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부터 기나긴 침체기를 겪었던 국내 영화산업은 지난해 <범죄도시2>의 흥행 쾌거 이후로 극장가가 다시 이전의 활기를 띨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올해 2023년 국내 영화산업은 최악의 불황기를 겪고 있다. <스즈메의 문단속>, <더 퍼스트 슬램덩크> 등의 해외 영화는 관객 수 300만을 넘기며 선전하고 있지만, 한국 영화는 <교섭>과 <영웅>을 제외하면 관객 수 100만도 넘긴 작품이 없다. 이마저도 손익 분기점은 넘어서지 못했다.
올해 1분기 국내 영화의 매출 점유율은 29.2%였다. 2019년 1분기 국내 영화가 64%의 매출 점유율을 차지했던 것과 대비되는 성적이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던 2020년 동기간에도 한국 영화 64.9%, 외국 영화 35.1%의 매출 점유율을 기록했지만, 올해 상황은 다르다. 극장가의 열기가 팬데믹 이전보다 한풀 꺾이긴 했지만, 현 상황은 전반적인 영화산업보다는 ‘국내’ 영화의 위기로 이해된다.
오랜 팬데믹으로 산업의 생존 여부도 불확실했던 시기, 극장가는 관람료 인상을 택했다. 심각한 재정난으로 인해 영화 값 인상은 불가피했다. 2019년 2억 2,668만명의 누적 관객수는 2020년 5,952만명, 2021년 6,053만명으로 줄어들었고, 2019년 1조 9,140억원의 매출액에서 2020년 5,104억원, 2021년 5,845억원으로 급감했다.
그러나 팬데믹을 극복한 현시점에도 내려가지 않는 영화 관람료에 사람들은 극장으로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극장업계는 티켓값 동결이 그동안 코로나-19로 침체했던 영화계의 어려운 사정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영향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김진선 한국영화관산업협회장에 따르면 국내 영화관들은 연간 관객 수가 1억 5,000만명을 넘지 않으면 인건비, 가스·전기 요금, 임대료 등 운영 비용을 손해 보는 구조이기 때문에 운영비 손실의 대책으로 관람료 인상이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또 박기용 영화진흥위원장(이학 박 위원장)에 따르면 극장업계 역시 관람료 인하를 고려하고 있지만, 관람료를 낮춰도 재정 상황이 더 나아지지 않는다면 그때는 방도가 없기 때문에 고민이 많은 상황이라고 한다.
영화관에 가는 것이 고급취미가 된 오늘날, 한국 영화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높은 관람료에 비해 영화가 돈값을 못 한다”는 것이 주된 반응이다. 영화관에 가는 것이 취미였던 A씨는 “영화 값이 너무 비싸서 엄청 보고싶은 영화가 아니면 굳이 영화관에 가질 않는다. 이제는 집에서 OTT로 영화를 보는 것이 더 익숙하다”며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면 영화관에 직접 가서 관람하겠지만, 요즘 국내 영화들은 퀄리티 면에서 발전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듯 비싼 영화 값에 비해 낮은 퀄리티가 국내 영화 수요 급감의 주요한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사실 이 문제 역시 코로나-19 사태와 연관이 있다. 코로나 기간에 제작돼 아직 개봉하지 못한 한국 영화가 90편이 넘는다. 오랫동안 개봉하지 못한 만큼 영화도 올드해졌고, 이는 눈 높아진 대중들의 기호에 들지 못했다.
박 위원장은 “2~3년 묵은 영화들을 최소 몇십억 넘는 홍보마케팅 비용을 써서 손익분기점을 넘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 계속 개봉을 주저하고 있다”며 “극장에 걸린다 해도 관객에게 몇 년 지난 영화는 ‘때깔’이 바래 재미가 없다. 여기에 푯값은 오르고 OTT가 인기를 끌며 여러 악재가 겹쳤다”고 말했다.
이러한 영화들의 장기간 미개봉 문제는 곧 투자 가뭄으로 이어졌다. 영화가 오랫동안 개봉하지 못하고 묵히며 장기간 투자금의 회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때문에 신작 투자는 자연스레 끊겼고, 새로운 영화의 제작도 어려워졌다. 악순환인 것이다.
신규 영화의 제작이 줄어들며 영화계 인력은 드라마나 OTT 영화로 넘어가고 있다. 또 극장 영화의 흥행 실패에 대비한 안전장치였던 *홀드백 기간 역시 줄어들었다. 조금만 기다려도 OTT에서 훨씬 싼 값으로 영화를 관람할 수 있으니 대중들은 더욱더 OTT로 몰린다.
앞서 많은 요인이 작용했지만, OTT의 부상이 이러한 악재를 더욱 가속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팬데믹 이후에도 국내 영화산업의 침체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 속 전문가들은 제작·배급사를 대상으로 제작비 지원과 매출 일부 보전 등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하지만, 언제까지 정부의 지원만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박 위원장에 따르면 지금은 “극장+알파의 시대”이다. 무조건적인 OTT의 반대가 답이 아니라 시대 흐름에 맞춘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대적 변화에 따른 새로운 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홀드백: 영화나 공중파의 본 방송 이후 다른 케이블 방송이나 다른 방송 플랫폼에서 재방송되기까지 걸리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