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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어쩌면 우리들의 이야기
장수연, 김재영 ㅣ 기사 승인 2024-07-15 14  |  692호 ㅣ 조회수 : 301


최근 들어 미디어와 사회 표면으로 ‘퀴어’가 자주 표출된다. 그러나 다수에겐 여전히 낯선 존재. 비퀴어들에게 퀴어란 마치 다른 세상의 일인 것처럼 멀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분명히 이들은 함께 생활하고 있고, 당신 곁에, 어쩌면 당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본지는 우리대학 재학생 하얀 곰(가명)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그는 남성이고, 미대에 재학 중이며, 동성애자다.



“성적 지향은 선택이 아니잖아요”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하얀 곰(가명)입니다. 제 성 정체성은 남성이고, 성적 지향성은 동성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Q. 성적 지향을 깨달은 건 언젠가요?

A. 저희 집안이 모태 신앙 집안이라 되게 보수적이에요. 가족이 다 기독교여서 보수적인 환경 속에 있었어요. 무의식적으로는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걸 받아들여야겠다는 판단이 선 건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아요. 



Q. 계기가 있던 걸까요?

A. 어떠한 계기라기 보다는, 성적 지향이라는 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그것을 아무리 표면적으로, 의식적으로 거부하려 해도 더 이상 모른 척하면 안 되겠다고 그때쯤부터 어느 순간 판단이 섰던 것 같아요. 항상 동성애나 성소수자에 대해 공격적이고 차별적인 환경에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퀴어 등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이 들려온 게 저에게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흔히 말하는 부정기를 지나 본인의 정체성, 지향성을 받아들이게 된 거죠. 동성에게 끌림을 느끼는 게 되게 자연스러웠고, 깨달음보다는 스며들었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아요.



Q. 주변인에게 커밍아웃은 하셨나요? 주변의 반응이 궁금해요.

A. 거의 대부분 안 했어요. 아무리 퀴어프렌들리(Queer friendly)한 사람이라도, 비퀴어라면 공감할 수 없는 것들이 있잖아요. 환경이 다르니까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말하면서 생기는 많은 대답들이나 시선들을 굳이 사서 받을 필요가 없다고 느꼈어요. 물론 필요한 순간에는 말해야겠지만, 그래서 진짜 친한 이성애자 친구 한두 명 정도만 알고, 퀴어에 속해있는 사람들하고는 20명 내외로 아는 것 같아요. 저는 편견을 가질 것 같은 사람에게는 애초에 말을 안 해요. 예상치 못했던 친구들은 다 놀라기도 해요. 



Q. 가족한테는 커밍아웃할 생각은 없으신가요?

A. 전혀. 앞으로도 할 생각 없어요. 종교적으로도 그렇고, 교회 중에도 프렌들리한 교회가 있기야 하지만, 대부분 한국 교회는 보수적이고 퀴어나 동성애를 배척하는 행태예요. 저희 가족이 속해있는 교회도 그렇고요. 근데 저희 가족한테는 그 교회나 종교가 너무 중요하니까, 그래서 영원히 안 밝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동성애를 배척하는 환경에 있다 보니 성적 지향성을 부정하는 기간이 되게 길었어요. 어떻게 보면 엄청나게 상처죠. 표면적으로 다 사이가 좋고 교회에도 착한 사람들이 많지만, 그렇게 잘 지내던 사람들도 제가 퀴어라는 건 당연히 모르는 거죠. 그런 상태에서 계속 혐오 표현을 공격적이고 감정적으로 하게 되거든요. 그들에겐 ‘동성애가 틀렸다’는 확신이고, 죄이고, 낯설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혐오의 맥락과 섞여 공격적이고 분노 섞인 표현으로 나와요. 제가 지금은 종교를 믿지 않고 교회도 안 나가지만 본가에 내려가면 가족의 평화를 위해 교회를 나가고 있거든요. 그 공간 안에서도 그런 표현을 들을 때마다 타격감이 좀 있죠. 



Q. 본인의 성적 지향성을 받아들였을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A. 홀가분함도 확실히 있었고, 뭔가 항상 붕 뜬 상태로 있었던 것 같긴 하거든요. 왜냐면 난 이런 사람인데 그게 아닌 채로 제 뇌를 또 조작해야 했으니까. 그런 상태에서 부정하며 살았으니까 뭔가 붕 뜨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걸 받아들이니까 그런 의미의 홀가분은 확실히 있었어요. 동시에 우울함도 좀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전에는 부정하면서 어렴풋이 블라인드 처리했던 게 이제 또렷이 내 얘기가 되는 거니까, 혐오 표현들도 내가 아닌 걸로 대충 화살표를 돌리다가 이제 이게 나에게 직격으로 온다고 생각하고 마주하게 되니 우울함이 컸던 것 같아요. 



그냥 퀴어일 뿐



Q. 일상에서 성소수자로서 느끼는 편견이나 차별이 있나요?

A. 시선이 탁 틀어지는 느낌? 같은 땅 위에 서 있는 건데, 다른 땅이라고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지는 언어를 들을 때가 있어요. 정말 아무렇지 않은 단어인데 그런 타자화된 시선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지금 사회는 그런 시선으로부터 아직 자유롭기 힘든 것 같아요.



Q. 성소수자여서 난감했던 상황은요?

A.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이 혐오 표현을 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같이 맞장구를 쳐달라며 혐오 표현을 할 때 되게 난감해요. 최근에 저희 가족, 친척이랑 같이 저녁을 먹은 적이 있어요. 거기서 나왔던 이야긴데, 사촌 동생이 다른 나라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거기서 친구를 만났나봐요. 그 친구와 친하게 지냈는데 나중에 그 친구가 제 사촌 동생에게 고백을 했대요. 둘이 성별이 같거든요. 근데 이걸 외숙모가 되게 놀라면서 얘기하는데, 그 기저에는 걔가 어떤 죄를 짓고 있고 나쁜 사람이다, 사람은 겉만 봐서 모른다는 의미였던 거죠.



Q. 퀴어, 게이, 레즈비언 등등 성소수자를 나타내는 단어가 많잖아요. 그중 어떤 표현이 상처가 되지 않을까요?

A. 단어 그 자체보다는 맥락이 좀 중요한 것 같아요. ‘호모’라는 게 혐오 표현으로 쓰일 때도 있지만, 예전에는 기사에서도 ‘호모’라는 걸 자연스럽게 썼고 실제로 섹슈얼을 말할 때 호모 섹슈얼 이런 식으로 붙이기도 하잖아요. 직접적인 혐오 표현이 담긴 단어는 잘못됐지만, 그 외에는 어떤 단어로 특정한다기보다는 앞서 말씀드렸던 타자화되면서 생기는 언어들, 아무래도 거기부터가 편견의 출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Q.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 시선에 관해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A. 저는 뭔가 그런 거에서 조금 무기력한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꿔야겠다는 게 사실 되게 불가능한 일인 것 같아서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딱히 없어요. 이렇게 봐줬으면 할 것도 없는게, 그거 자체가 뭔가 우리가 이미 양보하는 것 같잖아요. “나 이런 상황인데 그냥 이렇게라도 봐줘라”가 되는 것 같아서 그거 자체가 출발점이 다른 것 같아요. 누군 남자고, 누군 여자고, 누군 퀴어인 것처럼 똑같은 사람이잖아요. 똑같다는 게 ‘퀴어이지만 똑같은’이 아니고 ‘퀴어이면서 똑같은’이라는 의미에요. 다 같은 스펙트럼 안에 속한, 타자화되지 않은 상태였으면 좋겠어요.



Q. 현재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은 어떤 것 같나요?

A. 많이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어렸을 때 느꼈던 것들과 지금에 와서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것도 확실히 전보다 더 열려 있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것 같고, 확실히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여전히 숙제들은 많다고 생각해요. 1년 전쯤 에브리타임 핫 게시물, 좋아요를 많이 받은 글 중에 ‘동성애는 치료받아야 한다’ 라는 글이 올라온 걸 봤거든요. 그래서 그걸 보고 퀴어프렌들리한 사람들과 얘기할 때 아직도 시선이 좋지는 못 하다며 다 같이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Q. 동성애는 문란하다는 편견도 많잖아요.

A. 일단 당연히 아닌 거죠. 근데 어떤 퀴어 퍼레이드는 노출 있는 의상을 입는 분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 모습들이 문란함이란 카테고리로 바로 엮이는데, 사실 그 안에는 항상 숨겨야 하는 환경에 대한 대항의 의미가 있거든요. 예를 들어 길거리에선 이성끼리의 스킨십은 되게 자연스럽게 보지만, 동성이나 그 외의 키워드로 스킨십을 보기 힘든 것은 어떻게 보면 성적으로 드러낼 수 없다는 사회 구조 때문이잖아요. 그런 것에 좀 더 대항하고자 성적으로 더 과격하게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도 어떻게 보면 운동의 일종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고, 하나의 예술 작업으로서 본인의 캐릭터성으로 가지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래서 그 문란함이라는 것도 좀 더 생각 해  볼 여지가 많고, 이 문란함이라는 것의 출처를 이해하면 더 여러 가지 사유들을 맞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Q.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필요한 노력이 있을까요?

A. 낯섦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나라 자체가 낯섦을 포용하기 힘든 문화 구조라고 하더라고요. 어렸을 때부터 단일 민족, 우리 민족의 문화 성향이 강한 나라이기도 해서 어떤 낯섦에서 오는 것들로부터 시작하는 거죠. 근데 그 낯섦이라는 걸 의심하고 나면 낯섦이 혐오, 공격으로 연결되는 이런 당연한 루트가 깨지고 그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그 낯섦을 의심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그들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



마지막으로 그는 퀴어가 우리에게 먼 이야기가 아니라고 전하며 인터뷰를 끝마쳤다.

“분명히 단 한 사람도 주변에 퀴어가 없을 수 없거든요. 모두의 주변에 퀴어가 있는데 모르는 것뿐이에요. 비퀴어인 사람들은 주변에 커밍아웃한 사람도 없으니 퀴어라는 게 되게 물음표로 남아있고, 뭔가 내 인생엔 없는 것 같을 거예요. 근데 사실 진짜 엄청 많이 만났고, ‘난 내 주변에 퀴어가 없는 것 같아’라고 말한 순간에도 바로 옆에 있을 수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어요”





장수연 기자

jso8787@seoultech.ac.kr

김재영 수습기자

jyeong03@seoul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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