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스토피아는 유토피아의 반대말이다. 유토피아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나라, 즉 이상향을 뜻한다. 디스토피아는 그 반대로 암울한 사회나 가공의 부정적인 현실을 말한다. 최근 디스토피아 장르의 작품들이 꾸준히 제작되며 인기를 끌고 있다. <감기>나 <컨테이젼>같은 전염병 관련 영화는 코로나의 여파로 한때 스트리밍 사이트 시청률 순위권을 차지했다. ‘넷플릭스’에서 최초 개봉한 윤성현 감독의 영화 <사냥의 시간>은 많은 사람의 기대를 받던 작품이었다. 사냥의 시간은 희망이 없는 미래 우리나라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 좀비 드라마 <킹덤>은 조선 시대에 좀비로 인해 멸망해가는 세계를 보여주며 큰 인기를 끌었다. ‘왓챠플레이’에서 공개한 영국 드라마 <이어즈&이어즈>는 시청률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어즈&이어즈>에서는 2019년부터 2034년의 영국의 암울한 상황을 그려낸다. 왜 사람들은 이렇게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그린 작품들에 열광하고 찾게 되는 것일까?
디스토피아와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차이
디스토피아가 암울한 미래의 현실을 그려내는 작품이라면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간 장르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미래 세계의 종말이나 종말이 임박한 세계를 그려낸다. 디스토피아는 존재하는 미래세계의 암울한 현실을 그려낸다. 반면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좀비, 전염병, 핵전쟁 등으로 이미 세상이 멸망하거나 인류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담아낸다는 차이점이 있다.
인기의 원인은 암울한 청년들의 희망 사항?
2010년도에 들어 ‘헬조선’이라는 인터넷 신조어가 생겨났다. 지옥을 뜻하는 Hell과 조선의 합성어로 ‘한국이 지옥에 가깝고 전혀 희망이 없는 사회’라는 뜻이다. 이 용어는 SNS를 통해 널리 퍼지게 됐고 이후 언론에서도 이 용어를 종종 사용하게 됐다. ‘N포세대’라는 말도 유행하기 시작했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했다는 삼포세대에서 더 늘어나 오포세대, 칠포세대에 이어 이 모두를 아우르는 N포세대까지 간 것이다. 이는 많은 20~30대 청년들이 점점 취업난이나 집값 등으로 살기 힘들어지자 점점 포기해야 할 것이 많아진 자조 섞인 신조어였다.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이나 타 국가에도 높은 청년 실업률로 좌절한 청년들을 지칭하는 신조어가 있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청년실업률 문제는 심각하다.
문학 작품 중에서 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 <표백> 등은 한때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한국이 싫어서>에서는 말 그대로 ‘헬조선’에서 살기 싫어서 호주에 이민을 가고 싶어 하는 주인공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표백>에서는 자살하려 하는 청년들을 다루고 있다. ‘문학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소설은 우리가 당면한 사회와 시대의 단면을 보여준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OECD 국가중 자살률이 1위이며 20대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었다. 또한 최근 한 포럼에서 19세~59세를 대상으로 한국사회의 인식과 생각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헬조선’이라고 응답한 청년은 80.6%나 됐다. 또한 75.4%나 ‘한국을 떠나고 싶다’라고 응답했다. 장강명 작가의 소설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책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는 인터넷에서 종종 올라오는 청년들이 올린 글들을 제목으로 삼은 것이다. 청년들은 인터넷을 통해 ‘다 망하고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다’, ‘차라리 지구가 멸망했으면 좋겠다’와 같이 리셋하고 싶다는 생각을 표출하고 있다. 이런 암울한 현실에 좌절하는 청년들이 포스트 아포칼립스나 암울한 미래를 그린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보고 열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과거는 계속해서 반복된다
흥행하는 영화나 문학을 통해 사회를 읽어내려는 연구는 꾸준히 진행해 왔다. 특정 장르의 흥행은 대중의 심리를 반영한다. 대중의 욕망에는 현실의 문제가 잠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공포 영화는 그런 대표적인 장르였다. 이런 경향은 이미 여러 차례 역사에서 반복해서 나타났다. 미국의 경우 대공황시기와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했던 사회 격동의 시기에 공포 영화가 유행했다. 이런 연구는 사회가 격변을 겪는 시대에 따라 공포 영화가 유행했던 여러 사례를 통해 입증됐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격변의 시기인 1990년대 후반에 개봉한 <여고괴담> 시리즈, <링> 등의 공포 영화가 인기를 끌었다. 1990년대 말의 한국 관객들은 IMF라는 경제적인 문제와 21세기라는 새로운 세기의 시작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많은 시민이 1997년 IMF직후에 경제적인 위기를 겪었다. 이런 상황에서 실업률이 늘어났고 비정규직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했다. 당시 뉴스에는 실직했지만 가족에게 출근하고 있다고 거짓말하는 가장에 관한 얘기가 종종 나오곤 했다. 그뿐만 아니라 2000년에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도 대중에게 불안함을 안겨줬다. 시민들은 이런 두려운 감정을 공포 영화를 통해 해소했으며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한 출구로 이용한 것이다. 이렇게 공포 영화가 위기나 격변의 시기에 성행한 것을 보면,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을 가진 작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한 감정은 두려움이 아니다. 인터넷으로 집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이 주로 20대, 30대임을 고려하면 이 장르의 유행은 청년들의 좌절이며 분노이다. 디스토피아는 이 분노와 좌절을 해소하기 위한 출구인 것이다.
종말의 또 다른 모습들
디스토피아는 시대별로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디스토피아는 현재 인간의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모습을 표현한다. 이를 통해 한 시대가 가진 고민과 비판의식을 담아낸다. 시대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이는 디스토피아를 소개하려고 한다.
SF디스토피아 걸작, 블레이드 러너
블레이드 러너는 1982년에 나온 작품으로 SF소설의 거장인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를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영화에서 미래의 지구는 인간들은 모두 다른 행성으로 떠나고 지구엔 쓸모없거나 떠나지 못하는 인간들만 남아있다. 주인공의 직업은 ‘블레이드 러너’, 인간인 척하며 반란을 일으킨 안드로이드 로봇들을 질문을 통해 잡아내는 형사이다. 영화는 주인공이 반란 로봇들을 잡아내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완성도와 더불어 관객들에게 심오하고 철학적인 질문을 남기면서 걸작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감독은 관객에게 무엇이 인간임을 규정하는지, 참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참고로 이 영화 속의 시대적 배경은 2019년으로 우리의 현실(2020년)보다 과거인 영화가 됐다. 형사가 로봇에게 하는 질문들을 보면서 인간과 로봇을 어떻게 구분하는지 관찰해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원작 영화 인기에 힘입어 2017년에 라이언 고슬링 주연으로 <블레이드 러너 2049>라는 작품으로 후속작이 나왔으며, 원작 주인공이 다시 등장한다.
현실적인 문제를 더듬다, 칠드런 오브 맨.
<칠드런 오브 맨>은 2007년에 개봉했지만, 우리와 멀지 않은 2027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영화는 전 세계의 모든 여성이 불임이어서 희망이 없는 세상을 보여준다. 세상에 희망이 없어지자 국가들은 혼란에 빠지고, 폭동과 테러가 빈번해져 국가들은 무정부 상태로 접어든다. 유일하게 정부가 있는 나라는 영국이지만 여기 또한 불법 이민자와 체류 문제로 곤욕을 겪는다. 영화는 주인공 ‘테오’가 마지막 하나의 희망을 지키기 위한 내용이다. 이민과 불임 등 현실성 있는 고민을 담아낸다. 영화가 다루는 주제는 현실적이면서 상투적이지만, 촬영 기법이 두드러진다. 이 영화의 촬영감독은 <트리 오브 라이프>, <그래비티>, <버드맨>, <레버넌트>로 아카데미 촬영상을 무려 네 번이나 수상했다. 컷을 끊지 않고 계속 촬영하는 ‘롱테이크’ 기법을 자주 사용하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이 영화에도 ‘역사에 길이 남을 원 씬 원 컷’이라는 평을 받는 장면이 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생생한 우주를 묘사한 영화 <그래비티>로 아카데미 7관왕을, 자전적인 이야기를 다룬 <로마>로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탔다.
디스토피아에서 사랑의 본질을 묻다, 그녀(Her)와 더 랍스터
이 두 영화는 암울한 미래 세계를 그리면서 사랑을 묻는 독특한 영화들이다. 영화 <그녀>는 미래가 배경으로 주인공은 다른 사람의 편지를 쓰는 대필작가이다. 주인공은 자신의 감정에는 솔직하지 못해 아내와 별거하며 이혼 위기에 처한다. 주인공은 인공지능인 사만다를 만나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전된 사회에서 소외된 현대인의 외로움을 진단한다. 더불어 인공지능을 통해 사랑이 무엇인지 묻는 독창적인 영화다. 특이하게도 <그녀>에서 사만다 목소리를 맡은 스칼렛 요한슨은 실체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지만, 로마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더 랍스터>는 설정이 더 특이하다. 배경은 미래이며, 한 호텔에 모인 사람들에게 45일의 시간이 주어진다. 이 시간 동안 짝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동물로 변한다. 이 세상에서 솔로는 용납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커플 천국 솔로 지옥’의 세상이다. 주인공은 아내에게 버림받고 호텔에 들어가게 된다. 영화의 제목이 <더 랍스터>인 이유는 주인공이 짝을 찾지 못하면 변하고 싶은 동물이 랍스터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풍자하며 사랑의 본질이란 무엇인지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2015년도에 개봉했으며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