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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리 사회의 갈등과 고립을 연극으로 풀어내다
서유정, 최현준, 김나영 ㅣ 기사 승인 2024-11-05 15  |  696호 ㅣ 조회수 : 9

 “우리처럼 굴을 파고 사는 사람들은 점점 더 늘어날 거예요. 아무리 새로운 집이 지어져도, 아무리 많은 방이 생겨도 똑같아요” 땅 위에서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는 이들과 집이 없어 땅굴을 파는 이들의 공존을 그려낸 희곡 <두더지 떼>의 이예본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저는 우리대학 문예창작학과 졸업생 이예본이라고 합니다. 23년도에 경상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으로 등단해서 지금은 극작가 겸 다양한 경험을 기반 삼아 사회인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Q. 희곡을 창작하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나요?



 A. 우선 저는 고등학교 때 연극부를 했어요. 리딩하고 공연을 올리는 동아리였는데, 그때 문득 글을 쓰기 위해 대학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에는 단순히 글 자체에 흥미가 있어서 진학을 생각했는데, 학교에 오고 나니까 다양한 장르의 글들을 접하게 됐고, 그중에서도 희곡을 쓰고 무대를 상상하는 시간이 제겐 굉장히 의미가 컸던 것 같아요.



Q. 희곡이 다른 장르와 대비되는 희곡의 매력이 무엇일까요?



 A. 사실 소설이랑 시랑 동화 모두 매력 있죠. 저는 쓸 수 있다면 모든 장르를 다 잘 쓰고 싶은데요. 제가 생각했을 때 희곡과 연극의 매력은 뭔가 동시대적이라는 것과 지금 우리가 함께 호흡하면서 만들어낸 이야기라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연극은 무대와 관객석 사이에 보폭이 얼마 되지 않는 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에 공유가 일어나는 장르라고 생각하거든요. 따라서 필연적으로 사람의 이야기를 하게 되고, 이 세상의 이야기를 담게 되지 않나 생각해요. 오늘 만들어서 당장 오늘 밤에 공연할 수도 있는 그런 신선함과 생명력이 연극이 가지고 있는 큰 매력인 것 같아요.



Q. 2023 경상일보 희곡 당선작인 <두더지 떼>에서 집이 없는 이들이 땅굴을 파 땅 아래에서 산다는 소재를 떠올리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A. 저는 예전부터 주거 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특히 청년들의 주거 불안 문제가 우리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한국 사회에서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와 쓸 수 있는 이야기의 교집합을 생각했을 때 흥미롭게 다룰 수 있는 주제였죠. 그러다 ‘시창작기초’ 전공 수업에서 교수님이 전쟁 시대에 굴을 파고 살았던 해외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설명하셨던 부분이 인상 깊게 남아 있었고, ‘역사 속의 문학 공간’이라는 전공 수업에서 백사마을이라는 달동네를 방문해서 주거와 땅굴, 그리고 폐허가 된 달동네의 이미지들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받아 <두더지 떼>라는 작품이 나온 것 같아요. 그리고 글을 쓰면서 제가 많이 참고했던 건 88올림픽 행진 때 도로 확장 등을 위해서 실제로 쫓겨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다큐멘터리였어요. ‘시창작기초’와 ‘역사 속의 문학 공간’을 수강했던 학기도 같은 학기였고, 다큐멘터리도 그 당시 우연히 발견하게 된 거라 운명 같은 면이 좀 있었어요.

▲ <제로쉴드제로> 무대 사진

Q. <제로쉴드제로>라는 작품도 기후 위기와 주거지에 대한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2050년이라는 미래 배경을 설정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A. 사실 제가 원래 SF를 잘 읽고 잘 소화하는 편은 아니에요. 그러한 세계관에 몰입하는 것부터 저한테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기후 위기라는 키워드는 주거 불안과 비슷한 맥락으로 제게 중요하고 쓰고 싶은 주제 중 하나였거든요. 그 요소를 SF로 써봐야지 하는 어떤 무모한 자신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내가 잘 못 쓰고, 못 읽는 소재지만 지금 이 시대를 지나 다음 세대에게 주어지고, 직면하게 될 현실적인 모습들을 쓰고 싶어서 2050년이란 미래를 설정했던 거고요. 그리고 탄소배출 제로 정책을 굉장히 전 지구적으로 하고 있는데 그 제로에 해당할 수 있는 연도 기준치가 2050년이거든요. 그래서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제로로 만들자는 국가적인 약속이 있는데 한국에선 그게 이미 불가능하다는 논의가 이뤄졌고 외국에서의 가능성도 확인할 수 없는 문제여서 2050년이라는 시점이 기후적으로 꽤 의미가 있다는 생각에 설정하게 됐죠.



Q. 두 작품 모두 주거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로부터 영감을 받는 편이신가요?



 A.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작품은 작가의 생각과 고민을 담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그 자체로 무대이기도 하고 지면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사회 현상에 관한 이야기를 자연스레 생각하고 또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최근에는 동물권이나 노동권에 관해서도 관심이 커져서 노동에 관한 이야기를 좀 집중적으로 쓰고 있어요. 사실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일부러 내가 상상해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지어낼 수도 있는데, 그걸 차치하고 사회에 부족한 점 혹은 아쉬운 점 혹은 아픈 점을 꼬집는 그 시간 자체가 쉬운 시간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마냥 재미있고 쉽게 쓸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 글을 쓰면서 저도 회복이 되고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회복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항상 담고 있어요.

▲ <제로쉴드제로> 포스터



Q.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작가님의 방향성이 궁금합니다.



 A. 요즘 꽂힌 키워드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노동에 관한 이야기고요. 더불어서 전쟁과 회복이라는 키워드에도 관심이 많아서 쓰고 있진 않지만, 머릿속으로는 항상 그런 이야기들을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모든 글이 좀 빈틈도 있고 어쩔 수 없이 상처가 될 만한 구석들이 있기에 쉽진 않지만, 상처를 낼 수밖에 없는 글이라면 기존의 상처가 회복되기 위한 새로운 상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요. 아픈 것을 흡입하고 자극하는 글이 아니라 그 사건과 상처를 직면했을 때만 치유될 수 있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작가로서 세계관 혹은 가치관을 가지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작가가 옳다고 여기는 가치 혹은 지향점을 잃어버리지 않고 최대한 관객 그리고 이 연극을 만들 창작진 모두 그걸 공유할 수 있는 상태로 공연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어요.



Q. 연극이나 희곡이 생소한 학우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작품이 있으실까요?



 A. 사실 가장 좋은 건 본인이 많이 봐서 연출 혹은 작가 누가 좋고, 누가 내 취향에 맞는지 데이터베이스를 쌓는 거지만, 시간이나 금전적인 여유가 없어서 혹은 지방에 살아서 공연을 보기 힘든 경우가 많잖아요. 육체적으로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고 그럴 때 이건 그래도 보면 좋겠다고 하는 건 국립극단에 온라인 극장이 있어요. OTT 서비스처럼 구매해서 볼 수 있거든요. 접근성에 있어서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될 것 같고, 제가 너무 좋아했던 작품은 <서울 도심의 개천에서도 작은발톱수달이 이따금 목격되곤 합니다>라는 작품이에요. 극장에서만 6번을 봤고, 희곡집으로도 사서 읽었어요. 또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라는 작품을 국립극단에서 한 적이 있는데, 워낙 유명한 작품이니 나중에 기회가 생긴다면 한 번쯤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Q.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이 무엇인가요?



 A. 뭔가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지금 제게 가장 중요한 건 작가의 세계관인 것 같아요.사실 직업을 떠나서 많은 사람과 대화하다 보면 각자가 옳게 믿는 신념과 가치들이 다 다르잖아요. 근데 앞서 말했듯이 작가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그 신념과 가치를 대중에게 보여주고 설득 혹은 공감을 줘야 하는 위치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무조건 옳아 혹은 무조건 틀려, 라는 감각보다는 더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이게 옳은 것 같다는 판단의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세계관이 저한테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야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조금 더 관객들에게 명쾌하게 전할 수 있고 설득할 수 있고, 창작자들과 함께 있을 때도 스스로 내 글을 신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Q. 글을 쓸 때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A. 사실 재미 빼고는 다 힘든데요. 일단 마감 기한이 있던 없던 힘든 것 같아요. 학생일 땐 과제가 있으니까 기한에 맞춰서 내야하고, 공모전도 마찬가지로 기한에 맞춰서 내야 하는데 기한을 맞추는 게 그땐 진짜 힘들잖아요. 근데 막상 없으면 기한을 맞출 게 없으니까 또 힘들고 그냥 내가 어떤 목적지 없이 계속 글을 쓰는 것도 좀 지치는 일이라, 지금은 오히려 조금 더 막연해져서 힘든 부분이 있어요. 제가 직장인이 아니다 보니까 글 쓰는 시간을 확보하기는 어렵지 않지만, 뭔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혹은 뭔가 경제활동을 하면서 글 쓰는 시간을 확보하는 건 또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인 것 같고요. 특히 뭐 아르바이트나 자영업을 한다고 생각했을 때 출퇴근 자체가 명확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그런 경우에는 글 쓰는 시간 확보가 물리적으로 조금 어려운 것 같고, 또 제가 졸업하고 나서 느낀 아쉬운 점은 새로운 시선이나 새로운 눈으로 글을 읽어줄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거예요. 학교 다닐 땐 합평이라는 명목하에 만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읽어달라고 부탁하더라도 지인 작가거나 혹은 연출이다 보니까 아예 연극 외에 관심이 없는 혹은 다른 장르에서 종사한다거나 하는 친구에게 전달되기는 어려운 면이 있죠. 그래서 ‘내가 내 글에 너무 잠겨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 부분을 해소하려고 여러모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서유정 기자 suj7260@seoultech.ac.kr

최현준 수습기자 hyunjun@seoultech.ac.kr

디자인 | 김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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