경오염일지도 모른다고 그랬다. 그런가? 뭐,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럼 올해 실업률의 원인은 코로나니까, 결국 청년 취업이 안 되는 것도 다 환경오염 때문이겠군. 하긴, 나도 이 망할 놈의 장마 때문에 세팅한 머리가 엉망이 되어서 결국 질끈 묶어버렸으니까. 일리 있네. 나는 장장 편도 한 시간 반이 걸리는 A사를 향하며 쓸데없는 생각을 해댔다. 거리가 너무 멀어서 그런지 곧 있을 면접이 꼭 남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끊임없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아 맞아. 1분 자기소개 준비해야지. 마지막 하고 싶은 말은 뭐라고 하지? 종착역에 도착할 때까지 도통 집중을 못 하는 상태로 면접장에 들어갔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면접관들은 자기소개도, 마지막 말도 묻지 않았다. A사는 정부 지원금을 얻기 위해 n명 이상의 대학생 인턴을 뽑아야 했고, 나와 함께 면접을 본 몇 명의 후배들과 심지어 다른 학교에서 온 대학생들까지 모두 A사에 합격할 수 있었다.



  월급은 140만 원, 거기에 별거 아닌 세금을 떼면 136만 원이 통장에 찍혔다.(참고로 4대 보험을 들지 않았기에 그나마 받은 금액이 저 정도였다.) 장기현장실습을 위해 등록한 이번 학기 등록금이 백만 원 조금 안 됐으니까, 내 첫 월급은 등록금으로 다 날아간 셈이었다. 8학기 내내 장학금을 받고 다녔던 나는 장기현장실습을 위해 추가로 등록한 9학기 만에 처음으로 등록금을 냈다. 공부는 공짜로 했는데, 일은 돈 내고 해야 한다니. 그 역설 속에서 나는 몇 해 전, 카페 알바를 하다 알게 된 B언니를 떠올렸다. 오랜 취업 준비 끝에, 몇 달 전 겨우 체험형 인턴십에 붙은 그녀는 세종시로 거처를 옮겼다. 인턴으로 뽑아준 회사가 세종에 있던 탓이었다.



  “월급 그냥 월세로 다 나가겠다.”

  “그래도 어쩌겠냐, 요즘은 인턴 없으면 서합(서류 합격)도 안 돼. 세종이 아니라, 제주도였어도 갔을 거야.”

  “그래, 그래도 6개월만 버티면 되겠네. 6개월 금방이야.”



  평생을 서울에서 산 그녀는 세종시의 한 고시원에서 첫 자취를 시작했다. 그리고 내 말마따나 쥐꼬리만 한 월급은 전부 월세와 생활비로 타버렸다. 당시 나는 그녀를 보며 ‘요즘은 돈 주고 인턴을 해야 하는군.’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함께 인턴을 하는 동기 중에서도 집이 너무 멀어, 회사 근처에 자취방을 얻은 사람이 있었다.



  “회사 근처라 그런지 월세가 70만 원이에요.”

  “우와, 월급의 절반이네?”

  “인턴이 아니라, 정규직이었으면 나도 바로 자취했을 텐데.”

  “맞아, 인정.”



  우리는 한데 모여 금천구의 과도하게 비싼 월세에 대해 조잘거렸다. 다섯 명 중 한 명의 인턴이 자취방을 얻었고, 너도 나도 부럽다고 말했던 것 같다. 인턴 전원이 왕복 3시간이 넘는 곳에서 살고 있었으니까.



  출근 첫날, 10분이 채 안 되는 OT시간이 있었다. 우리를 모은 인사팀장은 월급과 월차에 대해 설명하며, 이런 말을 덧붙였다. “열심히 해보세요. 인턴 하다가 정직원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러면서 그는 나의 사수를 예시로 들었다. 내 옆자리에 앉은 사수도 대학생 인턴을 하다가 정직원이 되어 지금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거라고. 그러니까 다들 꿈을 가지고 열심히 업무에 임하라고.



  꿈? 무슨 꿈? 정직원이 될 수 있다는 꿈? 나는 속으로 ‘꿈’과 ‘정직원’이라는 단어 조합 사이의 이질감을 비웃으며 단발머리를 매만졌다. 우리의 꿈이 당연하게도 ‘정직원’일 거라 단언하는 저 자신감이 재수 없었다. 그리고 며칠 뒤 또 다른 인턴도 금천구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업무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는 이유였다. “흠, 혹시 너 꿈이 여기 정직원이니?” 나는 농담조로 그렇게 물었는데, 나보다 4살이 어린 그 친구는 토끼 눈을 하곤 대답했다. “헉, 어떻게 알았어요? 저 이런 회사에서 일하는 게 꿈이에요.”



  아직 스물두 살밖에 안 된 그 친구의 대답을 듣고, 나는 잠시 나의 스물두 살을 기억해냈다. 나는 그때 뭐 했더라, 그냥 열심히 놀았던 것 같은데. 유럽도 가고 동남아도 가고, 유학 가겠다고 알바해서 돈도 모으고. 그때 내 꿈은 뭐였지. 어쨌든 직원이 50명 정도 되는 중소 기업의 정직원이 되겠어! 이게 내 꿈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라, 지금 내 꿈은 뭐지.



  얼마 전, 옆자리에 앉은 내 사수가 말을 걸었다. 카톡 프로필을 보니까 예전에 금발을 많이 했나 봐요? 네 맞아요. 근데 여기 면접 보려고 검은 색으로 덮었어요. 나의 말에 사수는 웃으며 답했다. 우리 회사는 복장 자유라서 금발머리여도 상관없다고. 그녀의 말에 나는 그냥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마 정직원이었으면 바로 탈색했을걸요. 근데 여기 인턴이 끝나면 나는 또 취업준비를 해야 하니까, 아마 다른 회사는 금발 머리 신입사원을 뽑지 않을 테니까.



  나는 지난 3년 내내 쭉 탈색모를 유지해왔다. 요란한 머리색을 하는 건 20살 신입사원 시절 나의 로망이었다. 고등학교 동창들은 대학 새내기랍시고 핑크부터 민트까지 온갖 화려한 머리를 선보이는데, 나는 조금만 밝은 갈색으로 염색을 해도 금방 부장님에게 불려가는 신세였기 때문이다. 퇴사하면 무조건 탈색해야지. 머리도 길러야지. 안 단정해 보일거야. 맨날 청바지만 입고, 누가 봐도 대학생처럼 하고 다녀야지. 그때의 다짐은 몇 년이고 내 안에 남아, 실제로 나는 오랜 시간 대학생다운 스타일을 유지했다. 자유로운 머리, 편안한 복장, 청바지, 백팩에 스니커즈.



  사원, 대리, 과장으로 이어지는 따분한 미래 말고 뭔가 좀 다른 내일을 기대하는 대학생. 그게 스무 살, 나의 꿈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꿈을 꾼 것이다. 거울 속 긴 금발 머리를 한 나를 보곤 ‘와, 나 정직원이 되었네!’라고 생각하는 꿈을. 거울 속 금발의 소녀는 원래 스무 살의 내가 꿈꾸던 자유로운 대학생의 전형이었는데, 어느새 금발은 A사 정직원의 모습으로 내 안에 박혀버렸나 보다. 게다가 그 무렵의 나는 일명 ‘거지존’이라 불리는 어깨라인에 머리카락이 닿아 사방으로 뻗칠 때마다, 확 다시 머리를 잘라버릴까 하는 고민을 하곤 했다. 그러다가도 그냥 다음에, 다음에, 하면서 미뤘었다. 혹시 모르잖아. 혹시 나중에라도 정직원이 되면 자른 머리가 아까우니까. 잘 기른 머리를 금발로 탈색하면 너무 좋을 것 같아, 어쩌고, 저쩌고.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민망한 기대였다.



  꿈속에서 정직원이 되어 긴 금발 머리를 갖게 된 나를 마주한 그 날, 나는 옆자리 선배와 대화 중에 재밌는 사실을 알게 됐다. A사에서 유일하게 대학생 인턴십 출신 정직원인 그녀가 사실은 ‘대학생 인턴십 - 2년간 다른 회사에서 근무 - 신입사원으로 다시 A사로 입사’하는 절차를 밟았다는 것이다. 대학생 인턴십을 한 것도 맞고, 현재 정직원인 것도 맞지만, 엄연히 따지면 인턴에서 정직원으로 전환된 건 아니었다. 그냥 A사에는 대학생 체험형 인턴이 정직원으로 바로 채용된 역사가 없었다.



  “열심히 해보세요. 인턴 하다가 정직원이 될 수도 있으니까. 꿈을 가지세요.” 그 말이 떠올랐다. 될 수도, 있으니까, 꿈을, 가지세요. 왜 그가 ‘꿈’이라는 표현을 썼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꿈 깨세요’, ‘꿈은 이루어진다’ 완전히 반대되는 표현들임에도 ‘꿈’이라는 단어가 공존하는 문장들이 아닌가. 진짜 재수없네, 나는 못 먹는 감에 퉤, 침을 뱉곤 머리를 잘랐다. 그런 꿈을 꾼 게 못 견디게 분했다. 아니야, 나에게 금발은 정직원의 상징이 아니라 자유의 상징이야. 회사생활이 너무 따분해서, 자유롭고 싶어서 그런 꿈을 꾼 거야. 그런 걸 거야. 정신승리 하는 내 꼴이 참 볼만했다.



  바닥에는 잘려 나간 검은색 머리카락이 쌓였다. 흑갈색으로 태어나서 노랗게 피었다가 검게 져버린 머리카락은 모발 끝이 흉하게 상해있었다. 그래, 꿈이 별거냐. 바뀌고, 또 변하고. 집채만 했다가, 콩알만 했다가, 생채기가 나면 잘려 나가는 머리카락 같은 거 아니겠어. 거울 속에는 다시 귀밑까지 짧아진 머리를 한 내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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