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틀란타 총기 난사 사건을 향한 시선
지난 3월 16일(화) 백인 남성의 총기 난사로 8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는 21살 백인 남성 ‘로버트 애런 롱’이며 첫 총격은 16일(화) 현지 시각 오후 5시경, 체로키 카운티 애크워스에 위치한 ‘영스 아시안 마사지샵’에서 발생했다. 이후 ‘골드 스파’ 등 또 다른 두 곳의 마사지샵에서도 총기를 난사했다.
총기 난사 이후 2명이 현장에서 즉사했고, 3명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그중 2명이 숨졌다. 피해자 8명 중 6명은 아시안 여성임이 밝혀졌다. 로버트 애런 롱은 사건 발생 이후 약 3시간 30분 뒤에 애틀란타 남쪽 부근에서 체포됐고 ‘악의적 살인(malice murder)’과 ‘가중폭행(aggravated assault)’ 혐의를 받게 됐다.
증오범죄인가,
성(性) 중독에 의한
범죄인가?
사건 발생 이후, 해당 범죄가 아시아인을 겨냥한 증오범죄라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보안관실 측이 수사 초기 그의 범행 동기가 *‘성(性) 중독’에 있을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FBI는 현재까지 증오범죄의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증오범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희생자들이 특정 요인에 의해 표적이 됐다는 증거가 명백해야 한다. 수사 당국은 현재 증오범죄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진 않지만 뚜렷한 증거가 없다는 점에 의해 법적 제약에 직면해 있다. 또한 총격범이 과거 재활원에서 성 중독 치료를 받았다는 증언이 나오며 성 중독에 의한 범죄라는 주장도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의회의 몇몇 아시아계 미국인을 비롯한 대다수의 여론은 해당 범죄를 명백한 증오범죄라 주장하며 성 중독을 변명으로 삼아선 안 된다고 말한다. 또한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사태 이후 심각해진 아시안 혐오가 해당 사건에 분명한 영향을 줬을 것이라 보는 의견도 많다. 현지 경찰은 우선 해당 범죄를 인종적 동기에 의해 벌어진 것이라 보고 있지 않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해당 사건을 단순히 ‘성 중독’에 의한 범죄로 치부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피해자 8명 중 6명이 아시아인이라는 것, 가해자가 평소 페이스북에 “중국은 코로나-19를 은폐하려 한다” 등의 글을 올리며 중국에 관한 반감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는 점은 증오범죄의 가능성을 더욱 커지게 한다.
애도의 물결과
분노의 목소리
사건 발생 이후 전 세계 곳곳에서 분노와 애도의 목소리가 표출되고 있다. 지난 주말 동안 미전역에서는 인종차별을 규탄하는 시위가 열렸다.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은 “애틀랜타 총격 사건은 명백한 증오범죄”라며 이를 사라지게 하기 위해선 인종을 뛰어넘은 연대로 맞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혐오와 차별은 미국을 괴롭혀온 못난 독”이라고 언급하며 이에 침묵하는 것은 범죄에 공모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말했다.
▲연쇄총기난사사고가난애틀란타의‘골드스파’/출처:한국일보
AAPI(아시아계와 태평양 출신들) 커뮤니티에서도 지속적인 추모의 물결이 일고 있다. 그레이스 멩 국회의원은 “무분별한 총격 사건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분들의 소식에 가슴이 무너지는 심정”이라고 언급했고, 프라밀라 자야팔 하원의원은 “AAPI 미국인들이 공격 대상이 되고 조지아 주와 미국 전역에 걸쳐 죽임까지 당하게 됐다”라며 AAPI 미국인들이 지속적으로 공격대상이 되는 것에 참담한 심정을 표명했다.
미국의 아시아계 미국인 및 태평양 섬 주민에 관한 차별, 증오 및 외국인 혐오 사건을 추적하는 비영리 단체인 ‘Stop AAPI Hate’에서도 “애틀랜타에서 벌어진 다수의 아시아 여성들에 관한 총격 사건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극적인 사건이다”라며 “심각한 수준의 인종차별적 공격을 받으며 힘들어 하던 피해자분들의 가족들과 아시아계 미국인 커뮤니티에게도 너무나 비극적이다”라고 해당 사건에 관한 입장을 밝혔다.
#StopAsianHate
SNS에선 ‘#StopAsianHate’라는 아시아계 혐오를 멈춰달라는 의미의 해시태그 운동이 진행 중이다. 한국계 미국인 인사들과 박재범, 타이거JK, 씨엘 등 K팝 가수들은 이 메시지를 공유하며 아시아계 인종차별을 멈추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가수 에릭 남은 타임지 사이트에 미국에서 아시아·태평양계가 겪는 차별을 지적하는 글을 기고했다. 에릭 남은 “이번 애틀랜타 총격 사건에 인종적 동기가 없다고 가정하는 것이 그 자체로 인종차별적”이라며 “왜 우리 공동체의 여성들이 당신들의 성 중독 희생자가 돼야 하나”라고 비판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지난 1년간 미국에서 발생한 아시아계 대상 증오범죄는 무려 3,800건 정도다. 이전에는 연평균 100건 정도 발생하던 범죄가 급격히 늘은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트럼프 전 정부의 ‘중국산 바이러스’ 등의 분열적 언사가 원인이라고 본다. 물론 코로나-19 발생 이전에도 물리적·성적 폭력을 당한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이 최대 55%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번 사건을 명백한 증오범죄로 단정 지을 수 없을지 몰라도, 미국 사회에 아시아계를 대상으로 한 차별은 여전히 만연하고 심각하다. 앞으로 이러한 인식과 세태를 어떻게 바꿔나갈 수 있을지 많은 이들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성(性) 중독 : 일상생활에 지장 받을 정도로 성행위에 관한 충동과 강박관념을 느끼는 정신 질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