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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정부가 걸어온 길
류제형 ㅣ 기사 승인 2021-11-16 12  |  652호 ㅣ 조회수 : 38

▲노태우 前 대통령 재임 시절                                                                                                                                                        출처 : 국민일보



노태우 정부가 걸어온 길



노태우

前 대통령의 장례



  노태우 前 대통령(이하 노 前 대통령)이 2021년 10월 26일(화) 향년 89세로 서거했다. 노 前 대통령은 2002년 6월 전립선암 수술 이후, 여러 차례 수술과 입원 생활을 반복하다가 건강 악화로 서울대병원에서 끝내 눈을 감았다.



  노 前 대통령의 장례는 10월 26일(화)부터 10월 30일(토)까지 국가장으로 치러졌다. 행정안전부는 10월 27일(수) 보도자료를 통해 국가장 결정 사실을 알리며 “노 前 대통령이 12·12 사태와 5·18 민주화운동 등과 관련해 역사적 과오가 있다”라면서도 “그러나 대통령 직선제를 통한 선출 이후 남북기본합의서 등 북방정책으로 국가 발전에 공헌했으며 형 선고 이후 추징금을 성실하게 납부한 노력 등이 고려됐다”라고 설명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이날 국무회의를 통해 “정부는 이번 장례를 국가장으로 해 국민과 함께 고인의 업적을 기리고 예우에 만전을 기하겠다”라고 밝혔다.



  국가장은 정부가 직접 국고를 들여 빈소를 설치 및 운영하고 영결식과 안장식을 주관한다. 국가장법 제2조에서는 중대 범죄를 저질렀는지 여부에 대한 언급 없이 전·현직 대통령이나 대통령 당선인이 서거하면 국가장을 치르도록 하고 있다. 동시에 국가장법 제1조는 대상자와 관련해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라고 명시했다.



  일부 진보 진영과 5·18 민주화운동 관련 단체에서 노 前 대통령의 국가장을 반대했지만, 정부가 유족의 뜻과 국민 정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무적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다만 노 前 대통령의 국립묘지 안장은 관련 법령에 따라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국립묘지법에 따르면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사람은 국가유공자 예우·지원법에 근거해 안장될 수 없다. 따라서 12·12 군사반란과 내란죄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노 전 대통령은 안장 대상이 될 수 없다.



노태우 정부를

향한 평가



  여론조사 기관 한국갤럽은 10월 26일(화)부터 10월 28일(목)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전직 대통령 6인의 공과(功過) 평가를 실시해 10월 29일(금) 공개했다.



  그 결과 ‘잘한 일이 많다’라는 긍정 평가는 ▲박정희(61%) ▲김대중(62%) ▲노무현(61%) 3명이 60%대 초반으로 비슷했다. 이어 ▲김영삼(41%) ▲노태우(21%) ▲전두환 (16% 순으로 나타났다. ‘잘못한 일이 많다’라는 부정 평가는 전두환(72%)과 노태우(52%)에서 두드러졌다. 이어 ▲김영삼(34%) ▲박정희(26%) ▲노무현(22%) ▲김대중(19%) 순으로 집계됐다.



  그중에서 노 前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는 지난 2015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한국갤럽의 지난 2015년 7월 같은 조사에서 긍정 평가는 9%에 그쳤지만, 올해 조사에서는 21%로 12%P 급등했다. 반면 부정 평가도 45%에서 52%로 7%P 늘었다.



  한국갤럽은 노 前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와 부정 평가가 모두 증가한 것에 관련해서 “이번 조사에서 긍정 평가 증가는 조사 기간 첫날에 서거 소식이 전해졌고 언론 보도량이 증가한 영향이 크다”라고 설명했다.



노태우 정부의

빛과 그림자



  노 前 대통령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해 오랜 기간 군인 시절을 거친 후 1988년부터 1993년까지 대한민국 제 13대 대통령을 지냈다. 그동안 노 前 대통령은 군부독재가 막을 내린 직후 첫 대통령 직선제를 통해 평화적으로 정권을 창출한 대통령이라는 긍정적인 평가와 전두환 신군부의 2인자로서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무력 진압을 주도한 사람 중 한 명이라는 부정적인 평가가 동시에 존재했다.



  노태우 정부 당시 세계는 냉전 시대에서 탈냉전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베를린 장벽 붕괴를 통해 독일이 동서 통일을 이뤘으며, 냉전 시대의 상징인 소련도 노태우 정부 시기에 붕괴했다. 또한 일본에서도 히로히토 일왕 사망 후 아키히토 일왕의 즉위로 새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역사적인 사건이 다수 발생한 이 시기는 노태우 정부에게도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노 前 대통령은 소련 해체기 때, 북방 외교를 통해 러시아와 긍정적인 관계 형성에 성공했다. 소련 해체 직후 러시아 대통령인 옐친 대통령은 당시 노 대통령과의 회담 후 대북 군사 지원을 삭감하고 유류와 식량 지원을 중단함으로써 러시아는 한국과는 긍정적인 관계, 북한과는 부정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됐다.



  1992년 8월 24일(월)에는 한·중 수교를 통해 1949년 이후 무려 43년 동안 교류가 단절됐던 중국 본토와의 관계를 회복했다. 북한과의 관계 역시 긍정적인 성과를 나타냈다. 1991년 9월 18일(수)에는 유엔 동시 가입, 1992년 2월 19일(수)에는 남북기본합의서 발표와 비핵화 공동선언 등이 있었다.



  또한 노 前 대통령은 1990년 10월 13일(토)에 청와대에서 ‘새 질서 새 생활 실천을 위한 국민과의 대화’를 통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범죄와의 전쟁은 결과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마약 사범과 조직 폭력배의 수가 전국적으로 대폭 감소했고 밀수품 거래와 기타 범죄가 잦았던 연안 인근 항만 도시의 치안이 개선됐다.



  이 외에는 ▲연평균 경제성장률 8.5% 달성 ▲적극적인 신도시 개발을 통한 부동산 가격 안정 ▲대규모 아파트 공급을 통한 주거 격차 해소 ▲인천공항 사업 시작 ▲KTX 개발 등이 노 前 대통령의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다양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노 前 대통령의 가장 큰 과오인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무력 진압은 여전히 국민들에게 큰 상처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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