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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교내 언론을 책임지는 기자들의 이야기
권민주, 장수연 ㅣ 기사 승인 2021-06-06 20  |  647호 ㅣ 조회수 : 161



  우리대학 신문사는 1963년 11월 25일, 전신인 경기공업 고등전문학교 시절 ‘경기공전신문’의 창간으로 시작됐다. 학제가 개편됨에 따라 신문의 제호도 ‘공대학보’, ‘개방대학보’, ‘개방대학신문’, ‘서울산업대학신문’, ‘서울산업대신문’, ‘서울과기대신문’으로 변화해 왔으며, 날카로운 시각으로 대학과 사회에 올바른 언론의 역할을 하며 건전한 비판을 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신문사가 2021년 1학기 종강을 앞두고, 마지막 인터뷰 면을 맞아 신문사의 발전을 위해 기여하며 추억을 쌓아왔던 기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인터뷰에는 김태연 편집장(문창·20), 박하나 부장(컴공·16), 장수연 차장(산공·19), 윤태훈 정기자(컴공·20), 김계완 수습기자(전정·17)가 참가했다.



Q. 어떻게 신문사에 들어오게 됐나요?



  A. 차장: 지금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는 것도 이미 힘든데, 실제 언론사의 기자로 활동한다면 엄청나게 힘들 것 같아요. 저도 어릴 때부터 기자가 꿈이었거든요. 어렸을 적에는 정의감이 넘쳤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언론이나 기자에 대한 동경이 있었어요. 학교 신문사 활동을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였어요. 솔직히 말하면 신문사 활동을 계기로 기자에 대한 꿈을 살짝 접었어요. 하면 할수록 제가 기자와 맞지 않은 성향인 것 같더라고요. 사람 대하는 거나 인터뷰하는 것도 너무 못하고…, 스스로 무능력하다고 느껴서 자괴감이 들었던 적이 너무 많았죠. 그래도 얻어가는 게 많아 후회는 안 해요.



  수습: 어렸을 때부터 기자가 꿈이었어요. 지금은 여러 현실적 상황을 고려해서 거의 접었죠. 아무래도 제가 공대를 다니다 보니까 전공 살려서 취업할까 싶기도 하고. 그리고 신문사를 들어가기도 힘들고, 들어가고 나서도 엄청 힘들잖아요.



Q. 신문사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A. 부장: 오래 일한 만큼 정말 많은 에피소드가 있지만 애증의 ‘콩순이 컴퓨터’와 함께한 에피소드를 꼽겠습니다. 신문사 컴퓨터를 바꾸기 이전엔 노트북 3대를 포함해 총 4대의 컴퓨터에서 돌아가며 작업해야 했어요. 정말 비효율적인 과정이었죠. 메인 컴퓨터에서 저장을 안 눌렀는데 프로그램이 꺼지면 모두 비명을 지르곤 했어요. 컴퓨터가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날엔 본체를 토닥이며 칭찬해주기도 했죠.



  차장: 저는 첫 취재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발명 관련 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으신 학우분들이었는데, 이와 관련된 자리에 총장님도 있었어요. 근데 하필 그 당시 취재를 나갈 시간이 되는 기자가 저 말고는 아무도 없는 거에요. 결국 저 혼자 취재를 가게 됐는데 그때 저는 제대로 된 취재 경험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카메라 켜는 방법도 몰라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어요. 총장님 앞이었는데 너무 부끄러웠죠. 그리고 대면 인터뷰 역시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너무 긴장해서 준비한 질문을 국어책 읽듯이 그대로 읊었어요.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저의 흑역사입니다.



Q. 신문사를 하면서 무엇이 가장 힘들다고 느끼나요?



  A. 부장: 역시 ‘조판’이죠. 같은 글을 여러 번 봐야 하는 것도 지치고, 글자 하나 수정하는 것도 디자인이 많이 바뀌어야 해서 곤란하죠. 또 그렇게 온종일 모든 기자가 검토하는 데도 오타나 정보 오류가 발생하면 허무해요. 디자인 기자로서는 아무래도 디자인한 것이 쓰이지 못할 때 허무해요. 하지만 더 필요한 디자인이 들어가야 했음을 알기에 이해하고 새로운 작업을 합니다.



  차장: 저는 사람 대하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제가 낯도 가리고 소심한 성격이라서요. 사실 신문사를 하면 글만 쓰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예전보다는 적응됐지만 여전히 힘든 것은 사실이에요.



  정기자: 저는 신문사를 하면서 개인 시간이 많이 없어진 게 힘들었어요. 학업도 해야 하고, 또 개인적으로 할 일도 하면서 틈틈이 여행도 가고…, 이 모든 것을 신문사 활동과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 힘들죠. 또 인터뷰를 할 때도 제 스케줄이 아니라 인터뷰하는 분들께 스케줄을 맞춰 드려야 하니까, 그런 스케줄 조정에서도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Q. 신문사를 하며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A. 편집장: 완성된 신문을 볼 때. 대부분의 기자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어요. 신문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인력과 시간이 생각보다 어마어마해요. 그런 신문을 만드는 책임자로 앉아있는 것도 꽤 많은 부담감이 드는데 완성된 신문을 보면 정말 뿌듯하고 보람차요.



  차장: 저도 그때가 제일 보람찹니다. 기사 쓸 때는 제 스스로가 봐도 형편없고, 어디 내놓기부끄러운 글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그래도 결국 완성본은 잘 나오더라고요. 진짜로 내가 만든 게 맞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Q. 코로나-19로 취재나, 보도 소재나 제한되는 것이 많을텐데, 이 때문에 아쉬운 점이나 고충은 없나요?



  A. 편집장: 항상 어렵고 항상 아쉬워요. 간간이 생기는 오프라인 취재에 다녀올 때마다 늘 ‘원래 이게 일상이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직접 발로 뛰며 학교 내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도 없거든요. 또 각종 대면 행사가 축소되면서 부족해진 보도 거리도 늘 걱정인 것 같아요.



  수습: 근데 오히려 저는 비대면 인터뷰의 장점도 있다고 생각해요. 코로나-19 이전에는 대부분 대면 인터뷰였잖아요. 이때 서로 시간을 내야 하는데, 그런 시간 조율 면에서 비대면 활동이 대면 활동보다 더 좋다고 느껴져요. 아쉬운 점은 보도할 기삿거리가 많이 없다는 점? 그래도 어떻게든 보도 소재를 찾긴 하는데 가끔 ‘이걸 굳이 써야 하나….’싶은 기사도 있어요.



Q. 신문사를 하면서 배운 것이 있나요?



  A. 차장: 저는 발로 직접 뛰는 방법을 배웠어요. 제가 생각만 하고 행동으로는 안 옮기는 스타일이었는데, 기사를 쓸 때 조금이라도 걸리는 게 있으면 바로 취재를 가야 하잖아요. 항상 뭔가를 하기 전에 지나치게 많이 생각하는 제 습관을 고치게 됐어요. 고민할 시간에 시도라도 해보는, 그런 자세를 배웠습니다.



  정기자: 저는 글 쓰는 게 많이 빨라졌다고 해야 하나. 원래 제가 글을 쓸 때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었는데, 기사는 빨리빨리 쓰고 마감 시간을 지켜야 하니까. 그런 부분에서 훈련이 되고, 또 기사를 쓰면서 ‘어느 부분을 어떻게 나타내야겠다’ 같은 글의 전체 맥락이나 흐름을 생각하는 사고가 늘었어요.



  수습: 기사를 쓰고 취재를 하잖아요. 그때 학교가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가 보여요. 아직 수습이라서 많은 걸 겪지는 못했지만, 간접적이더라도 ‘아, 이렇게 알아가는 방법이 있고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하고 알게 돼요. 우리가 안 보이는 곳에서 힘을 써주시는 분들도 많고요.



Q. 지금까지 썼던 기사 중 기억에 남는 기사가 있나요?



  A. 정기자: 심층 주제로 대학 월세를 비교하는 기사를 작성한 적이 있는데…, 대학가 월세와 관련해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학교와 가까운 원룸일수록 월세가 비싸지는 경향이 있는지 데이터들도 직접 찾아보고 분석하는 대형 기획을 짰었어요. 그런데 막상 조사해보니 딱히 해석이 무의미한 결과들이 나와서 기사가 흐지부지된 것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그게 아쉬워서 기억에 남아요. 투자한 시간 대비 결과물이 부실한 면이 있었죠.



  차장: 저는 심층 기사들은 매번 기억에 남아요. 그래도 그중에서 하나 뽑아보라면 저번 646호 교내 폐기물 처리 관련 기사가 가장 인상 깊어요. 사실 그 기사가 645호 기사의 후속 기사였는데, 원래 연재까지 생각도 못 했던 주제였거든요. 우리대학 쓰레기 배출 현황을 관련해서 여기저기 취재를 하러 갔는데 기사에 쓸만한 내용은 거의 없는 거에요. 근데 기사의 최종 수정이 이뤄지는 조판 날, 우리 학교의 배재근 환경공학과 교수님께서 아무도 인지하지 못 했던 교내 쓰레기 문제를 많이 제기해주셨어요. 그게 저번 호의 실험실 폐기물이랑 다산관 근처 생활폐기물 더미 내용입니다. 그 취재 과정이 너무 흥미로웠기 때문에 기억에 남아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부탁드립니다.



  A. 편집장: 우선 저희 신문을 봐주시는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한 번 더 드리고 싶어요. 비록 저희 앞에 코로나-19라는 막대한 장애물이 있지만 서울과기대신문의 모든 일원은 양질의 기사를 제공하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려요! 또한 기자 여러분도 자신이 앉은 자리에 대한 책임감과 막중한 부담감을 여실히 느꼈으면 해요. 우리는 학생 기자로, ‘학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자’이기도 하니까요. 마지막으로 신문이 나오기까지 많은 도움을 주시는 모든 우리대학 구성원 여러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부장: 올해는 신입생 키트를 통해 신문을 알렸지만, 이전까지만 해도, 아니 여전히 신문을 모르는 학생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신문을 보시는 독자 여러분이 계신다면 주위에 신문에 대해 널리 알려주세요! 독자 참여가 많아질수록 유익한 기사, 정보를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문사 기자들만이 만들어가는 신문이 아닌, 학생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가는 신문이라는 점 잊지 말고 항상 관심 가져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차장: 저는 이번 학기가 신문사 마지막 활동이에요. 그래서 ‘마지막 말’이라는 게 감회가 남다르네요. 사실 신문사 사람들한테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일단 신문사에서 너무 소중한 인연들을 만나게 됐어요. 같이 일하게 돼서 영광이었습니다. 일이 얽혀있다 보니 서로 감정이 상했을 때도 분명 있었겠지만, 신문사를 나가더라고 오랫동안 연락하고 잘 지내고 싶어요. 부족한 것도 많고, 매번 마감도 늦는 게으른 저 때문에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들 감사했습니다!



  정기자: 저도 이번을 마지막으로 신문사를 나가는데, 신문사 사람들이 다들 너무 좋은 사람들이라 즐거웠어요. 저희가 나가더라도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잘해나갈 테니깐 걱정은 없습니다. 모두 열심히 파이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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